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산악회, 정상에 서다!

22일 밤 11시30분. 산악회 회원들이 군데군데 모여 굵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반신반의하고 있다.
밤 11시 50분. 타고갈 버스들이 줄을 서고 23일 0시가 되자 하루 일정의 산행을 위해 설악산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그렇게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도 합천읍을 벗어날 때는 거짓말 같이 사그라지더니 흔적도 찾기 힘들다. 필자와 같은 좌석인 손은수 사무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제부터 비가 쏟아져 예약한 회원들이 많이 취소될 줄 알았는데, 112명 중 3명만 취소되고 다 참석하셨다. 그 전에는 두세 시간 거리의 산들만 물색하여 등반을 계획하면 보통 200명 가까운 회원들이 참석한다”
이번 산행이 힘든 것은 단순히 설악산 때문만이 아니라 차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산을 오른다는 것이다. 6시간, 왕복 12시간을 차에서만 있어야 하고 출발지인 합천읍은 굵은 비까지 내린 것이다.
합천에 있는 한반도산악회(회장 이종갑)는 목적에 따라 만들어졌다 갑자기 사라지는 그런 산악회가 아니다. 2013년에 창립되어 2019년 6월까지 48차 산행과 300명이 넘는 회원수를 자랑한다. 회원들은 매달 일정한 회비를 내며 사무실 운영비 등 자체 경비를 마련한다. 이것은 단순히 먹고 노는 산악회가 아님을 뜻하며, 산을 좋아하고 회원들의 끈끈한 유대가 없으면 지속하기 힘든 모임이다.
이 회원들 중 특이한 가족이 있다. 바로 이상식 씨 가족이다. 그들은 48차 산행 중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한다. 이상식 씨는 늘 그렇듯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필자의 물음에 답한다. “그냥 산이 좋다. 제 가족(아내와 두 아들)도 저랑 같이 산을 오르는데 어느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한반도산악회는 제가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그분들과 함께 하는 등반은 언제나 즐겁다”
23일 오전 5시 30분. 설악산관리소를 초입에 두고 아침 식사를 위해 내린다. 해는 볼 수 없지만 날은 어둠을 힘껏 밀어내고 있다. 오전 6시 30분. 해물탕과 두부김치로 아침식사를 끝낸 회원들은 설악산 공기 탓인지 밤을 세며 달려온 사람들같이 않게 생기 있고 발랄하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 산행대장을 따라 간단한 체조를 하고 이제는 울산바위를 향해 고(go)! 산행대장 노희석 씨는 한반도산악회가 창립하게 된 이유를 말해 준다.
“예전에 몇몇 아시는 분들끼리 모여 만나면 술 마시고 헤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무미건조한 만남보다는 함께 즐길 수 있는 만남이 뭘까 생각하다 산악회를 결성하게 됐다. 해마다 회원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저 또한 놀랍고 기쁘다”
설악산관리소에서 정상까진 3.8㎞. 왼편으론 설악산 케이블카가 전기줄처럼 권금성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30분쯤 지났을까 신흥사를 지나 안양암까지는 산책 코스처럼 편안한 길이였으나 이제부턴 비포장 산길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등산객의 발목을 힘들게 한다. 다행히 우람한 나무 그늘과 곁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하늘은 짙푸르고 구름은 새하얗다. 점점 가팔라지는 경사 때문에 공터처럼 넓은 둘레에는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쉬고 있다. 산악회회원 한 분이 필자에게도 신갈나무잎을 따다 건네주며 신발 깔개로 사용하라 한다. 왠지 발바닥이 한층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어느덧 사람들의 말 수는 적어지고 거친 숨만 더해 간다. 서로서로 손을 당기며 일행들이 올라선 곳은 개조암. 개조암 길목에 있는 흔들바위 앞에는 벌써부터 몇몇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윽고 필자의 차례가 되고 흔들바위를 힘껏 밀어보는데, 어쩌면 흔들렸을 것 같고, 어쩌면 마음만 흔들렸을 것 같다.
이제 울산바위 정상까진 1㎞. 급경사 탓에 누구나 구도자가 되어 침묵으로 산을 오른다. 머리 위로는 새하얗고 웅장한 바위들이 근엄하기 비할 데 없어 이 산의 신이라 생각한다. 철로 된 사다리는 인간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아래로 훤히 보이는 낭떠러지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하늘을 닿을 듯 지상은 아득한데 조금만조금만 하며 이윽고 정상이다.
오전 8시 30. 저 멀리로 속초가, 더 멀리로 동해가 광활한 지평선 같이 펼쳐지고, 긴 뱀같이 미시령 고갯길이 설악산을 관통하며 물길 같이 흐른다. 필자보다 먼저 오른 회원들만 4,50명. 그 중 절반이 넘는 것이 여성회원들이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회원들, 얼마 후엔 80명을 넘긴다. 회원들은 한반도산악회 깃발을 앞에 두고 울산바위 정상에서 사진을 컷! 한다. 언젠가 누군가 설악산에게 물어보면 ‘이 곳에 한반도산악회가 왔다’고 말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