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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운잡기| 학문사변(學問思辨) – 권해조 논설위원

어느새 3월을 맞아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젊은이들이교육준비에 바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품성을 길러주는 교육(敎育)과 배워서 익히는 학문(學問)이나 기술을 닦는 공부(工夫)에 관심이 높다.
조선시대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지은 어린이용 학습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서문(序文)에 사람이 태어나 학문(學問)이 아니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으며, 제4 독서장(讀書章)에서 독서 목적과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옛날 서당에서 배우는 명심보감(明心寶鑑)부터 소학(小學), 논어(論語), 중용(中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문을 중시하였다. 특히 어린이들이 필수과목이었던 명심보감은 입교편(立敎篇)과 근학편(勤學篇)을 두었고, 소학에도 제일 먼저 입교편(立敎篇)을 두었다. 고급과목인 논어도 학이(學而), 위정편(爲政篇)과 중용에도 20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학생들에게 베스트셀러가 된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에도 마찬가지다.
먼저 명심보감 입교편에 글을 읽는 것은 집을 일으키는 근본이요(讀書起家之本),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幼而不學老無所知)라 하였다. 근학편에도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운 밤에 다니는 것과 같다(人生不學 冥冥如夜行),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면서 교육(학문)의 목적과 그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소학에서도 제일먼저 입교편에 스승이 어린이를 가르치는 방법과 어린이들이 배우는 방법을 깨닫게 하고 있다. 소학 첫 머리에 교육의 확립을 언급한 것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육에도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도 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유아교육을 중시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위정편(爲政篇)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한 생각에 빠지기 쉽다. 즉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여 진리를 찾지 않으면 배운 것이 없어지고(學而不思則罔), 사색만 하고 학문을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로워지기 쉽다(思而不學則殆)라고 했다. 이는 학교에서 스승으로부터 체계적인 강의를 듣더라도 사색의 과정을 거쳐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않으면 쉽게 잊기 마련이며, 혼자 생각만 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학문체계로 일반화 할 줄을 모른다면 독단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다음 공부하는 방법으로 중용(中庸) 20장에 나오는 학문사변(學問思辨)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변별하여 완전하게 내 것이 되면 독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이는 「공부머리 독서법」에서 실현, 지속가능한 독서법은 헬스트레이닝과 같이 바른 자세와 방법이 중요하며, 속독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독서, 수준에 맞는 책 읽기(레벨 독서법)와, 연령 수준에 맞는 책 내용을 이해 할 때까지 되풀이 반복해서 읽는(반복독서 활용법) 독서,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 독서가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학문에 관련된 고사성어도 많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을 비롯하여 전에 배운 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도리를 알아내는 온고지신(溫故知新), 독서하는데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해득하여 깨우쳐야 한다는 독서삼도(讀書三到: 眼到, 口到, 心到),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讀書百偏意自見) 등이 있다. 또한 반딧불과 눈(雪)의 반사로 책을 읽었다는데서 고생을 하면서도 꾸준히 학문을 닦는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이 비치는 창과 눈(雪)이 비치는 책상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가운데 학문에 힘쓰는 형창설안(螢窓雪案), 오직 책 읽기만 골몰하는 독서삼매(讀書三昧), 손에서 책을 놓을 사이도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수불석권(手不釋卷), 분발하여 끼니를 잊고 노력하는 발분망식(發憤忘食), 스스로 힘써 행하여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 등도 있다.
그리고 학문도 단계를 밟아 나아가야 한다는 「영과후진(盈科後進)」, 독서하기 좋은 세 가지 여가인 겨울, 밤, 비올 때를 말하는 독서삼여(讀書三餘), 책을 읽음으로써 옛 현인들을 벗으로 삼는다는 독서상우(讀書尙友),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낫다는 청출어남(靑出於藍),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불치하문(不恥下問)등도 있다.
중국 송나라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는 ‘학문이란 하나를 뛰어넘어 바로 이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다만 조금씩 순서를 지켜 쌓아가야 한다(學問無一超直入文理, 直是銖積寸累做將去).’라 하였고, 청나라 정치가 좌종당(左宗棠)도 ‘배움은 마치 물을 거슬러 나가는 배와 같아서 계속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난다(學問如逆水行舟 不進則退).’라 하였다. 일본 에도(江戶)시대 유학자 사토 잇사이(佐藤一齊)는 언지록(言志錄)에서 학문은 스스로 힘으로 이해(自得)함이 중요하며, 언지만록(言志晩錄) 60조에서 소년시절 공부는 장년에서 큰일을 할 수 있고(少而學則壯而有爲), 장년의 공부는 늙어서 기력이 쉬하지 않고(壯而學則老而不衰), 늙어서 공부는 죽은 후에 이름이 썩지 않는다(老而學則死而不朽)라 했다. 최근 동양학 칼럼니스트 조용헌 교수는 “공부는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는 것이다.”라 했는데 학문의 중요성과 공부방법은 옛날과 지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