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작은 소리꾼_ 소민호 동화 작가
“잘 견뎠구나!”
할아버지가 진흙 속에서 나를 건져 냈습니다.
몇 년 동안 연못 속 진흙에 묻혀 있었던 내 몸은 팅팅 불었습니다. 껍질은 짓물러 너덜거렸고 속살이 다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짭짤한 소금물에 내 몸을 담그고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시커먼 껍질이 벗겨지면서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도꼬마리로 문지르는 듯 따갑고 아렸습니다.
나는 다시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마솥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뜨거운 물 위로 불쑥 뛰어올랐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차라리 땔감이 되어 내 몸을 불사르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아, 내 꿈은 이런 게 아니었어!’
땅속에 있을 때 나는 바람 소리와 물소리와 새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져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작은 소리꾼이 되는 꿈을 꾸었던 겁니다.
하지만 어림없는 꿈이었습니다. 땅속에 묻힌 한낱 나무뿌리가 소리꾼이 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 꿈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꿈만 꾸어도 신나는 일이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자 내 몸 안에 있던 찌꺼기들이 펄펄 끓는 물에 녹아내렸습니다. 내 몸속에 배어 있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까지도 다 빠져나가는 듯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까만 밤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잘 말랐구나. 나무든 사람이든 필요 없는 것들이 몸속에 많으면 무거운 법이지!”
할아버지가 며칠 동안 말린 나를 들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장들이 흩어져 있는 작은 방이었습니다. 톱밥과 나무 조각들도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뭐 하는 곳일까?”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너도 나같이 안 되려면 조심해.”
톱밥과 나무 조각에 묻혀 있는 나무토막의 말이었습니다. 무엇을 만들다가 만 것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양옆으로 물고기 눈처럼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구멍과 구멍을 이어 주듯 깊이 파인 홈도 보였습니다. 연못에서 보았던 물고기를 꼭 닮았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버려졌어?”
“쳇, 내가 알아? 툭툭 두드려 보더니 휙 던져 버리더라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땔감밖에 더 되겠어.”
나무토막은 꼭 남의 일처럼 말했습니다.
나는 창밖으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 하늘을 봐도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전 같으면 물속에 잠긴 하늘을 보면서 아픔을 참고 꿈도 키웠을 텐데 말입니다.
‘음, 그때는 나도 힘이 넘쳤지!’
내가 땅을 박차고 발돋움을 하면서부터 땅속에 있는 물과 영양분을 쭉쭉 빨아서 위로 밀어 올렸습니다.
가느다란 나무둥치는 해가 거듭될수록 굵어졌습니다. 가지가 많아지자 따라서 나뭇잎도 무성해졌습니다. 나는 산새들의 노래와 바람 소리를 즐겼습니다. 절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도 품었습니다.
그 소리들이 거름이 되어 봄에는 하얗고 작은 꽃으로 피어났고, 꽃 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열매가 노랗게 익으면 사람들이 와서 열매를 따 갔습니다. 1년에 한 번 사람 냄새를 맡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이, 시어!”
“시긴, 달콤하기만 하구먼.”
열매를 맛보는 사람들은 눈을 살살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살구는 이런 맛에 먹는 거야.”
그때 비로소 내 열매가 살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래된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고 나도 어느덧 늙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힘이 빠져 꽃도 피울 수 없었습니다. 살구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키가 유난히 작은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매일 찾아와서 힘없는 내 둥치에 등을 기대고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얼굴에는 그늘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아침 일찍 와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점심때를 훌쩍 넘기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니?”
“….”
아이는 말없이 저를 데리러 온 스님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휴우, 이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어서 어른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야 하나. 그래. 언젠가는 말을 할 때가 있겠지.”
스님은 혼자 중얼거리며 아이와 함께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날마다 내 곁에서 놀았습니다. 아이가 안 오는 날에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꼭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 아이도 따라서 말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힘도 없고 늙은 나무뿌리에 지나지 않는 내가 소리꾼이라니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도 버거웠습니다. 그런데도 소리꾼의 꿈은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만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내 둥치를 자른 뒤 나를 파냈습니다. 뽑히지 않으려고 용을 썼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 땅에서 나온 나는 햇살에 몸을 옴츠렸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어색해서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할아버지는 나를 연못 속 진흙에 묻었습니다.
