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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읽는 동화| 검정구두 이야기 – 소민호 동화작가

“여기가 어디야?” 나는 찢어진 하얀 포장지 틈으로 밖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쓰레기 소각장이지!”
금세라도 찌그러질 것 같은 낡은 의자의 말이었습니다.
“너는 새 구둔데 왜 여기 왔어?”, “사람이 한 번도 신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뿐이야.” 의자는 내 안을 기웃 기웃거렸습니다. “음, 정말 그렀네. 발 냄새 대신 곰팡이 냄새가 나고, 많이 텄구나!” 의자는 쓰레기들을 잡고 삐걱거렸습니다.
“그런 너는 어쩌다가……?”, “나야 의자로서 할 일을 다 하고 왔지. 공부하는 학생 반듯하게 앉혀주었고, 다리 아픈 사람 쉬게 해주었고, 길 가에서 지친 노인들 고린내 나는 엉덩이까지 받쳐 주었으니, 내 할 일 다 한 거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너를 왜한 번도 신지 않았 을까? 하긴 이렇게 큰 네게 맞는 발이 있었을까, 싶네!”
의자는 유난히도 큰 나를 보고 스스로 묻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밤마다 댓돌만 지켰어.” 나는 다운받은 동영상처럼 옛날 일들을 슬슬 풀어놓았습니다. 낡은 의자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 발 모양대로 만들어졌어. “허허, 발이 크긴 참 크다.” 구둣방 할아버지가 나를 들고 빙그레 웃으며 진열장에 넣었지. 하지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어.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진열장에서 걸어 다니는 발들만 구경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회색 절복바지를 입은 아주머니 보살님 다섯 명이 구두 가게에 들어왔어. 모두 형님 아우 하는 게 자매들처럼 가까워보였어. “오, 저게 좋겠다!” 한 아주머니가 나를 가리켰어. “아이구야, 크다!”, “저렇게 큰 발도 있나?”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의 작은 발을 내려다보면서 혀를 내둘렀어.
그렇게 내가 팔려 간 곳은 작은 암자였어. “연좌 스님, 이거 받으세요!” 아주머니들이 젊은 비구니 스님 앞에 나를 내 놓았어. “이, 이건……?” 이제 겨우 스무 살 갓 지난 앳된 스님이었어. “까닭은 묻지 말고, 오늘부터 해가 지면 이 구두를 스님 방 앞 댓돌에 올려놓고, 아침에는 방에 넣어놓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좌 스님도 더 묻지 않았어.
그렇게 나는 밤마다 연좌 스님 방 앞을 지켰지. 법당에 불이 꺼지고 연좌 스님 방에도 불이 꺼지면 나는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았지.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빛을 내며 눈길을 끌었어. 하늘이 어두울수록 그 별빛들은 더 빛났지.
“부처님, 안 주무십니까?”, “허허, 밤마다 고생하는구나.” 바람이 지나가다가 슬쩍 벌려놓은 법당 문틈으로 부처님이 내다보셨어. “부처님, 저는 사람 발과 함께 길을 걸어 다녀야 하는데, 이렇게 지내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저마다 제 몸에 맞는 일만 한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재미없겠느냐? 너나 저 연좌나 다를 바가 없구나. 더러는 너희들처럼 지내는 이들이 있어야 어울세상이 되지 않겠느냐.”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어. 그날따라 별들이 참 많았지. 밤하늘의 눈물방울 같은 별들이 금세라도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어.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밤이었어. 절 마당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 거야. 순간 찬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어. 섬뜩한 기운이 온몸을 조여들었고 숨도 멎어버리는 것 같았어. 그림자는 연좌스님이 자는 방문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거야. 텅 빈 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어. 바람을 붙잡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어.
“헉, 이건……!”, 검은 그림자가 나를 보고 흠칫 놀랐어. 그 때였어. “어험, 흠 흠!” 연좌스님 방에서 굵은 기침소리가 들렸어. 나는 더욱 놀라 까맣던 하늘이 노래졌어. 남자의 기침소리였거든. 검은 그림자는 움찔 하더니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절 마당을 빠져나갔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기침 소리는 연좌스님 기침소리였어.
그 뒤부터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어. 그러자 내 빈 가슴에도 뭔가가 꿈틀거렸어. 내가 하릴없이 댓돌만 깔고 앉아 지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맞다. 내 안에는 바람과 별빛과 달빛도 머물다가 가지만, 그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누군가가 나를 신고 있는 게 분명해!’
나는 그렇게 믿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댓돌과 연좌 스님 방을 들락거렸어. 세월이 지나면서 내 안에는 눈곱보다 작은 거미가 거미줄을 쳤어. 날이 갈수록 곰팡이도 피고, 안과 밖에는 씻지 않은 한겨울 아이 손등처럼 쪽쪽 갈라졌어.
