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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훈련병의 눈물

드디어 전투경찰 16기 360여명의 장정들은 집에서 입고 온 사복을 벗고, 국방색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제복이라고 하지만 몸을 옷에 맞추는 듯 불편하고, 머리마저 빡빡이가 된 모습이 참 어색해 보인다. 때는 45년 전 1974년 가을이다. 수용연대에서 25연대까지의 행군은 채 1시간도 안 되는 거리었지만, 내부반에 도착해 구두를 벗으니 생전 처음 신은 군화 탓인지 발꿈치가 까지고 물집이 여러 곳에 생겨있다. 어떤 장정은 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내무반에서 약간의 휴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우리의 생각이 틀린 것은 채 5분도 안 되었다. 두 눈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검은 화이바(fiber)를 내려 쓰고, 지휘봉을 든 기간병이 들어서드니, 다짜고짜 명령이다.
“동작 그만, 모두 침상 끝으로 정렬! 차렷 열중쉬어! 차렷 열중쉬어! …”
초장부터 훈련병들의 군기를 확실히 잡겠다는 눈빛이다. 화이바엔 고딕체의 ‘조교’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다. 우리는 어느새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작 봐라. 여기가 놀이터인 줄 알아? 너 이 새.”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지휘봉은 내 앞의 장정 어깨를 후려치고 있었다.
“아!”하는 비명도 잠깐, 나치의 공포 분위기가 온 내무반을 휘감는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대학 2학년 1학기가 되자, 동생들도 줄줄이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의 어깨도 점점 무거워지니 내 마음도 편하지가 않는다. 어떤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래, 군대를 갔다 오자! 병역의무를 필하기도 하고, 3년간이나마 부모님께 나의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입대하려고 하니 징집 영장을 받은 상태도 아니고, 더구나 호적상으로 신체검사까지는 1년은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자원 입대는 어떨까?”
부랴부랴 알아본 결과 공군, 전투경찰, 해병대 정도를 찾아냈다. 이 중에서 인기 1순위가 공군이었다. 급하게 지원서를 낸 다음 대구 모 공군부대로 가 신체검사를 받는데, 어떤 검사원이 하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너, 인마, 평발이네, 평발은 곤란해.”
“예?”
“네가 여태껏 평발인 걸 몰랐어?”
순간 나는 당황되면서도, 군입대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기뻤다.
“저…… 그렇다면 저는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것입니까?”
내 물음에 검사원은 “야 인마, 남의 부대 입대 여부를 내가 어떻게 아냐?”
사실 그 신검 때까지 내가 평발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특별히 불편함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다고 군대를 확실히 가지 않을 정도의 평발은 아니라는 점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 후 전투경찰 지원을 알아보니, 제도가 생긴지 채 3년도 안 되었단다. 그런데도 지원자가 많아 원서를 낼 때 이미 10:1이 넘어 있었다. 이번에도 ‘불합격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필기시험에서 상대적으로 점수가 조핬던지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렇게 한 인연으로 논산훈련소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은 교육이 아니라 기합의 연속이니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밖에 못해? 여기가 너 네 집 안방이냐? ” 그리고 또 얼차례를 시킨다.
“다 같이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차렷, 열중 쉬어…… .”
얼마나 반복을 했을까? 등에 땀이 흥건해진다. 이어 저승사자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조교가 내 앞 쪽을 향하여 오는 것이 아닌가?
“관등성명은?”
“훈련병 정병수!”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교는 지휘봉으로 내 배를 쿡 찌르면서 예상하지 못한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훈련병 이력서를 미리 보고 내정한 것이라 보인다.
“너 오늘부터 향도(向導)야. 알았나?”
향도란 지금은 폐지된 제도이나, 당시는 훈련병들의 소대장 격이다. 조교의 말을 듣는 순간 입대 전 복학생 형이 하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군대는 말이야. 너무 잘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고문관이 되는 것도 곤란해. 중간 정도만 하면 딱이야.”
나는 ‘속으로 이거는 아니다.’싶었다.
“한번 맞고 6주간 편한 것이 좋겠지?” 나는 용기를 냈다.
“저는 향도를 맡을 자격이 못 됩니다. 운동 신경이 둔합니다.!”
“뭐라고? 지금 너가 뭐라 그랬어?”
“향도를 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새가…… .”
그 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먹으로 맞고, 구둣발로 차이고, 야전 삽자루로 흠씬 얻어맞았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움직이기가 불편하다. 결국 훈련소 첫날 밤 나는 아파서도 울고, 서러워서도 울었다. 그 덕분에 향도의 직책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대신 2분대장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2분대의 임무는 훈련소 중대 병력이 사용하는 화장실의 청소가 주 임무였다. 160여명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금새 지저분해진다. 더구나 논산은 황토가 많은 지역이 아닌가?
전반기 6주 내내 능력없는 분대장으로 낙인이 찍힌 나는 물론이고 우리 분대원들도 모두 힘들었다, 그때 고생한 분대원들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집 화장실 청소는 잘 하고 있을 것이다. 향도를 못 하겠다는 한 마디에 내가 감당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일석점호를 마치고 메트에 누우면 창가에 있는 분대장 자리에 달빛이 고고하게 스며든다.
훈련소에 들어선 첫날에 엉겁결에 맞은 후유증으로 밤이면 학창시절의 캠퍼스 전경, 고향의 가족생각 그리고 잡념에 잠 못 이룰 때가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육신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우리나라 군대가 꼭 이런 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건가?’라는 자문(自問)을 하면서도 자답(自答)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괴로웠다. 어쩌면 소용없는 그런저런 생각에, 눈물은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