땅속에서 살았던 나지만 물기 때문에 숨 쉬기도 힘들었고, 껍질이 썩는 아픔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진흙 사이로 보이는 작은 물고기들 재롱에 아픔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물에 비친 하늘을 보고 마음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톱으로 자르고 작은 손도끼로 내 몸을 깎아 냈습니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음, 잘 말랐구먼. 이번에는 잘될 것 같다.”
할아버지는 손도끼를 내려놓고 나를 조름쇠에 물린 뒤 나사처럼 생긴 활비비로 구멍을 뚫었습니다. 속살이 활비비 골을 타고 꾸불꾸불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뚫은 구멍으로 골칼을 넣어서 속살을 더 파냈습니다. 속이 텅텅 비었습니다. 텅 빈 가슴속에 바람 한 점이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나는 허전함과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내 몸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 크던 몸이 다 잘려 나가고 겨우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 했습니다.
할아버지 공방에서 만났던 나무토막처럼 양쪽으로 큰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과 구멍을 이어 주는 가는 홈이며, 손으로 잡기 좋게 다듬은 손잡이까지 있었습니다. 색깔도 짙은 황토색이 되어 반질거렸습니다. 몸에서는 고소한 들기름 냄새도 몽글거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낯선 곳에 있었습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주위가 어두운 걸 보니 밤이 분명했습니다.
“잘 만들었구먼.”
불이 밝혀지면서 스님이 들어섰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같이 들어선 키가 작은 동자승도 낯이 익었습니다.
‘아, 맞다. 매일 절 뒷산 언덕에 올라와서 내 둥치에 등을 기댄 채 먼 산만 바라보던 그 아이야. 많이 컸구나!’
반가웠습니다. 들기름 바른 내 몸으로 법당 불빛을 모아 동자승 얼굴을 비췄습니다. 동자승은 주춤하다가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
동자승은 스님 소매를 잡아당기며 나를 가리켰습니다.
“이 목탁은 뒷산 언덕에 있던 살구나무 뿌리로 만든 거란다.”
스님의 말에 소년은 살며시 내 몸을 만졌습니다. 손길이 참 따뜻했습니다. 뒤를 이어 또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내게 매달아 놓은 작은 채로 나를 통통 두드렸습니다.
“통통통 통통통통!”
새벽어둠이 내 소리에 기지개를 켰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텅 비었다고 여긴 내 안에서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었을 줄 몰랐습니다. 속을 비운 만큼 그 소리가 맑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동자승은 땀을 흘리며 절을 했습니다. 눈물도 줄줄 흘렸습니다. 땀과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었습니다. 사람들은 내 소리에 맞춰 염불도 하고 꿇어 엎드려 절도 했습니다. 부처님도 눈을 스르르 감았습니다.
내 소리가 염불 소리에 섞여 오랫동안 법당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목탁 소리가 마치 옹달샘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참 맑다!”
“부드러운 바람결을 타고 들리는 새소리 같기도 해.”
“세상을 닦는 소리니까… 아무튼 작고 멋진 소리꾼이야!”
가만가만 말을 주고받으면서 남 먼저 법당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빛이 가을 하늘을 닮았습니다.
“남∼무∼암∼타불, 관∼셈∼보살!”
어눌한 목소리가 법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은 내 몸 두드리기를 멈추고 동자승을 돌아보았습니다.
여전히 동자승은 눈물을 흘리며 어눌한 목소리로 염불을 외고 있었습니다.
한참 그런 동자승을 바라보던 스님은 다시 나를 두드렸습니다.
“통통통 통통통!”
내 목소리와 염불 소리는 힘차게 새벽안개를 걷으며 해마중을 했습니다. (끝)
<작가소개> 소민호 작가는 1952년 합천 대양 회암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제3회 동화문학 신인상 동화부문 당선되었다.
부산아동문학상, 이홍주아동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지은 책으로 합천 옥전고분군의 다라국을 모티브로 쓴 동화 <다라국 소년 더기>, 대야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운 신라 장군 죽죽의 이야기를 다룬 동화 <대야성 장수 죽죽> 과 같이 지역을 모티브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으며 그외에도 <꿈꾸는 돌콩이>, <형제 섬의 비밀>, <작은 솔씨의 고집>, <다라국 소년 더기>, <바위틈에서 키운 하얀 꿈>, <자맥질>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