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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소리 – 소민호 동화작가

“댕 대엥, 댕 대엥……!”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이 참 편안해졌습니다.
“그 소년도 할아버지가 됐겠지?”, “이제 그만 잊어. 사람들은 포탄을 싫어한단 말이야!” 소나무가 그리움에 빠지는 내 마음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일은 참 잘 했다 싶어!” 나는 지난 일들을 또 풀어놓았습니다.
―총소리와 포탄 터지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어. 사람들은 벌벌 떨며 그 소리를 피해 도망을 갔지. “포탄을 차에 실어라!” 군인들이 무기고에 들어와서 나를 꺼냈어. 멀리서 들려오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소리들이 마치 음악처럼 들렸지. “흥, 나는 저 소리보다 더 큰 소리, 더 멋진 소리를 낼 수 있어!” 나는 우쭐대며 다른 포탄들과 함께 큰 차에 올라 비행장으로 갔어. 비행장에 도착한 나는 한 비행기에 매달렸어. ‘내가 터지면 불바다를 이루고 땅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태우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어.
드디어 신호에 따라 전투기들이 순서대로 떠올랐어. 내가 탄 전투기는 제일 뒤에 출발했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앞서가는 전투기들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어. 하늘 높이 올라간 전투기 네 대는 앞뒤 간격을 맞춰서 어디론가 날아갔어. 처음 보는 경치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어. 겹겹이 솟은 초록빛 산과 그 산을 돌아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한 폭의 그림 같았거든. “저렇게 아름다운 산과 강을 꼭 불바다로 만들어야 하나!”
갑자기 산과 강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 “아니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어. 경치에 한눈팔다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될까봐 앞만 바라보았어. 그렇게 얼마쯤 더 날아갔을 때였어. 검은 연기와 불꽃들이 하늘로 치솟았어.
“아, 사람들이……!” 나는 눈을 질끈 감았어.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고, 쓰러진 사람을 흔들며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았어. 나는 처음으로 가슴이 먹먹한 걸 느꼈어. 그 때 전투기들이 고도를 낮췄어. 나는 갑자기 온 몸이 오싹해졌지. 고도를 낮춘 전투기들은 큰 산자락을 스쳐 지나갔어. 사람들이 숲 속과 바위 뒤로 몸을 숨겼지. 아이들은 놀라서 막 울기도 했어. 전투기들은 다시 멀리 돌아서 그 산길을 향해 돌진했어. 그 때는 이미 사람들이 모두 숨은 뒤였지. 하지만, 앞서 가던 전투기들은 나무와 바위들을 향해 포탄을 떨어뜨렸어. 온 산이 불바다가 되고, 땅을 뒤흔드는 폭음이 하늘로 치솟았어. 이어서 숨어 있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산을 가득 메웠고, 숨어 있던 군인들은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어.
이어서 마지막 공격을 하려고 나를 실은 전투기가 속도를 높였어. 나는 몸을 옴츠렸지. “앗, 피하세요!” 아이를 안은 엄마가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쳤어. 아이를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거든. “아, 이일을 어떻게 해!” 아이가 엄마의 어깨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았어. 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눈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 “안 돼!” 나는 비명을 질렀어. 내 눈에 들어온 이상 그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어. 조종사는 나의 외침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발포 단추를 눌렀고, 묶였던 끈과 고리가 풀리며 나는 그 사람들을 향해 날아갔어.
“아, 신이시여,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지 않도록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나는 이미 발사된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기도를 했지. 포탄으로서 해야 할 일보다 그 사람들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던 거야. 내 몸은 그 사람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어. 갑자기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가 미워졌어. “아, 사람들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저를 멈추게 해 주십시오!” 나는 소리치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 어느 포탄보다 큰 내가 폭발하는 날엔 그 사람들은 물론 근처에 숨어 있던 사람들까지 온전할 수 없었거든. “아악!” 나는 땅에 몸이 닿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몸을 옴츠렸어. ‘퍽’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지. “휴우-, 불발탄이다!” 한참 뒤 수런거리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어. 그러나 내 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 내 몸은 이미 땅속 깊숙이 묻혔던 거야. “폭탄아, 고맙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땅속에 묻힌 내 엉덩이를 어루만졌어.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아이 같았어. “우리도 아저씨들 따라 가자.” 그렇게 발자국소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난 목소리는 더 들을 수 없었어.― “밤이 깊었어. 이제 자야지.” 내 이야기가 끝나자 소나무는 뿌리에 힘을 주고 녹슨 내 몸을 꼭 안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소나무가 기지개를 켜고 발돋움을 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사람들 소리가 두런두런 들렸습니다. “웬 사람들이야?”, “응, 등산객인가 봐.” 늘 있는 일이라서 소나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여기는 몇 번이나 다녀갔지 않습니까?”, “이 곳이 맞다. 비록 나무가 우거지긴 했지만 내 기억에는 여기가 분명해.”
