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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假面) 놀이 – 문계성 수필가

세상은 인간의 간교함과 포악함 때문에 항상 혼란스럽다. 그러나 영특한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할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이 이데올로기에 토대하여 법률을 만들고, 이를 집행할 조직을 만들어 운용할 줄도 안다.
아만(我慢)이 드세거나, 논리가 정치(精緻)한 인간들은, 자기가 만든 논리에 추종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무슨 주의(主義)니 해서 세력을 만든다. 어떤 특정의 주의가 득세하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적 이념이 될 때, 그 이념은 허구가 밝혀질 때까지 진리로 행세한다.
맑스나 레닌 주의자들은 공산주의 이념을 관철하는 과정에 수 천 만 명의 인명을 살상했다.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가난과 권력의 폭력에서 인간을 구출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인민은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밤낮 긴 줄을 서야했고, 권력은 더욱 소수에게 집중되는 전체주의 체제가 만들어 졌다. 그래서 영특한 인간들은 그 체제를 비판하고, 비판을 받은 자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자아비판(自我批判)을 했다. 공산주의 체제의 허구가 들어나는데 약 백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이 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을 구원할 진리였다.
체제가 공격을 받을 때, 그 체제의 기득권자들은 어떻게 할까. 그 이념에 젊음을 바치고 그 이념을 삶의 의미로 삼아온 자들은 어떻게 처신할까? 그들은 자기 합리화나 변장(變裝)을 택할 것이다.
중국은 공산주의의 한계를 실감하자, 사회주의 간판은 그대로 달아두고 국가가 자본을 운영하는 국가 자본주의를 택했다, 그 후 60여 년 간, 이 나라는 세계를 향하여 장사를 하여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국가통제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하다. 이 나라 서부지역의 농민들은 동부 해안지역에 형편없는 저임금으로 고용되어 착취당하고 있다. 국가가 “평등한 사회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자국민을 착취하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이다. 미국과의 지루한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의 국호는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 체제이다. 사회주의의 가면을 쓴, 일당이 국가권력을 독식하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이들은 왜 사회주의 가면을 벗지 못할까? 사회주의라는 이름은 평등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회주의라는 말에 잘 속는다. 그래서 이 국가의 지배자들은, 자국의 인민들이 평등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환상 속에 묶어 두고, 권력을 독점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내리지 못한다. 선거를 밥 먹듯이 한다면 그들의 권력독점이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군사 정부를 수 십 년 간 경험했고, 이 군사정부가 추구한 것은 산업화였다. 압축된 산업화 과정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 부작용은 소위 “민주화 운동”을 야기했다. 그리고 자칭 “민주투사”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매우 극단적 반미(反美)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세계를 분할하여 지배하는 악의 원흉이라 불렀고, 우리나라의 기업들을 미국의 거대 자본에 기생하는 매판자본으로 공격하며, 우리나라의 산업적 성공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그 아들이나 딸들을 전부 그들이 증오를 퍼부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거나 많은 돈을 주어 미국에서 살게 했다. 그 돈은 말할 것도 없이 군사정권이 추진한 산업화로 얻어진 과실이었다. 나는, 이들의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문제는, 고지식한 내가 이들의 입에 발린 반미를 진심으로 알았던 오류에 있었다. 이들의 “반미”는 정치적 구호였고, 남한을 공격하는 주체사상으로부터 받은 교육의 산물이었다. 이들의 마음에는 이들의 거친 구호와는 달리, 저 풍요한 나라인 미국에 대한 한없는 동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소중한 아들을 왜 미국으로 보냈겠는가? 이들은 머리와 마음이 서로 다른 정신 분열적 인간들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혹은 정치적 술수와 이익 때문에 속마음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인간들일까?
‘암살’ 인가하는 영화에는, 멋있는 테러리스트로 포장된 김원봉이 나온다. 김원봉은 의열단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중국 장개석이 만든 황포군관학교를 나와, 1938년 중국의 요구로 한국인 300여 명을 모아 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그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김원봉은 이 중 290명을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에 넘겨주고, 남은 10여 명의 대원만 데리고 광복군과 합류하여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낸다. 당시 김원봉이 대원들만 넘기고 자신은 중국공산당에 합류하지 못한 이유는, 중국공산당이 김원봉을 소영웅주의자로 분류하여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김원봉은 광복 두 달 전에 광복군에서 탈퇴하였고, 광복 후 좌우 대립 시에는 좌익인 조선민족전선연맹에 속하였다. 1948. 4. 김일성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평양 남북협상 시, 김구 등과 북한에 갔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북한의 검열상, 노동상, 그리고 인민최고위위원회 상임위 부위원장 직을 맡아 북한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김원봉의 월북의 이유가 노독술이라는 친일 경찰에게 뺨을 맞고 분노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나, 이승만 정부의 수립시기가 김원봉의 월북 이후인 1948. 8. 15. 이므로 이 말은 맞지 않는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북한에서 그렇게 큰 성공할 수 있었을까. 1958년, 김일성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숙청되었다.
보리가 익어가는 6월, 대통령은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천안함 유족들을 불러 놓고, 김정은의 손을 잡고 환호작약하는 사진첩을 보여주고, 하필 현충일에, 호국 영령들에게 총을 겨누어 죽음을 준, 그 북한에서 권력자로 군림하고, 6. 25. 남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김원봉을 치켜세우며, 김원봉이 조직한 조선의용대가 광복군과 합류하여 국군의 뿌리가 되었다는 추념사를 했다. 슬픔에 젖은 유족들을 불러 놓고 그 앞에서 원수를 찬양하는 격인, 마치 한 토막 희극 같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람의 본마음은 미사여구(美辭麗句)에서 나타날까, 행동에서 나타날까? 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그의 미소 띤 얼굴을 보는가, 행동을 보는가?
가면(假免)은 본 얼굴이 아니므로 언젠가는 벗겨질 운명에 있다. 인간의 근본은 영특해서, 가면을 영원히 본 얼굴로 착각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