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숭장군과 애마(愛馬)에 얽힌 이야기(전설) <2>-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13)
하재효
논설위원
11:12분 야로면 미숭산에 위치한 “합천군야영수련원” 옆에서 간식을 하다. (여기까지 모든 차량통행이 가능함) 보온병에 담아온 따끈한 물에 커피 한잔은 정말 일품이다. 수련원 건물은 현대식으로 강의실/기숙사/운동장이 탁트인 전망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휩싸여 있다. 자연과 더불어 역사를 체험하는 심신수련장으로서의 잠재적(潛在的) 교육과정(敎育課程)이 이보다 탁월한 곳이 있으랴!
11:28분 출발. 정상까지 “1.6Km”란 안내판을 뒤로 하며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미숭장군”은 이곳을 밤낮없이 오르내렸으리라 생각하면서 오르는 동안,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산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12:15분 성문(남문)에 도착. 오래되어 허물어진 성곽을 바탕으로 보수되었고 입구 양쪽에 성문을 세우기 위해 홈을 판 흔적이 있는 초석(礎石)을 발견하게 된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버티어 온 초석을 보면 신구(新舊)가 조화된 예술이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성문을 들어서자 좌측으로 군사들을 모아놓고 훈련 시켰다는 연병장(鍊兵場), 오른쪽으로 사선을 그어 활쏘기를 연습하였다는 궁사대(弓射臺)가 있다. 조금 오르면 완만하게 경사진 평지가 전개된다. 땅의 색깔이 검고 수기(水氣)가 있어 성(城)을 쌓을 당시부터 농사를 지어 연명(延命)에 보탬을 하고, 일부 허물어진 돌담터에서 주거지(군막사)도 있었으리라 보여진다. 약 60여년 전에 웃터에 사시는 친구의 아버지가 2km나 되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으신 적이 있다.
인접한 곳에 장군정(將軍井)이 있다. 이 부근에서 물을 개발(開發)하여 군인들의 용수로 썼으리라 보여진다. 우물 6곳, 연못이 1곳이라 전함. 이부근에 고려조 회복이 실패하자 안동장군이 떨어져 죽은 곳이라는 순사암(殉死巖), 장병해산시 명령권이 없음을 선포하였다는 아액금대(我厄唫臺), 군막사 등이 있다.
장군정을 지나 조금 오르면 왼쪽 계곡편 바위 언덕에 “여주이공휘미숭자정지지(茹州李公諱美崇自靖之址)”란 각자(刻字)가 있다. 이 각자는 깊게 음각되어 지금도 마모되거나 손상됨이 없으며 의도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드는 곳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산의상부 능선에 이르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장군과 병사가 기마 전투 연습을 하였다는 주마대(走馬臺), 장병 해산시 갑옷, 칼, 병기 등을 깊게 묻었다는 갑검릉(甲劍倰), 안동장군이 사용하던 활과 화살을 묻었다는 장궁구(藏弓丘), 안동장군의 형상을 찰흙으로 세우고 봉향하던 사당지(祠堂地), 서문 등이 있으나 지금은 잡초와 수목이 우거져 짐작하기 어렵다. 단, 산성을 오르기 전 수련원 옆에 있는 안내판 약도로 대신하며 앞으로 지표조사를 하여 팻말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산 정상부에 오르면 조선시대 봉수대(烽燧臺)가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따르면 “남쪽으로 합천 초계면의 미타산(彌陀山)과 연결되고, 동쪽으로 고령현 망산과 연결된다.”고 하였다. 달각암(達覺巖)도 정상부분에 있으며 장군이 쏜 화살이 월광사 석탑에 도달하면 “딸깍”하고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달각 바위는 필자가 어릴때 힘주어 밀면 딸깍 소리내며 움직여서 이곳에 오를 적마다 밀어보았는데 지금은 꼼짝하지 않았다. 달각 바위 옆에는 산불 감시 초소와 감시원이 있는데 전망이 좋아 봉수대가 있을 시는 지금의 산불 감시원처럼 멀리 살피면서 다음 봉수대로 봉화를 올렸으리라 연상해 본다.
이곳에 서면 서북으로 가야산과 수도산,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덕유산, 지리산 천왕봉, 만대산, 비슬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미숭(李美崇)장군도 이곳에서 비록 보이진 않지만 많은 시간동안 개성의 송악을 향하여 임을 향한 일념에 사무치다가 고려에 대한 충의와 절개를 만세(萬世)에 남기면서 벼랑에 몸을 던졌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