갑자기 소나무 뿌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굵은 뿌리가 내 몸을 조이는 걸 보면 소나무가 긴장하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속삭였습니다. ‘사람들 차림이 이상해!’ 소나무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와 그 아들이 청소기 같은 기계를 짊어진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여기를 찾아볼까요?”, “그 쪽은 여러 번 찾은 곳입니다. 맞은편에서 찾아보십시오.” 기계를 멘 사람은 언덕 구석구석을 청소하듯이 찾았습니다. “목사님, 동전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니까요. 전에 몇 번이나 찾았던 곳이라 녹 슨 못도 하나 없을 거예요. 여기 와서 좀 쉬세요.” 할아버지와 함께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아들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뭔가가 내 몸을 눌렀습니다. ‘삐삐’하는 기계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어, 이상하다!” 기계소리가 멈추고 땅 파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서 내 엉덩이에 바람 한 점이 지나갔습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람결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찾으시는 게 이거 아닙니까?” 괭이질을 멈춘 사람은 내 엉덩이에 쌓인 흙을 쓸어냈습니다. “맞습니다. 아직도 여기 있었구나!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감은 두 눈에 눈물도 맺혔습니다. “목사님, 이건 군인들이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야겠지요. 얘야, 이 포탄이 터지지 않는 바람에 오늘 날 우리 가족이 있었고, 내가 목회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단다.”
늙은 목사님은 아들에게 지난날을 들려주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여태껏 나를 잊지 않고 있었어!’ 내 가슴은 터질 것처럼 뛰었습니다. 비행기에 실려 하늘을 날 때보다 가슴이 더 뛰었습니다. “내려가자. 내려가서 군인들에게 부탁하자.” 목사님과 아들이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야, 오늘따라 별이 참 많다!” 소나무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마치 젖은 몸을 털 듯 온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그려보았습니다. 몇 십 년 전 엄마의 어깨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별을 닮은 아이의 눈도 떠올랐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군인들이 무장을 한 채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군인들은 여기저기 기둥을 세우고 줄로 울타리를 친 뒤 내가 묻힌 땅을 팠습니다. 한참 동안 땅을 파던 군인들이 소나무 뿌리를 벌려 나를 들어냈습니다. ‘아, 내가 다시 세상에 나왔구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눈이 시릴 만큼 파란 하늘이 낯설었고, 오랫동안 함께 지낸 소나무도 낯설었습니다. “내관을 빼내고 안전하게 옮겨!” 군인들은 내 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풀어헤친 뒤 속에 든 화약까지 빼냈습니다. 몸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장교님, 이 포탄과 저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멀리서 지켜보던 목사님은 장교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의 뜻을 보고하겠습니다.” 장교는 목사님에게 경례를 한 뒤 군인들과 함께 나를 차에 싣고 부대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렇게 컴컴한 창고에서 며칠을 지냈습니다. ‘음, 또 어디로 데려갈 건가?’ 창고 문이 열리며 눈부신 햇살과 함께 군인들이 들어왔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군인은 목사님이 타고 온 짐차에 나를 실었습니다. 목사님은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 뒤 나를 싣고 큰 공장으로 갔습니다. “잘 만들어 주십시오.” 목사님은 공장 마당에 나를 내려놓고 돌아갔습니다. “허허, 이런 걸 갖다 주고 주문하는 사람은 처음이구먼!”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나를 공장 안으로 옮겼습니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내 몸을 뜨겁게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다짜고짜 나를 기계로 들어서 벌겋게 단 가마에 넣었습니다. 쇠를 녹이는 가마였습니다. ‘아, 나를 녹일 참이구나!’ 나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고민을 할 틈도 없었습니다. 가마가 점점 달아오르면서 내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렸습니다. 견디지 못할 만큼 아프고 뜨겁던 몸이 편안해졌습니다. 정신도 아득하게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또 흙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땅 속에 묻혔을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흙이었습니다. 아직도 열이 남아 있긴 했지만, 몸가짐이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흙이 떨어져나가자 달라진 내 모습이 세상 빛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마음에 드십니까?”,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차를 타고 새로 지은 교회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조심해서 매달아 봅시다.” 사람들은 나를 높은 곳에 매달았습니다. 멀리 펼쳐진 들에는 초록빛이 바람에 일렁거렸습니다. 산자락에 기대앉은 집들과 나무들이 평화로워보였습니다. “줄을 당겨 보셔요.” 밑에서 사람들이 내 몸에 묶은 줄을 당겼습니다. 내 몸이 흔들리며 안에 있는 추가 몸을 때렸습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대에엥 댕-, 대에엥 댕-, ……!” 내 몸에서 포탄소리가 아닌 땅 속에서 들었던 교회의 종소리가 났습니다. 내 소리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를 했습니다. 목사님 곁에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낯설지 않은 따뜻한 눈빛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앙상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습니다.
“포탄도 오래 묵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구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