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제 이사장, ‘파워코리아(PowerKorea)’ 표지인물 선정 <3>
지봉(志峰) ··· “학문의 길은 형극(荊棘)의 길이다”
월간 ‘파워코리아(PowerKorea)’ 잡지 올해 2월의 표지인물로 선정되어 화제가 된 합천 대병 출신 (재)지봉장학회 박판제 이사장이 지난 19일(토) 오전 11시, 고향 합천을 방문하였다. 군청대회의실에서 있을 (재)지봉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본지는 그동안 ‘파워코리아’에서 재조명한 박판제 이사장의 일대기와 그의 역사관, 철학 등을 요약하여 2부로 나눠 소개하였으며, 3부에서는 (재)지봉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그를 만나 학생들에게 전하는 그의 생생한 메시지를 직접 들어보았다.
역사란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 의해 흘러가지만, 그 흐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미래를 예견하고, 혁신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영국의 비평가 겸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역사란 소수의 뛰어난 위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 현대사에도 적용된다. 전 환경청장 박판제 이사장은 우리가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자 호흡을 가다듬던 70~90년대, 그 변화의 중심에서 재정경제개혁과 환경문제 해결사를 자처하며 대한민국의 도약을 이끌어왔다. /이용석 기자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대망
지봉(志峰) 박판제 이사장은 강단에 서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자신의 험난했던,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던 인생사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조부는 기울어가는 나라를 떠받치고자 구한말 세 차례에 걸쳐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만다. 당시 고종의 자문 역할을 하던 헐버트의 회고록에 의하면 “집권층 자제들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150량의 돈이 들었다”고 하니 지방 유생이 제 아무리 뛰어난 이라도 급제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뜻을 펼치지 못한 조부는 불의와 타협하는 대신 동학의 의병장이 되었고, 하동전투에서 31세로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이후 크게 가세가 기운 가운데, 중학교 진학마저도 어려워진 박 이사장은 우연히 이탈리아 독립운동가의 일화를 접하게 된다.
“한 이탈리아 독립운동가가 실망과 좌절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3발의 총탄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숙소에서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총탄은 불발이었죠. 이상히 여긴 그가 천정을 향해 3번째 방아쇠를 당기자 ‘탕’하는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그제야 그는 ‘신이 나로 하여금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구나’라고 깨닫고,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현실에 타협해 농사꾼의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대망을 품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일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박 이사장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만류를 뒤로 하고 상경하게 되어 거침없는 발상의 대전환으로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를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학문의 길은 ‘형극의 길’
박 이사장은 역사의 순환법칙을 잘 파악하여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여야함을 강조하였다. 특히 한·일간의 역사적인 근본문제에 관해서 300년을 주기로 다가오는 순환법칙을 잘 파악하여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1274년 한·몽 연합군에 의한 일본역사상 최초의 외침에 대해 거대한 태풍, 일본이 자랑하는 ‘신풍’에 의해 위기를 모면한 그들은 그 뒤 300여 년이 지난 1530~1616년 기간의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3인의 천하통일기인 1592년, 임진왜란 및 뒤이은 정유재란으로 이어졌다. 또다시 300여 년이 지난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천황제 채택과 부국강병정책으로 힘을 키운 뒤 군국주의가 득세하자마자 만주국을 세우고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것을 주목하면, 소위 300년 주기에 따라 21세기 전후가 한반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도의 경각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학생들을 향해 “미래학자들은 향후 5년 내지 10년은 과거 1000년에 해당하는 변화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광속의 변화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이겨내는 걸 보십시오. 이런 초 광속의 변화 속에서 그 변화를 예측하여 변화를 앞장서 주도하는 자만이 미래의 승자가 될 수 있지만, 변화에 근근이 따라가면 현상 유지에 불과할 것이고, 그나마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그 존립자체가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라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그는 “그것은 학문의 길입니다. 예부터 학문의 길을 ‘형극(荊棘)의 길, 가시밭 길’이라 하였습니다. 이 형극의 길을 뚫어내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부디 남 잘 때 자지 아니하고, 남 놀 때 놀지 아니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이 형극의 길을 뚫어 내는 큰 인물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하였다.
기존의 틀을 깬 방향 전환
하나의 국가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에는 반드시 기존의 틀을 깨고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변곡점’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사를 한 그루의 나무로 비유하자면 중요한 3번의 변곡점에는 항상 박판제 이사장의 헌신과 도전이 존재했다. 제1변곡점에서는 청와대 부실기업정리 총괄반장으로서 가지치기를 감행했고, 제2변곡점에서는 환경청장으로서 기름지게 퇴비를 주어 무성하게 키워냈으며, 제3변곡점에서는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 총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아름답게 디자인 조경하여 우람한 관상수로 가꾸었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한 단계씩 도약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며, 재정·경제·정치·환경·디자인 등 국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아온 박판제 이사장.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청렴함과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항상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박 이사장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후배 공직자들의 귀감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중소기업 육성과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민주화, 환경정책과 디자인정책의 국가적 관점에서의 융합, 그리고 한일관계에서의 역사순환법칙에 따른 주도권 잡기를 잘 실행하는 것은 국가적 과업이 될 것이며, 이러한 정책의 초석이 될 이번 총선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과 선택이 앞으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앞으로도 박판제 이사장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행보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유익한 조언이 되길 기대해 본다.
한편, (재)지봉장학회는 1991년 9월20일 지봉장학회(초대 이사장 박판제) 설립허가를 취득하여, 1992년 처음으로 고등학생 12명, 중학생 46명에게 1천6백7십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2000년도부터 고등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하였고, 올해 관내 5개 고등학교 20명에게 개인당 100만 원씩 2천만 원을 지급함으로서 현재까지 중학생 290명, 고등학생 519명, 대학생 1명 총 810명에게 5억1천7십만 원을 지급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