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태 – 소민호 동화작가
“따앙!”
할아버지가 태를 빙빙 돌리다가 거꾸로 후려쳤다.
“따앙!” 누른 들판이 흔들리고, 뜨거운 가마솥에 콩이 튀듯 참새들이 튀어 올랐다.
“쟤는 힘도 없으면서 덤비긴 왜 덤벼?”
“모르지 뭐. 저렇게 맞아도 안 아픈가 봐.”
“저 봐. 웃고 있어. 진짜 이상한 애야!”
나는 지난 여름까지 그렇게 아이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싸웠다.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얻어맞는다는 말이 맞다. 맞으면 맞을수록 내 가슴은 후련했다.
“훈아, 얼굴이 왜 그러냐? 이제 학교에서 안 싸운다고 하던데?”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살폈다.
“별거 아니에요.” 나는 얼굴을 만지며 말을 툭 뱉었다.
“음… 네 할머니가 또 걱정하겠다.”
할머니는 나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울기도 하고, 화도 많이 냈다. 할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다시 태를 휘둘렀다. 가을 햇살이 태 끝에서 자잘하게 부서졌다.
“따아앙.” 태의 울음소리고, 할아버지 화풀이였다. 쉬지 않고 태질을 하는 할아버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서산에 걸터앉은 태양도 가쁜 숨을 빨갛게 몰아쉬었다.
“할아버지, 저녁 진지 드시러 빨리 오시래요!” 마을 앞 언덕에서 은지가 소리쳤다. 은지는 앞집에 사는 아이다. 나와 같은 5학년이기도 했다. 가끔 나랑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은지 아빠와 엄마가 할아버지 일을 도와 드린 날이면 은지도 저녁을 같이 먹는다.
“오냐!” 할아버지는 태를 둘둘 말았다.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가자.” 할아버지는 좁은 논두렁을 앞서 걸었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이 논두렁을 서둘러 걸어 나오다가 넘어졌을 것이다. 벌써 1년하고도 몇 달이 지난 일이다. 그날은 유난히 엄마·아빠의 싸움이 오래갔다. 목소리도 다른 때보다 컸고, 말투도 사나웠다. 나는 무서웠다. 어디론가 혼자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빠가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빠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며칠 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모아 쥔 내손이 달달 떨렸다.
“엄마, 어디 가?”
“잔소리 말고 따라와!”
엄마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송송했다. 얼굴도 한겨울 달빛처럼 싸늘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할머니가 사는 시골에 왔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들에 나갔던 할아버지가 앞집에 사는 은지의 말을 듣고 달려왔다. 발이며 엉덩이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논두렁에서 미끄러졌다고 했다.
“이제부터 넌 여기서 살아야 해!”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렸다.
“에이그, 모진 것!”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마른 나뭇가지 같은 할머니 손이 아프도록 조여들었다. 그래도 처음 느껴 본 따뜻함이라 싫지 않았다.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 거여.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늙어서 네 엄마·아빠처럼 살갑게 돌봐 줄 수 없어. 그러니 이제부터 모든 일은 너 스스로 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돌아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나 혼자라는 말이 온몸을 짓눌렀다. 마치 안개 낀 들판에서 길을 잃고 나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나는 은지를 따라 새로 다닐 학교에 갔다. 이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은지밖에 없었다.
“네가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작지? 이래도 우리 학교는 시골에서 큰 편이래. 참 아이들은 몇 명인 줄 아니? 100명도 안 돼. 너무 적지?” 은지는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며 재잘거렸다. 늘 혼자였던 은지는 내가 나타난 게 참 좋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4학년’이라고 이름표가 붙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아이들의 눈길이 따가웠다. 첫 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 너는 왜 전학 왔어?”
“야,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자!”
아이들이 손을 잡았다. 어떤 애는 등도 쓸어 주었다.
“싫어!” 아이들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때 어떤 아이가 내 머리를 만졌다.
“너희 그러지 마!” 은지가 아이들을 밀어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은지를 놀렸다.
‘나는 이제 혼자야.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은지가 있지만 소용없는 일이야. 맞아. 지금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야, 하지 마!” 머리를 만지는 아이를 향해 나는 주먹을 날렸다.
