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사랑과 사랑방 손님 _김호연

우리 집 가족구성은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 조카 4대가 모여 한집에서 북적거리며 사는 대 가족이다. 할아버지는 50세에 할머님과 사별 하신 뒤 사랑방에서 손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시면서 기거를 하셨다. 지극 정성을 다 하시어 오빠들을 사랑으로 키우시다가 중학교 갈 때 즈음에는 오빠들이 공부한다고 다른 방으로 가고 나와 남자 동생이 할아버지 방으로 배정이 되어 사랑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남아 사상이 강하시어 여자아이는 좋아하시지 않으셨는데 그나마 나는 할아버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싹싹하고 부지런한 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록 미닫이 문짝 없는 방이지만 안방에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과 비좁게 자는 것 보다 작은 방이나마 내 방이 생긴 샘이니 암튼 좋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서 자게 되었고 오빠들이 사용했던 것이지만 조그마한 앉은뱅이책상을 물려받게 되는 행운이 생겼다. 산골 추운 겨울밤 할아버지 방에는 화롯불을 방에 놓아주는 것은 방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 역할도 하지만 간식을 만들 때 쓰이는 친환경 오븐 역할을 한다. 동지섣달 긴긴밤이 되면 할아버지는 집에서 키우던 닭이 알을 낳으면 날계란은 드시고 계란 껍데기 속에 미리 불려놓은 쌀을 반 정도 넣고 물을 3분의2정도 부어 화롯불에 살짝 묻어놓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물이 보글보글 끓어 김이 모락모락 나더니 하얀 밥이 볼록하게 부풀어 올랐다. 동생하고 둘이는 신기한 눈으로 마주보며 웃었다. 소금도 간장도 넣지 않았는데도 얼마나 고소하고 맛이 좋았는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유의 명절 설날에는 가래떡을 해서 떡국을 끓어먹는 풍습이 있다. 가래라는 뜻은 둥글고 길게 늘려 만들어 새해에도 가래떡처럼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뜻이 있고 맵쌀로 만든 흰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 돈을 많이 벌어 부자 되라는 의미도 있는가 하면 흰 빛깔처럼 순수하고 순백하게 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깊은 유래가 있는 가래떡을 언제부터 전해 내려 왔는지 모르지만 설날에는 의례히 떡국을 끓어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동그란 가래떡을 화롯불에 노릇노릇 하게 구워서 주시고 고구마도 동그랗게 잘라서 석쇠위에 올려놓고 구우면 방안에 구수한 냄새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동생과 둘이는 정말 꿀맛처럼 맛있게 먹었던 것들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리고 손님들이 가져온 과자나 과일 선물이 들어오면 아껴 두었다가 남동생과 나에게 나눠 주시면 우리남매는 “할아버지는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드십니꺼?”하고 여쭤 보면 “나는 그런 것 별로 안 좋아 한다”하시며 동생과 나는 “참 이상하다 이렇게 맛있는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곤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손자 손녀 먹이려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옛날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셨지만 책을 유난히 많이 보셨다. 낮에 읽은 책을 밤에 불을 끄고 외우시곤 하셨는데 동생과 나는 할아버지는 시험도 보시지 않으시면서 왜 저렇게 외우실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아라비아숫자와 한글 자음모음도 그리고 각 나라 수도를 어떻게 아셨는지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옛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는데 무서운 도깨비나 귀신 나오는 이야기 들을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만 빠끔히 내놓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고 배가 출출하면 할아버지께서는 집 뒤에 있는 토담 담배 굴 안에 대봉 감을 저장해놓은 홍시를 가져오라고 하시는데 동생하고 나는 조금 전에 무서운 얘기 듣고 무서워서 못 간다고 떼를 썼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귀신들은 불만 보면 도망간다며 등불을 들고 가서 꺼내 오라고 하시면 할 수 없이 동생과 손잡고 한손에는 등불을 들고 동생을 앞세우고 살금살금 가서 홍시를 꺼내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 자상하신 할아버지, 어린 손자 손녀들에게 하늘같은 사랑으로 아름답고 고운 추억을 많이 남겨주셨다.
그러다가 남동생이 초등5학년 때 부산으로 유학길을 떠나고 나만 할아버지 곁에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지냈다. 나도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되어 나만의 공간에 예쁘게 꾸며보고 싶어서 예쁜 원단으로 커텐을 만들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커텐 하나로 사랑방 손님이 찾아오셔도 할아버지 방과 분리가 되었고 그야말로 완전 나만의 공간이 생긴 샘이다.
그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고 오직 두 다리로 걸어서 목적지 까지 가야하니 하루가 걸리고 이틀 심지어는 열흘이라도 걸어서 다녔다.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지만 길 가던 손님들이 해가 서산에 기울어 날이 어두워지면 마을에 노인이 계시는 집을 찾아서 하룻밤 신세를 져도 될 것인지 간청을 하신다. 우리 할아버지는 한 번도 거절 하시지 않으셨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어렵게들 살아가고 있었지만,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도 아무 의심이나 귀찮게 생각지 않으시고 쉬어 갈 수 있도록 잠자리는 물론 식사까지 성심성의껏 대접해서 이런저런 삶의 대화를 나누시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좋은 벗이 되는 것을 보며 자란 나로서는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안채 살림하시는 어머니는 항상 손님 접대할 대비를 하시며 사셨던 거 같았다. 언제 어느 때에 손님이 오실지 모르는 손님들을 맞이해도 안채에서는 불만이나 아무 반론도 없이 오직 순응하시는 어머니! 그렇다고 살림 넉넉한 것도 아닐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반찬에 보리밥 한 그릇이라도 따뜻한 정(情)으로 나누어 먹든 시절! 과연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신세대 여성들은 이런 풍습들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존경합니다. 우리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나는 사랑방 손님 중에 지금 시집의 증조부님께 발탁이 되어 하 씨 문중 31세손 8대 종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