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들빼기 김치 담그기_문경자 논설위원
산 넘고 물을 건너 시집온 동네는 산골 마을이었다. 모든 것이 생소하여 하루가 열흘 같았다. 앞산에 푸른 솔밭 사이로 보이는 진달래꽃도 무리 지어 붉게 피어났다. 긴 봄날이 나른하고 고달팠다. 대청마루에 걸쳐 있는 정오의 햇살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올 가족들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어머니는 밭에 나가 여러 가지 채소며 봄나물을 뜯어왔다.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즉석에서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렸다. 나는 어찌 해야 할지 조마조마했다. 대가족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집살이는 쓰다 달다 말도 많다. 입맛도 쓰고 밥알은 입안에 뱅뱅 돌았다. 밥상 위에 있는 고들빼기 김치는 금방 동이 났다.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밑반찬이 궁금하였다.
나는 사랑채에 있는 고방 문을 열었다. 봄 햇살이 먼저 들어가 항아리를 더듬고 있었다. 반짝이는 예쁜 항아리들이 일렬로 서있다. 장난감 장병들 같이 귀엽게 보였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곳은 어머니의 보물 창고였다. 아주 큰 간장 독은 장정들이나 들어야 할 만큼 컸다. 그것은 살림규모가 크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순서대로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처음 항아리에는 깻잎김치 그 다음은 무말랭이 배추김치 오이지 고들빼기김치가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밑반찬을 골고루 제때에 만들어 보관하였다. 상상도 못한 고방이 냉장고 역할을 하고 있어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고들빼기 김치가 제일 맛있고 손이 많이 가는 반찬으로 맛도 일품이었다. 보기만 하여도 침이 고였다. 가족이 많아 서인지 반찬도 많이 먹는 편이었다. 푸른 잎이 그려진 접시에 한 가득 담아 놓으면 젓가락이 들락거려 맛있는 양념까지도 다 먹어 버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아주머니들과 들로 나간다.
그때쯤 밭둑이나 논둑에는 귀한 고들빼기가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다. 아무리 밟히고 밟혀도 끈질긴 생명은 죽지 않고 살아난다. 그런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 사람들에게 보약 같은 역할을 했다. 고들빼기를 캘 때는 땅속 깊이 칼을 넣어 뿌리 채 뽑거나 다치지 않게 캐야 한다.
하늘은 높고 빨간 잠자리는 머리위로 날아 다닌다. 멀리 떠 가는 구름도 모양이 다른 것처럼 사람사는 일도 다 다르다. 고들빼기 캐는 모습도 여러 가지다. 옆집 아줌마는 대충 고들빼기를 캤다. 몸집만 보아도 일을 하기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또한 아줌마의 삶도 힘들어 보였다. 어머니는 아주 섬세하게 뿌리까지 캐어 흙을 탈탈 털어서 마른 잎까지 떼어 깨끗하게 하였다. 나는 몇 개 캐지도 않았는데 지루했다. 나물을 캔다는 일이 수월 하지가 않았다.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가 하면 온 몸이 아팠다. 그것을 캐다 보면 손에 하얀 진액이 묻기도 하고 쩍쩍 달라붙는 성격이 있다. 햇볕에 찡그린 내 얼굴을 보더니 “아무래도 나물은 예쁜 아가씨가 앉아 캐야 나비도 오고 벌도 날아온다” 고 하는 어머니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의 앉아 있는 모습에서 몸도 많이 지쳐 보였지만 손놀림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소쿠리에는 푸릇푸릇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고들빼기뿌리는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관절염 걸린 것, 혹이 붙어 있는 것, 골다공증에 걸린 모양을 살펴보니 참고 살아 가는 일이 사람 사는 모습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고들빼기김치를 담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먼저 캐 온 것들을 물과 소금으로 비율을 맞춘 다음 고들빼기를 넣고, 짚을 둘둘 말아 독 안에 넣은 뒤 깨끗한 돌로 눌러 둔다. 3~4일 정도 지나면 소금물이 시커멓게 변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깨끗하게 씻어 소쿠리에 담아 시원한 그늘에서 물기를 말린다. 시중에서 사온 물엿과 집 간장을 넣고 팔팔 끓여, 식힌 다음 고추 가루와 마늘을 넣고 골고루 양념을 섞은 뒤 고들빼기를 넣는다. 잘 버무려 마지막으로 실고추 통깨를 뿌려 예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뚜껑을 닫는다. 정성을 다해 담은 것을 품에 안고 가서 제일 좋은 자리에 앉힌다. 어머니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방도 환하게 보였다. 어머니표 고들빼기 김치는 일 년 내내 먹어도 변함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도 어쩌다 우리집에 와서 밥 한술을 먹으면 그 맛에 감탄사를 보냈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명품인 고들빼기 김치를 인터넷으로 주문 판매하면 인기리에 팔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울로 와서 살면서 친해진 친구가 있는데 반찬 만드는 솜씨가 뛰어났다. 부천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갔다. 점심을 먹는데 여느 식당 못지않은 상 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내 눈에 들어온 반찬이 있었다. 하얀 접시에 담겨있는 고들빼기 김치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나는 슬쩍 친구에게 고들빼기 김치를 어떻게 담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신이 나서 설명만 해주었다. 내 속마음은 집에 가서 먹게 조금 싸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40여년 된 친구는 눈치를 채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아 예쁜 종이 봉투에 넣어주었다. 집에 와서 먹어 보니 어머니의 그 맛은 아니지만 내가 담은 것 보다는 맛있었다. 역시 친구는 솜씨가 대단해. 고들빼기김치를 쌀밥 위에 올려 맛있게 먹었다.
요즈음은 반찬 가계가 많이 번창하여 돈을 번다. 반찬도 입맛에 맞게 골라서 사서먹을 수가 있어 편리하다. 한편으로는 위생상의 문제도 있지만 그래도 바쁜 세상에 즉석구입이 안성 맞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문적으로 반찬을 만들기 때문에 안심하고 나도 고들빼기 김치를 사다 먹는다. 게으름 탓인지 각종 김치를 담는 일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아시면 쯧쯧 하고 걱정을 하겠지만 그런대로 맛도 있고 따끈한 밥과 먹으면 약간의 쓴 맛이 좋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레상에 둘러 앉아 먹던 고들빼기 김치 맛이 최고였다. 어머니 떠난 뒤에 보물창고도 헐리었다. 고방에 있던 장독은 깨끗하게 닦아 잘 모셔 두었다가 집을 고친 후에 장독간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30개의 장독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그 속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굵은 소금이 담겨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반짝반짝 했다. 소금에 절여서 만든 어머니의 고들빼기 김치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