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3.1 독립운동 100주년에 붙여 ‘쌍책’ 돌아오지 않는 게 어디 새들 뿐이랴 (2) – 송염만 소설가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합한 뒤로 우리민족의 유달리 강한 고향의식을 잠재우고, 나아가 국가의식을 말살하려 했다. 따라서 황국신민화를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 ·문화·지리·언어·풍속·성씨 등속의 고유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지명에다 대대적인 개명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것은 창씨개명보다 먼저 착수한 ‘창지개명’인데. 대표적인 예는 1914년 부제실시이다. 이를 시발로 1918년까지, 조선 반도는 왜인의 신천지로 땅 이름을 구석구석 개편하였다.
이때 합천지역 지명 또한 제국주의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 상흔이 오롯이 남은 곳, 그곳이 쌍책면의 ‘쌍책’이란 지명이다. 2년 전 이곳에 면 권역사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폐교된 쌍책 중학교에 들어 설 가칭 ‘휴(休)센터’에 붙일 참신한 이름이 필요했다. 센터의 이름은 주민들이 지어야 했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벌이기로 했던 것. 이를 위해 권역사업 컨설팅을 맡은 회사에서 서울의 한 저명한 교수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초빙 교수는 스토리텔링 전문가였는데, 면사무소 2층에서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한 주민교육이 실시되었다. 이 때 그는 연구한 결과로 ‘쌍책’이란 행정명이 일제에 의한 것이라 했다. 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곳 토박이 주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합천박물관의 이재경 문화해설사는 쌍책면에서 수대를 이어오며 살아왔다. 그는 초책과 이책을 합쳐 ‘쌍책’이라 했고, 일제 때 개명된 지명이라 증언하고 있다. 또한 이곳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서쌍조 부면장도 외부의 연구자나 토박이 주민들의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행정명 쌍책은 1914년부터 붙여진 게 맞습니다.”라고.
하지만, 일제 민족말살 정책에 녹아든 우리 언어의 오염은 애국 지성인들의 노력으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기도 하여 주목할 일이다. 스포츠계의 정화 노력이 그 한 예인데, 지난 2012년 3월6일, KBO는 언어정화를 위한 실행위원회를 열고, 프로야구 출범 이래 30년 동안 익숙해졌던 일본식 전광판 표기를 변경했다. 변경한 표기를 보면, 스트라이크―S, 볼―B, 아웃―O의 왜색을 버리고, B-S-O로 국제기준에 맞추었다. 체육계의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 방면 일선기자들의 지고한 노력이 있어, 일제 군대식 왜색어인 ‘고참’은 ‘선임’ ‘시합’은 ‘경기’로 ‘기라성’은 ‘쟁쟁한’ ‘전지훈련’은 ‘현지훈련’으로 바뀌어 사라지는 추세이다.
전 방위로 이루어지는 체육계의 노력은 2018년에도 이어졌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현장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 조재기 이사장은 스포츠 판에 사용되는 식민잔재에 대해 국내 취재진들에게 문제 제기와 태도를 밝힌 바 있다. 왜색어에 대한 조재기 이사장의 단호한 태도는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22일자 보도에 명백히 드러난다. 당시 그는 가미카제가 사용했던 일본식 영어인 ‘파이팅(Fighting)’이나 심지어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이름에 붙어 있는 ‘국민’이라는 말조차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皇國臣民)’에서 온 말이므로 마땅히 추방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곳을 바라본다. 경남의 서북부 대봉산은 함양이 자랑하는 산이다. 이 산은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명산인 만큼 일제가 지명의 쇠말뚝을 박고자 눈길을 뻗쳤다. 은둔의 의미를 부여한 괘관산(掛關山)으로 개명한 것. 산의 정상 또한 그들이 부르는 천황의 이름을 따 천황봉(天皇峯)이라 명명하였다. 전 함양군수 천사령은 재임시절 이 명산의 일본식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창하며 민족정체성 회복운동을 펼쳤다. 대다수 군민들이 호응하여 현재는 지도에도 괘관산이란 산명이 사라지고, 당당히 대봉산(大鳳山)으로 나타난다. 정상에 세워져 있던 ‘천황봉’ 비 또한 ‘천왕봉(天王峯)’으로 옛 이름을 되찾아 세워져 있다. 이런 일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호응하는 의식의 밑바닥에 깔린 민족애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 면 체육회 회장을 역임한 박월목 선생은 “역사에 빛나는 이름이 있는데도, 일제잔재를 그대로 두어야 하느냐.”며 사뭇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역사에 빛나는 이름은 ‘다라’이다. 2021년, 쌍책면 일대의 다라국 유적은 인류의 보편적 탁월함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예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천에서 일어난 논란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국제도시로 나아가고 있는 행정 명 ‘송도’는, 식민잔재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여, 일제가 지워버린, 우리역사에 빛나는 이름을 되찾아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역사에 빛나는 이름은 왜색이 아니다. 백제의 색깔이 짙게 우러나는 아름다운 우리말 ‘비류’이다. 인천 시민들의 주장에는, 국제도시에 몰려드는 외국인들에게 식민잔재 그대로를 부르게 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면, 가야 유적 유네스코 등재를 앞둔 합천人은 어떠해야 할는지.
문학도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역사학도는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문학가는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비류가 백제의 색깔이라면 다라 – 다라는 가야의 색이 짙다. 낙동강의 ‘낙동’이 가락국의 ‘락’과 동쪽을 의미하여 붙여진 것처럼, ‘다라’는 고대 한반도 남부의 세계관이 신라가 중심이 아님을 내포한다. 가야를 중심으로 나온 말인 것이다. 또한 다라의 ‘다’는 존귀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와 같이 이두 향찰로 맞추려 하기 전, 외래어로는 정교하게 표현할 수 없는 우리만의 정서가 배어 든 순 우리말이다. 이 때 ‘다’는 높은 곳, 높기 때문에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 존귀한 곳, 여기에 땅이라는 ‘라’를 합해 ‘다라’이다. 다라는 곧 가야 인이 중심이 된 세계관이 담겨있다.
고대 중세 근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우리는 “다 좋아” 라 하듯이 완결된 좋은 의미에서 ‘다’를 사용하고 있다. 완결의 의미가 어찌 존귀하지 않을지. 뿐만 아니라 이곳 쌍책에는 다라국 사람들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다라’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놀랍게도 15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 인들은 이미 고대에 이 좋은 의미의 이름을 일본에까지 전파시켰다. 따라서 일본 남부 곳곳에 남아 있는 가야의 흔적과 함께, 일본의 마을 이름 ‘다라’ 혹은 ‘타라’ ‘타타라’는 이곳 쌍책이 본향인 것이다. 조선을 합병한 일인들은 그들 문화의 본향을 교묘히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쌍책 – 다라국 옛터의 생채기, 식민통치의 상흔 이대로 두어야 할 것인가.
다라 – 저기 저 들을 지나, 겨울 솔숲에도 노을 지는데, 새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새들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에는 주검 같은 창백한 밤바람이 배어든다. 이민족이 할퀴어 놓은 이 땅 상책. 항일선열의 원혼들이 적시는 창백한 바람에는 울음이 타는 역사의 지난함이 묻어 있다. 1500여 년 전, 이 땅에 찬연히 문화를 꽃피운 나라 다라, 그 역사의 굽이를 돌아 황량한 들을 관통하며 흐르는 저 강, 노을 물들어 핏빛 젖은 강물은 이곳에 이르러 더는 흐르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물이 이 뿐이며, 돌아오지 않는 게 어디 새들 뿐이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