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子의 눈물 – 정개모 합천군 문해강사
해마다 다가오는 어버이날, 누구나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는 날이다.
時代가 變化 하면서 오로지 物質에만 치우쳐서 孝道, 이웃, 人情이란 人倫의 도리는 날이 갈수록 無色 해 지고 개인주의만 심화 되고 있다. 父母에 대한 옛 속담, 격언은 많다. 즉 “세상에 부모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 “孝道는 人倫의 根本 이다”, “부모 없이 내가 없다”는 옛 말이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父母가 衰弱하여 거동이 不便하면 편히 모실 생각은커녕 요양 보호 시설 등에 收容하고 費用問題로 家族 간에 다투며 심지어는 부모가 죽은 후 유산상속, 부조금 분배문제로 시비가 벌어지는 등 효도의 기반이 무너져 가고 있어 그저 슬프기만 하다.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生前에는 모른다 그러나 죽고나면 반드시 後悔한다.
어느 날 내 아들에게 “나는 늙어서 쇠약해도 시설에는 가기 싫다”고 하였더니 아들 曰, “어버지 누워 잘 때 살짝 업고 가서 遼陽院에 모시겠다”고 하였다. 효도할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게 말한다. 삶이 억울하다. 본론에 들어가서, 子息은 부모의 위대함을 感動하지 못하고 내리 사랑이란 말을 언급하면서 잠시 옛 실황을 돌이켜 본다.
1973년 음력 6월 12일, 증조모 제삿날 제가 18세 때 일 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소를 몰고 산에 가서 풀어 놓고 방과 후 소를 몰러 가는 당시의 전형적인 농촌 실정 이었다. 그날도 4시 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산에 소를 몰러 갔다. 왠지 그날은 몸이 피곤하고 잠이 와서 아버지 산소 인근 계곡 물이 내려가는 시원한 곳에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 잠을 자고 깨어 보니 주변이 캄캄하고 벌레소리, 물소리만 들렸다.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고 엎드려 여러 궁리 중, 내가 있는 반대 쪽 산 정상 쯤 에서 반딧불이 같은 불빛이 보이면서 모기 소리 같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 세 번 들어 보니 우리 어머니 목소리였다.
바로 그때 나도 목이 터지라 엄마-,엄마- 라고 크게 대답했다.그 소리를 들은 엄마는 제법 먼 거리 였는데 한 20분쯤 뒤 저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엄마의 손에는 등불(호야불)을 들고 있고, 얼굴, 팔 , 손 등이 가시와 나무에 긁혀 피 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순간 엄마와 저는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약 7시간 가량의 相逢이지만 70년 만남이었다. 어머니가 아니면 누가 이런 犧牲을 할까 ?
당시는 산중에 늑대 등 큰 짐승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 소는 집으로 돌아오고 하나 뿐인 아들인 저는 산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니 혹 큰 변을 당하지 않을까. 7시쯤 날이 저물자 그때부터 우리 엄마는 혼자서 내가 있을 만 한 곳 높은 산 능선에 올라가 목이 터지라 저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가 밤 11시 쯤 되었을까. 그래도 집에 와서 齋戒하고 祭祀를 지냈다. 당시 조부모, 고모, 삼촌 등 가족들은 큰일 날뻔 했다면서 동정 보다 나무라기만 하였다. 지금 회고 하니 小說 같은 이야기 꺼리이다. 그때 저와 어머니가 부둥켜 안고 울 때 나는 진정한 어머니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영영 보지 못하는 얼굴이 되고 보니 이제는 孝道할 기회가 없다. 生存 당시 不足한 孝行이 늘 애달프고 後悔 스럽다.
내가 4살, 어머니 29세 靑孀이 되고, 비교적 이른 72세에 他界하신 우리 어머니, 살아계시면 90세. 지금 이 시각도 하늘 만큼 땅 만큼 너무 너무 보고 싶어 이글을 쓰는 종이 위에 장대 같은 눈물이 紙面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