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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나잇값입니다 – 공원석 전 합천중학교장

“며칠간 누구를 못 만났는데 행여나 무슨 일이 있나?”라고 물어보면, “나이가 많으신 분이 며칠 안보이시면 돌아가신 것입니다”라는 응답이 보편화된 현실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성철 스님께서 백련암에 계실 때에 절 일을 돕던 노인에게 “밥값은 해야지!” 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서로 웃으면서 나누는 대화였지만 그 속에는 삼엄한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밥값’ 말고도 ‘이름값’과 ‘얼굴값’ 등이 또 있습니다. 누구든 가정이나 일터에서 크고 작은 이름을 내걸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자기가 잘나서 얻은 것이라기보다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거들고 도와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얼굴값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름값에 늘 붙어 다닙니다. 이런 값들은 때로는 죽비(竹篦:불교에서 장시간 참선으로 심신이 흐트러질 경우 정신을 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 등짝을 내려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밥값을 하려면, 그 자리에 앉혀준 사람의 뜻에 맞갖은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하고,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면, 임명권자가 원하는 임무 뿐만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사회의 기대치에도 미쳐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세상사는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들리는 것만이 존재함이 아님도 알아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밥값의 의무감과 이름값의 양심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업무의 추진을 속도감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밥값이라고 한다면, 일의 속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절이나 조정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히는 것도 전문가로서 평생을 살아온 책무요, 이름값입니다. 이걸 조화롭게 해결하는 정답이 자릿값일 될 것입니다.
사람들 생각은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밥값도 못 한다’거나 ‘얼굴값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주어진 과업에 책무성을 갖고서 오로지 그 일의 성취를 위해서만이 일하는 게 바로 ‘자릿값’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소태를 씹는 고통보다도 몇 배나 괴롭더라도 쉼 없이 나가야 합니다. 지게꾼에겐 ‘밥값’을 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성실이라면, 공무에 몸을 담은 사람에게는 ‘자릿값’을 하는 게 성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사람의 값이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릿값’까지 잘해내고 물러난 뒤에는 마지막 단계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 다 살고 보니 이 값 저 값 중에 나잇값이 제일 어렵더라”고 하시던 말씀입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나잇값이 삶의 품위를 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처신해야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잇값 한다”는 소리를 들을지가 매우 조심스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