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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운잡기| 귀화(歸化) 마라토너 오주한(吳走韓) – 권해조 논설위원

국제화 시대를 맞아 해외 이민과 더불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아프리카 케냐 출신 마라톤 선수 에루페(30세)가 우리나라에 귀화했다. 작년 12월 4일, 대전가정법원 공주지원은 에루페가 신청한 「국적 취득자의 성(姓)과 본(本)의 창설」을 인정하여 그의 가족관계 등록부에 성을 오(吳)로, 본을 청양(靑陽)으로 창설할 것을 허용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동안 에루페는 “오직 한국을 위해서 달린다”는 의미의 오주한(吳走韓)으로 개명절차를 밟아왔다. 이에 앞서 에루페는 작년 7월 법무부의 특별귀화국적심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하고, 9월에 최종면접을 거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11월에는 케냐 국적을 포기한 확인서를 청양군에 제출하여 청양군 정산면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당시 주민등록증 이름은 “에루페 윌슨 로야네”였으나 법원결정문을 접수시켜 새로운 한국명 오주한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오주한의 마라톤 최고기록은 2016년 동아일보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 2시간 5분 13초이다. 그 후 작년 경주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데 이어 공주백제마라톤에 참가하여 10km 친선레이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번 오주환의 귀화 이외에도 공식 역사기록에 의하면 과거에도 우리나라에 귀화한 사람들이 많았다.
12-13세기에는 고려에 귀화한 베트남 출신 이용상(李龍祥, Ly Long Tuong)과 리양곤(Ly Duong Con)이 있었다. 이용상은 1226년 베트남 이씨 왕족이 멸망할 때 해외로 탈출하여 황해도 옹진군 화신지역에 이주한 후 몽고군 침입시에 고려군을 도와 고려 23대 고종으로부터 화산군이란 이름을 하사받고 화산이씨(花山李氏)의 시조가 되었다. 리양곤도 12세기 고려시대 춘천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6대손 이의민이 고려장수로 14년간 무신정권에서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 사야가(沙也加)도 귀화해 우록김씨(友鹿金氏) 시조가 된 적도 있다. 그는 1592년 4월 13일 21세로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선봉장이 되어 병력 3천을 이끌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는 평소 조선의 문물과 풍습을 흠모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의 침략야욕을 하늘에 대한 역행으로 생각해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귀순했다. 그는 조선 장수로 변신해 울산, 경주, 영천 등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고, 화포와 조총을 만드는 법과 사격술을 보급했다. 그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김해김씨로 사성(賜姓)받았으며 이름도 충선(忠善)으로 하사받았다. 임란 후 30세 때는 진주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결혼해 대구 달성군 가창리 우록동(友鹿洞)에 정착하고 우록김씨 시조가 되었다. 그는 5남 1녀를 두었는데, 우록동에는 지금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녹동사(鹿洞祠)를 세워 제향을 받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귀화한 변호사이자 방송인인 미국인 하일(河一)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본명은 ‘Robert Holley’이며, 1987년 한국인 명현숙과 결혼해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1997년 귀화했다. 그는 처음 한국생활을 시작한 부산 영도를 기념해 본(本)을 영도로 하고, 성을 하(河), 이름을 일(一)로 하여 영도하씨(影島河氏) 시조가 되었다. 그는 현재 부산외국인학교와 광주외국인학교 이사장으로 아들 재건, 재욱, 재익 3형제를 두고 있다.
이밖에도 귀화를 바라는 외국의 야구선수, 축구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 국제화 가 진행되면서 더 많은 귀화인과 이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오주한의 귀화를 축하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