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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13편 – ‘숙우’와 ‘5인 다기’ 시대를 연 <강파도원>

물이 끓으면 100도라는 것을 알지만 차 맛이 가장 좋다는 70~80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차를 즐기는 이들은 숙우(식힘 그릇)에 끓는 물을 부었다가 다관(찻주전자)에 넣으면 적당한 온도가 됨을 알고 있다. 그 숙우를 처음 만든 이가 故 토우 김종희 선생이다. 9월 29일(일), 선생 뒤를 이어 3대 째 도예업을 하고 있는 ‘강파도원’을 찾았다.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종희(1921~2000) 선생은 1933~46년까지 일본 다지미시현립도자기시험소 등에서 일하다가 1946년, 가야면 해인사 홍류동으로 와 도자기 생산을 시작했다. 해인사 둘레는 도자기 연료로 쓸 나무가 많고 지금도 고령토가 많이 매장되어 있는 곳인데다 골짜기로 흐르는 물길 낙차가 좋아 물레방아를 이용해 동력을 사용하기 좋은 곳이다.
김종희 선생은 당시 해인사 주지로 있던 효당 최범술 스님에게 차 그릇 만들기를 권유 받았고 중국과 일본에 없는 뜨거운 물 식힘 그릇 숙우를 처음 만들었다. 5인 다기도 선생이 처음 만들었다. 김종희 선생은 이후 대구에서 도자기 전시, 계명대·대구카톨릭대·영남대 등에서 관련 강의를 하면서 차를 즐기는 이들과 교류도 활발히 했다. 1978년 말, 민족정신을 높이고 예의범절을 살려 한국인다운 인성을 회복하기 위해 차 생활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고 <한국차인연합회>가 창립하자 이사진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차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한 인물 가운데 한 분인 금당 최규옹 선생은 “좋은 도자기일수록 오동지 삼동에 만들어야 한다. 그는 이미 완전 건조 시기의 시점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도공이었다.”고 김종희 선생을 평하기도 했다.
김종희 선생은 “일체 부고하지 말고 운명한 다음날 바로 장사 치르라. 장례 치른 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리라. 꽃은 두지 말고 굳이 두려거든 들꽃 한 묶음을 얹어라. 관을 하되 상여는 하지 말고 묘는 쓰되 봉분이 동물이 다니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자연스레 만들라.”고 유언했고 자손들은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김종희 선생 뒤를 이은 2대 김일(74세. 남) 선생은 20세 전후부터 부친과 함께 강파도원을 만들어 꾸려오고 있다. 그 또한 각종 공모전 등에 수상 이력이 있는 전문가다. 3대 김은(40세. 남) 선생은 학교 강의와 도예 작업, 김경애(43세. 여) 선생도 선대 뜻을 이어 도예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안경희 시민기자

지역의 전설, 오래된 인물(위인), 오래된 단체 등을 찾아 우리 지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취재에 나선다.(본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