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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해 – 노덕경 수필가

세월이 흘려 김 과장은 정년을 했다. 서산마루의 해가 붉게 물드는 해질녘이다. 그는 이 시간쯤이면 늘 혼자인 게 눈물겹도록 외로웠다. 하늘의 날짐승들도 해질녘이면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둥지를 찾고, 거리를 해 매던 개들도 집을 찾는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말해 무엇 하랴.
김 과장은 처음에는 자유롭기가 그지없었다. 늦잠도 자고, 갈 곳도 많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집안 행사와 친지, 죽마고우도 만나니 좋았다. 하지만 그런 자유도 얼마 가지 않아 시큰둥했었다. 차츰 갈 곳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 외출하여 할 일 없이 거리를 배회하다 해가 넘어 갈쯤 집으로 왔다. 아내는 외출하였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안은 텅 비어 적막감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피곤한 몸을 눕히고 깜박 졸았던가. 눈을 떠보니 벽걸이 시계는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 순간 “딩동”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이 사람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와?”
“안 그래도 당신 저녁 걱정이 되어 일찍 빠져 나왔어요. 동창모임에 저녁 먹고, 노래방엘 갔는데, 나만 당신 때문에 일찍 왔구먼.”
“이 사람아! 남편의 저녁 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당신은 갈수록 잔소리가 많아요, 왜 그래요? 당신은 손이 없소? 발이 없소? 마누라 늦게 귀가하면 밖에서 한 그릇 해결하고 오든지, 아니면 시켜서 때우면 되지, 꼭 내가 해 쥐야 해요.”
“뭐 라고! 마누라 두고, 내가 홀아비야?”
“어쩌다 동창들 만나 늦는 수도 있지? 잔소리 때문에 숨이 막혀, 아 이구!, 숨통 터져!, 다른 남편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도 한답니다. “
“뭐 당신 말 다했어, “
“아따, 같이 늙어가면서 좀 편히 삽시다. 당신은 뭐 잘한 것이 있다고, 젊어서 허구한 날 친구 좋다고 술 먹고 인사불성으로 귀가하고, 밥상머리에 않으면 반찬 뒤적뒤적 투정했지, 여태까지 죽어서 지내고 살아 온 것이 후해막급이요.”
“어디 그것뿐인가, 혼자 할 짓 못할 짓 잡기에 미쳤고, 고스톱 한다며 밤샘하고, 남 따라 주말마다 낚시며, 등산한다며 과부 만들지 않았소? 집안일은 네 몰라라 했고, 어른 시집이 아니라 남편 시집살이 당신이 얼마나 시켰는지 알기나 해요? “
아내는 신혼시절 그런 남편에게 애원도 해보고, 바가지도 긁었고, 눈물로 하소연도 했었다. 하지만 모든 게 그에게는 허사였다.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람의 성정도 행위도 변해야 하련만 그는 아내의 애원과 충고에도 묵묵했다.
김 과장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믿었다. 하는 일마다 잘될 줄 알았고, 돈벌이도 좋을 줄 알았다. 늘 큰소리치며 자신 있다고 믿었다. 허구한 날 친구다, 접대다, 하며 술타령이었다. 게다가 고놈의 자존심 때문에 남한테 지는 걸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그게 습관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디 만년 청춘이랴, 나이가 들어감에 예전 같지 않았다.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났는지, 경고등 노랑불이 들어온다. 의사의 지시로 약도 먹어야 하고, 운동, 음식도 가려야하고 술도 한두 잔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시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됐다! 그만하소.”
젊은 날은 이빨 사이에 바람소리만 나도 남편의 고약한 성질을 알아, 꼬리를 먼저 내리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고양이 되고, 이제는 호랑이로 변했다. 예전처럼 시작은 그가 해 놓았지만 뒷마무리는 다르게 되어, 끝내 그가 백기를 들었다.
“졌다 졌어.”
“부메랑”이 되었다. 자신의 언어와 행동들이 결국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했던가? 남에게 웃어주면 상대방이 미소로 화답하고, 흉보거나 비난하면 나에게 비난의 화살로 돌아온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받는다고 했다.
김 과장은 지난 날, 선배들의 꾐에 빠져 신혼 초 주도권을 잡아야, 한 평생 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구러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는 너무나 까칠하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이제야 그런 일들을 후회하는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늦게야 철이 든다.
그랬다, 행복은 가정에서부터 나온다. 가족들에게 좋은 말과 칭찬을 하면 긍정적인 생각과 좋은 말이 오가고, 상대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면 잠깐 동안은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상대방의 마음의 상처는 영원히 지울 수 없다.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 허전하다. 빈 공간에 그는 아내와 단둘뿐이었다. 이제라도 아내한테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못난 남편을 만나 마음고생도 많이 시켰소, 미안하오, 이제는 내가졌소, 졌어.”
요즘은 세 집 건너 한 집 꼴로 황혼이혼이 생긴단다. 텔레비전에서 “사랑과 전쟁”에 이혼신청 부부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법정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다. “부부가 다시 한 번 숙고하고 숙려하여, 네 주후에 다시 속개 하겠습니다.” 라는 소리가 여운으로 남는다.
“있을 때 잘해” 노랫말이 떠오르고, 이제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모양이다. 그래야 노후가 편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