곱던 스님 얼굴에도 주름살이 눌러 앉았지.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할머니가 된 보살님들, 연좌 스님에게는 어머니 같은 보살님들이 한 사람씩 이 세상을 떠났어.
“이제 한 분 밖에 안 남았구나!” 연좌 스님은 법당을 나서면서 하늘을 쳐다보았어. 스님의 머리에도 하늘 한 자락이 파리하게 내려앉아 있었어. 나를 들고 암자를 들어서던 그 때의 보살님들 보다 나이가 더 많았지.
그때였어. “스님, 이 아이를 좀 키워주십시오. 이웃 아인데 얼마 전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 로운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씩 암자를 찾는 할머니가 어린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어. “얘가 몇 살입니까?” “이제 6살입니다. 고아원에 보낼까 하다가 혹시 스님께서 키우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연좌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 손을 잡아주었어. 그 아이도 스님이 싫지 않은지 얼굴빛이 밝았지.
아이는 자박자박 다니면서 암자 곳곳에 눈도장을 찍었어. “스님, 저 구두는 누구 거예요? 이 절에도 남자가 있어요?” 아이는 방 윗목에 있는 나를 가리켰어. “어, 음, 그 구두는 부……, 부처님, 그래 부처님 구두란다.” 연좌 스님은 더듬거리며 대답을 했어. 얼굴도 발그레 해졌지. ‘후후후, 별 일이다. 부처님 곁에서 그만큼 살아온 연좌 스님이 얼굴 붉어질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하루 종일 연좌스님 얼굴을 떠올리다가 해질녘이 되어서 댓돌 위에 자리를 잡았어. 건너편 법당에는 언제나 문이 손바닥 두께만큼 열려 있었어. 그 바람에 나는 밤마다 부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어.
“부처님, 오늘도 이사람 저사람 마음 살펴주시느라 힘드셨죠?”, “허허, 이제 네가 내 마음을 달래주는구나. 그러고 보니 너도 암자에 온지 오래 되었구나.”, “예, 부처님.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내 빈 곳을 네가 채워 줘서 고맙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제 뜻대로 안 되는 법이거든.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제 마음도 걷잡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듯 바깥에서 마음을 흔드는 기운도 감당하기 벅찬 법이지. 그런 걸 생각하면 여태껏 너는 연좌의 바람막이가 되어 준 또 다른 부처로 살았느니라.”
부처님은 그 말씀을 하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으셨어. 나도 부처님 말씀만큼 무거워진 내 몸을 댓돌에 맡겼지. 그렇게 또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몰라. 언제부턴가 댓돌 지키는 일도 그만 두고 방에서만 지냈어.
“예! 돌아가셨다고요?” 어느 날 스님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채비를 했어. “은혜야, 공양주 말씀 잘 듣고 말썽 부리지 마라.”, “예, 다녀오세요.” 은혜라는 여자 아이는 혼자 지내는 일에 익숙해 있었어.
연좌 스님은 서둘러 절을 나섰지. 돌아가신 분은 다섯 보살님들 가운데 마지막 남은 대덕 보살님이었어. 텅 빈 내 가슴이 갑자기 먹먹해졌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지. 해거름에 돌아온 스님은 절을 들어서자마자 부처님 앞으로 갔어.
이어서 흘러나온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오랫동안 암자를 촉촉하게 적셨지. 한참 만에 법당을 나온 스님은 나를 하얀 종이로 곱게 싸고 끈으로 묶어서 밖에 내 놓았어. 빈 종이상자와 빈병을 쌓아 둔 곳이었어.
“스님, 저 구두는 부처님 거라고 했잖아요?”, “응. 하지만 이제 부처님도 안 신으신대.” 은혜는 머루 같은 까만 눈만 깜박였어. “나무아미타불, 이승에서의 우리 인연은 여기까진가 봅니다.” 스님은 나를 앞에 두고 합장을 했어. 옆에 서 있던 은혜도 단풍잎 닮은 두 손을 살포시 모았고. ‘아, 저 아이만은 보통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
그 건 나만의 바람이었을까? 은혜의 얼굴에 연좌스님 얼굴이 천천히 겹쳐지고 있었어. 나는 눈을 감아버렸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의자가 다소곳해졌습니다.
“음, 그런 구두인줄 몰랐어.”, “말 안하면 모르지. 그렇다고 자랑거리도 아니고……. 이 세상에 신으로 태어났으면 신으로 사는 게 보통 삶이잖아. 의자로 태어나서 의자로 살아온 너처럼 말이야!”, “후회하는 거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내 말이 의자의 마음을 어지럽힌 모양입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야.” 어디선가 기계소리가 들렸습니다.
의자와 나는 버려진 물건들과 함께 기계소리 따라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앞에는 불꽃이 일렁거렸습니다. “저 불꽃 참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다운 불꽃은 처음 봐!” 의자와 나는 불꽃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