“아야!”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교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코를 감싼 손가락 사이로 새빨간 피가 흘렀다. 내가 휘두른 주먹에 코를 맞은 것이었다. 교실은 갑자기 술렁거렸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까지 몰려들었다.
“왜 사람을 때려?” 몸집이 큰 아이가 내 가슴을 밀었다.
‘지금 이 아이에게 밀려서는 안 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나는 가슴을 쫙 폈다.
“쟤가 먼저 잘못했잖아!”
나도 지지 않고 그 아이를 밀어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뒤엉켜 싸웠다. 삽시간에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철이 잘한다. 혼내 줘!”
역시 나를 걱정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응원 탓인지, 기철이가 힘이 센 건지, 아니면 텃세인지 내 얼굴에만 상처가 생겼다.
“야, 선생님 오신다!”
은지 목소리였다. 은지가 선생님께 달려갔던 것이다. 기철이는 선생님께 꾸중을 옴팡 들었다. 나도 무사하지 않았다.
“오늘 전학 온 녀석이 이게 무슨 꼴이니?”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상처가 아려도 가슴은 시원했다. 그 뒤로 나는 싸움을 밥 먹듯이 했다. 작은 일에도 참지 않았다. 장난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아이들은 그런 나를 멀리했다. 제 몸을 때리며 소리치는 태를 피해 도망치는 참새들 같았다. 그러나 은지는 달랐다. 늘 같이 다니기를 원했다. 내가 청소 당번일 때는 기다려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망을 쳤고, 은지는 술래처럼 나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내 마음이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 가던 어느 날이었다.
“훈아, 같이 가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너 혼자 가.” 말을 툭 던지고 돌아서던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이 약해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은지가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나는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산길로 들어섰다. 가파른 길을 오르자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다. 은지도 따라왔다. 숨이 차는지 입술이 하얘졌다. 나는 그런 은지를 따돌리려고 가파른 언덕을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훈아, 위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은 굴렀다.
“아악, 훈아!” 은지의 비명 소리가 안개 속처럼 가물거렸다. 그루터기에 긁히고 돌에 부딪쳐서 팔이며 다리에 피가 났다.
“훈아, 훈아!” 은지가 쓰러진 내 몸을 흔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약간 아린 것 말고는 괜찮았다.
“훈아, 괜찮아?”
은지가 내 팔을 잡아 주었다. 나는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괜찮아.”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가슴이 시원했다. 얻어맞을 때보다 더 개운한 느낌이었다. 나는 다음 날부터 싸움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한테 맞지 않아도 엉킨 마음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언덕을 탔다. 높은 나무 위에도 올라갔다. 떨어지거나 넘어져 구르지 않아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으면 가슴이 후련했다. 은지는 나를 보고 늘 안타까워했고, 나는 애써 그런 은지를 피했다. 날이 갈수록 아이들은 내게 말도 걸지 않았다. 내 얼굴만 봐도 슬슬 피했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귀찮은 일이 없어서 좋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혼자라는 게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아이들과 싸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다.
“훈이만 없었으면 벌써!”
“내가 할 말이에요!”
싸움만 하면 내 핑계를 대던 아빠와 엄마가 생각났다.
“정말 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까?” 나는 중얼거리면서 할아버지 뒤를 따라 집으로 왔다. 집에 온 할아버지는 해진 태를 던져두고 다시 만들었다. 짚을 곱게 다듬어서 차곡차곡 엮었다.
“할머니, 엄마가 이거 갖다 드리래요.”
은지가 보자기가 덮인 그릇을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할아버지, 며칠 전에도 태를 만들었잖아요.” 은지가 할아버지 곁에 쪼그려 앉았다.
“허허, 제 몸을 그렇게 때리는데 어떻게 오래 쓰겠냐!” 할아버지는 낫으로 헌 태를 자르려고 했다.
“할아버지!” 나는 달려가서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낫을 빼앗았다.
“아니, 이 녀석이!” 할아버지는 얼음판에 넘어진 소처럼 눈을 껌뻑거렸다.
“이거 저 주세요.” 나는 낡은 태를 들고 돌아섰다. 오늘따라 제 몸을 때리던 태가 애처로워보였다.
“새로 만들면 뭐 해. 금세 걸레처럼 너덜거릴 텐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훈아, 태를 안 쓰는 게 좋겠냐?”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내 어깨를 감싸 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하늘을 쳐다보았다. 참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