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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뜸부기 – 소민호 동화작가

“뜸 뜸 뜸….”뜸부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둑길을 걸었다. 들풀이 우거진 조용한 둑길이 좋다. 절뚝거리는 나를 부축해 주는 갈대가 있어 좋고, 혼자인 나를 보듬어 주는 포근한 들바람이 있어 좋다. “뜸 뜸….” 물을 머금은 뜸부기 소리를 들으면 촉촉하게 젖은 어머니 목소리가 떠오른다.
지난해 봄이었다. 초록빛보다 회색 빛깔이 짙은 날이었다. 어머니 얼굴에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휴−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누리야, 삼촌 말씀 잘 들어라!”, “예.” 나는 그렇게 어머니·아버지를 떠나 시골 삼촌 집에서 살기로 했다. 학교도 거기서 다니게 되었다. 시골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손을 잡아도 석고상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누리야, 나가자.”나는 아버지 손등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병실을 나왔다. 벚꽃 사이로 알싸한 꽃샘바람이 지나갔다. “우리 아들이 시골에서도 학교 잘 다닐 거라고 엄마는 믿는다.” 어머니가 나를 꼭 안았다. 어머니의 가느다란 팔이 절룩거리는 내 다리보다 더 힘없어 보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구멍으로 밀고 올라오는 눈물도 꿀꺽 삼켰다. ‘혹시… 이렇게 우리 세 식구가 영영 떨어져 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쿡쿡, 어머니, 난 괜찮아요.” 나는 헛기침으로 가슴속 자욱한 안개를 가라앉혔다. 어머니도 젖은 눈가를 콕콕 찍었다.
그렇게 5학년 시작부터 나는 새 학교에 다녔다. 새로운 아이들도 만났다. 하지만 새로운 눈길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쟤, 왜 저래?”,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대.” 내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말들이었다. 아니, 목이 더 옴츠러들게 하는 말들이었다. 짓궂은 애들은 내 어깨를 툭 쳤다. 다리를 슬쩍 걸어 보기도 했다. 혼자가 익숙한 나는 그런 아이들을 피해서 늪을 가로지르는 둑길로 다녔다. 둑길은 가슴을 활짝 펼 수 있는 나의 무대가 되어 주었다.
나는 1년 동안 그렇게 둑길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갈대꽃과 소시지를 닮은 부들 꽃들이 환호했다. 뜸부기도 갈채를 보냈다. 삼촌은 뜸부기 소리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뜸부기는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는 것도 생각 못하고 집을 짓는 멍청한 새야. 그런 새를 좋아하는 걸 보니 아마 너도 뜸부기를 닮았나 보다.”하며 놀렸다.
“뜸 뜸 뜸부욱!”갑자기 뜸부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생각에 취해 있던 나는 갈대숲으로 눈길을 돌렸다. 바람이 갈대 잎을 쓸고 다녔다.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다.“어, 비가!” 나는 가방을 벗었다. 신발과 옷도 가방 옆에 가지런히 벗어 놓았다. “뜸 뜸부우욱!” 나는 서둘러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물이 차가웠다. 들어갈수록 점점 깊어졌다. 찬물이 배를 적시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뜸부기 소리가 뚝 그쳤다. 물소리에 놀란 모양이다. “아, 저기다!” 갈대를 모아 만든 뜸부기 둥지가 보였다. “컹 껑 꺼엉….” 뜸부기가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파닥거렸다. 금세라도 공격을 할 것처럼 팔짝팔짝 뛰기도 했다. “괜찮아, 해치지 않을게.” 나는 손을 흔들며 둥지에 가까이 다가갔다. 점박이 알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서둘러 옆에 있는 갈대와 부들을 꺾어 둥지를 돋워 주었다. 갈대에 긁힌 손이 아렸다. 실낱같은 빨간 피가 배어 나오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뜸부기는 부산스레 주위를 맴돌았다. “야, 물이 불어나도 잠기지 않도록 둥지를!”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꾸짖다가 말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가 아버지께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신처럼 가정에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제발 회사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집안….”, “어허, 또 그 소리… 조금 부족한 듯 사는 게 넘치는 것보다 나은 거요!”아버지는 힘들 때마다 넋두리를 하는 어머니를 보고,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다고 하며 말을 막아 버리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그 뒤로도 매일 늦은 밤에 퇴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술까지 드시고… 요즘 왜 이러세요?” 어머니는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걱정을 했다. “내일부터 회사에 못 나가게 되었어!”