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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림이는 행복하다 – 정두현 前합천군바둑협회장

‘탕’하는 소리와 함께 800m 계주 우리팀 1번 주자가 힘차게 튀어 나온다. 먼 거리지만 확연하게 표가 난다. 더욱 더 앞서가는 우리 팀이 2번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준다. 자기 팀에 힘을 실어주려고 힘차게 응원하는 소리가 운동장을 뜨겁게 달군다. 어느듯 피니쉬 라인의 3번 주자가 바통을 받았지만 이내 추월을 당한다. 큰일이다. 앞 주자가 그렇게 힘들게 선두를 탈환해서 열심히 달려줬는데 벌써 두 명에게 추월을 당했다. 드디어 내 차례다. 아~ 또 꼴지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호흡이 빨라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3위 자리를 고수하려면 200m를 잘 달려야 한다.
안 코스를 차고 이가 어스러지도록 다물고 달렸다. 자꾸 뒤에서 추월을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젖 먹던 힘, 아니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불사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감지된다. 끝 까지 힘껏 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가락에 힘을 주어 다리를 올리고 뻗었다. 차라리 4위라면 포기도 하련만 그놈의 3위 자리라 추월당하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난생 처음 이런 책임감으로 전력 질 주 하기는 처음이다. 곧 한발자국 뒤에서 따라 오는 듯한 소리가 무슨 폭포소리 처럼 들려온다. 드디어 3위로 피니쉬를 통과 했다. 탱탱하던 풍선의 바람이 빠져 허물 허물 하듯 하체는 휘청거리고 정신도 몽롱하다. 와~ 드디어 해냈다. 400m(60대)에서 꼴지를 했지만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3위를 했다. 정말 잘 달려준 자신에게 감사했다.
진주에서 개최되는 제30회 생체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 6시30분에 출발을 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소집시간 때문에 일찍 나선 것이다. 운동장 뒤편에 자리를 깔고 영양 주먹밥과 시락국에 반찬은 김과 김치 하나지만 꿀맛이다. 곧 있을 로드레이스 때문에 꼭꼭 씹어 먹는데 맛있다며 두 개를 꿀꺽하는 사람은 레이스가 걱정도 안 되나 보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회 준비는 소홀하고 진행은 더뎠다. 대형버스 주차를 못 해 겨우 주차 했더니 또 빼라하고, 선수 소집과 확인도 무질서해 기다림에 지쳐 화가 날 정도였다. 연습을 한다고 다짐을 했지만 늘 일에 뭍 혀 버려 제대로 몸도 만들지 못하고 5km를 달리는데, 앞선 주자를 따라 잡는 것 보다 추월당하는 것이 더 많았다. 존심이 많이 상처받았다. 5km도 전력질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기는 10km나 매 마찬가지다.
로드레이스가 끝나고 나니 준비한 음식들이 펼쳐진다. 이웃 의령군에서 가지고 온 따끈한 부침과 막걸리 맛이 기가 차다. 허기에 손이 빠르게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400m를 달려 달라고 한다. 전에 한번 달려 봤지만 60대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실력들이었다. 달리려면 먹어서는 안 된다. 먹고 나면 옆구리가 결리고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달릴 수가 없다. 막걸리 잔이 돌아가고 돼지고기 수육에 먹음직스런 빨간 김치를 올려 먹는 즐거움을 뒤로 한 채, 물로 허기를 때웠다.
9시 반에 로드레이스하고 11시 반에 트랙 경기를 한다. 100m 달리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가 잘 달린다. 어떻게 저렇게 잘 달릴까? 무척 부럽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더해 간다. 물 보듯 뻔 한 꼴찌다. 걱정을 자꾸 하니깐 누가 예상한다는 듯 ‘꼴지가 있어야 1등이 있다’라고 위로를 하지만 마음은 많이 아프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5번 레이스에 들어서는데 어찌나 긴장이 되는지 ‘준비’라는 신호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가운데가 제일 잘 달리는 선수가 서는 자리인데 부끄럽다. 총성과 함께 모두들 박차고 달린다. 400m는 전력 질주하기에는 긴 레이스이다. 처음부터 치고나가 앞서 달리다가 뒤에 지쳐 꼴찌 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그런데 얼마나 잘 달리는지 지치는 사람하나 없다. 결국은 꼴찌로 힘없이 들어왔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가파른 호흡을 추스르고 바싹 마른입에 물을 축인다.
이제 대회 마지막 경기인 800m 계주가 시작된다. 60대 마지막 주자인 나는 반대편에 대기를 해야 한다. 걸어가는 동안 무수한 생각이 엄습하면서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어떻게 될까? 또 꼴찌로 들어오는 수모를 격어야 하나! 우리 3·40대 주자는 잘 달린다. 그런데 5·60대가 형편없다. 1번과 2번 주자가 1위로 달려줬는데 앞 주자가 2명에게 추월을 당해 3위로 바톤을 받았다. 남은 거리가 200m이니 이제는 죽을 각오로 달려야 한다. 안코스를 물고 달렸다. 꼴찌로 달릴 때와 등위 안에서 달릴 때는 다른 것 같다. 저 멀리 희망이 보이기 때문일까? 다리에 힘이 더 세어진 것 같고 느낌도 더 잘 나가는 것 같다.
추월의 두려움이 코너를 돌아 피니쉬가 보이는 직선에 들어서니 극에 달한다. 정말 사력을 다해 달려 3위로 들어오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아~ 결국 해 냈구나. 하면 되겠구나.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에는 국장이 잘 달렸다고 격려를 해주니 기분 또한 좋다. 칭찬은 정말 고래도 춤추게 하나 보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버스에 오르니 많은 달림이 들이 수고했다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아 송구스럽기 까지 했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 합천이 육상부분에서 준우승을 한 것 같다. 축제 분위기 속에 저녁 만찬은 성황을 이룬다. 오랜만에 맞보는 기분이다. 모두가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준우승 트로피에 맥주를 부어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한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는 전부 열심히 달려준 덕분이지만 이제 퇴각의 기로에 선 60대가 준우승하는데 일조를 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했다.
열심히 준비 안한 것 치고는 오늘 성적이 좋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로드와 트랙을 오랜만에 만끽했다. 정말 내년에는 스파이크 신발을 신고 달리고 싶다. 국장이 내년에 무조건 800m계주에 넣겠다고 확답을 했다. 모든 건 대회 앞에서의 준비보다 평소에 항상 건강한 달림이로서의 준비가 필요하다. 헬스로 몸을 다져 놓은 덕분에 그렇게 과부화가 걸릴 정도로 달렸건만 다리는 건재하다. 아직도 녹슬지 않았다는 자신감과 젊음을 되찾은 멋진 하루가 되었다. 생체야! 내년엔 우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것이니 기다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