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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종착역 – 이호석 논설위원

며칠 전, 형수의 장례식이 있었다. 79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더한 아쉬움을 가진다. 인생무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빈소에서 망자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갖가지 함께한 추억들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하여 눈물이 흐른다. 때로는 미울 때도 있었고 때로는 좋을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이 함께한 세월이었다.
형수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형님과 연애결혼을 했다. 그때만 해도 농촌에서 한 마을 처녀, 총각이 연애하는 것은 온 마을의 화젯거리였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완고한 아버지도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였으나 결국 형님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한 번 더 학습하였을 뿐이다. 형수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시집을 와서 처음에는 시조모와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등 모두 아홉 식구가 있는 집에서 함께 살았다. 친정에는 농사일도 없었고 단조로운 식구에 언니가 둘이나 있어 집안일도 별로 하지 않다가 시집을 와서 서툰 솜씨로 아홉 식구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결혼한 지 6년이 되는 해 공직에 있는 형님 내외는 따로 나가 살았고, 슬하에 삼 형제를 낳았다. 아버지는 평소 엄한 성품으로 근면한 생활을 너무 강요하여 가족들에게는 언제나 다정함보다 두려움으로 멀리하는 존재였다. 특히 형수는 그러한 아버지의 성품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을 강하고 부지런하게 키우려고 애를 썼고, 또 마을 일이나 집안일에 앞장서 바르게 처리하셨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우리는 그 어려운 형편에서 많은 식구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아버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형님이 공직에서 퇴직하고 형수와 함께 대구로 나가 작은 슈퍼를 하며 살았다. 그동안 아들 삼 형제는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형님은 65세의 이른 나이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형수는 고향인 이곳 합천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년을 그런대로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형수의 장례는 4일장으로 치렀다. 아들 삼형제 중 둘째 조카 혼자만 고향에 살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문상객이 찾아왔다. 평소 조카들이 고향의 친구들과 원만하게 잘 지냈나 보다. 오늘은 장례 일이다. 지난밤에 많은 비가 내렸고, 또 일기예보에서 오늘도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하여 걱정이 된다. 8시 발인제를 지내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영구차로 진주에 있는 화장장으로 이동했다.
화장장에 도착해서도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렸다. 십여 분을 차 안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이 화장장은 진주시에서 설치하여 위탁 운영하고 있는 공설화장장으로 ‘진주시 안락공원’으로 불린다. 이곳은 일곱 기의 화장로가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다. 고령사회가 되고 화장 문화가 급속히 정착되면서 이곳은 매일 같이 바쁜 것 같다.
먼저 맏상제가 사무실로 들어가 사망진단서를 제출하고 사체 검안을 받는 절차를 밟았다. 그다음 백관들에 의해 망인의 관이 ‘고별실’이란 방으로 이동되었다. 고별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장소이다. 고별실에서 관을 화부(전담 인부)에게 인계하고, 상주와 가족들은 오늘 장례행사를 돕는 집사를 따라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 안은 상당히 넓었다. 앞쪽에는 일곱 개의 화장로가 보일 수 있게 유리벽으로 되어있고, 그 앞에는 화장로 보며 간단한 예를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잠시 후 형수의 관이 7번 화장로로 들어갔다. 화장로 위에 있는 파란 등에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지면 화장로가 가동되고 화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파란불이 들어올 때 집사가 상주들에게 “어머님 불 들어갑니다.”라고 외치라고 한다. 망자가 불에 놀라지 말라고 하는 소리란다. 상주들과 가족들은 화구 앞에서 잠시 예를 올리고, 화장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그 사이에 대기실 안을 돌아본다. 먼저 각 화장로 앞에 앉아 있는 상주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사람, 곡을 하거나 울부짖는 사람, 스님의 목탁과 염불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 그저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사람, 아무 말 없이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 등 곳곳의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다음은 대기실 안을 두루 돌아본다. 넓은 공간 곳곳에 소파가 놓여 있고 화장 절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앉거나 서서 웅성거리고 있다. 함께 따라온 철없는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뛰어놀며 즐겁기만 하다. 대기실 안은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그런지, 조금은 어둡고 슬픈 분위기가 깔려있지만,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멀리 떠나는 가족을 배웅 나와 있는 기차역 대합실을 연상케 한다.
관이 화구에 들어간 지 1시간 10분쯤 지나 화장이 다 되었다며 수골실로 오라고 했다. 수골실은 화장된 유골을 수습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철로 된 2기의 받침대가 있었다. 그중 한 기가 열리며 형수는 생애에서의 그 고달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주 홀가분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화부들이 상주에게 확인을 시킨 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유골을 쓸어 담아 분쇄기에 넣고 5분 정도 돌렸다. 그 다음 종이봉투에 유골 가루를 담고 나무상자에 넣은 후, 흰 천으로 싸서 상주에게 인계한다.
이제 형수의 모습은 영원히 볼 수 없다. 저승이 있다면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대기실을 나오면서 문득, 이곳은 누구나 한번 와야 할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자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있는 환승역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