아버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어머니도 말없이 울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누리야, 혼자 밥 챙겨 먹고 학교 가거라!”어머니가 흔들어 깨웠다. 나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젯밤 네가 잠든 사이에 아빠가 쓰러지셨어. 지금 병원에 계신다.”아버지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긴 어머니는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그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뜸부기 집을 고쳐 주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옷은 벌써 비에 젖어 축축했다. 샤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래도 뛰고 싶지 않았다. 몸에 묻은 것들이 모두 씻겨 나가는 것 같아 시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둑길을 걸었다. “뜸뜸뜸… 껑껑껑!” 뜸부기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날씨는 맑은데?’ 불길한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둥지 쪽 갈대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옷을 홀라당 벗고 갈대숲으로 뛰어들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진흙 속으로 발이 푹푹 빠져들었다. “앗, 야! 놔줘!” 쓰러진 갈대 위에서 누르스름한 족제비 한 마리가 뜸부기의 날개를 물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몸도 굳어 버렸다. 족제비가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뜸부기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바동댔다. “야앗!”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두 팔을 높이 들고 물 위를 덮쳤다. 그 바람에 놀란 족제비는 도망가고 뜸부기만 남았다. 뜸부기는 다행히 날개에 깃털 몇 개만 빠졌을 뿐, 많이 다치지 않은 듯 보였다. “알!” 나는 둥지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알도 그대로 있었다. “휴− 알을 지키려고 그랬구나!” 뜸부기는 알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족제비와 맞섰던 것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뜸부기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알을 지키다가 언제 또 족제비 같은 무서운 짐승들한테 당할지 모를 일이다. 나는 뜸부기의 수호천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뜸부기가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듯했다. 하루라도 뜸부기 소리를 듣지 않으면 가슴이 선들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뜸부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뜸부기 둥지가 있는 갈대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 텅 빈 둥지에는 알껍데기 몇 조각만 남아 있었다. 뜸부기가 새끼들을 데리고 둥지를 떠났던 것이다. 나는 뿌듯하면서도 왠지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 어머니!” 어머니가 마루에 걸터앉아 삼촌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리야, 그 꼴이 뭐냐?”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뜸부기를 쫓아다닌다고 저래요.” 삼촌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쯧쯧… 뜸부기가 웃겠다.” 혀를 차며 머리를 쓸어 주는 어머니의 손이 꺼칠꺼칠했다. “누리야, 아버지가 이제 말도 하신대!” 삼촌 목소리가 방방 떴다. “아버지가!” 나는 긴 굴속을 빠져나온 것처럼 가슴이 시원했다. 눈앞을 흐리던 안개도 걷히고 있었다. 새끼들을 데리고 갈대숲을 떠난 뜸부기가 왠지 고마웠다. “깨어나긴 했지만 언제 퇴원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아버지가 건강해질 때까지 삼촌이랑 같이 지내라, 엄마가 자주 올 테니.” 어머니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따뜻한 어머니 체온이 온몸에 퍼졌다.
“어머니, 시골이 진짜 좋아요. 뜸부기도 있고!” 나는 대답 대신 큰 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웬 녀석도!”어머니는 웃으며 내 엉덩이를 툭 쳤다. 목소리가 뜸부기 소리를 닮았다. “어머니, 진짜예요.” 나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눈꺼풀이 뜨거워졌다. “휴− 그래, 알았다. 아버지가 건강해지면 시골에서 같이 살자.” 어머니는 먼 산으로 눈길을 돌리며 한숨 섞어 말했다. 어머니의 한숨은 산만큼이나 무겁게 들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알을 위해 족제비도 무서워하지 않는 뜸부기처럼, 아버지도 병을 이기고 일어나실 거라고! 그때는 아버지도 들풀이 우거진 둑길 무대에 주인공이 되겠지. “뜸 뜸 뜸!” 부들 숲 속에서 뜸부기 소리가 들렸다.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오늘의 한국동화 선정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