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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26>자연 그대로의 모습 ‘호연정’

호연정은 1981년 12월 21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상주주씨 문중이 소유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 요당 주이(周怡1515-1564)가 선조 때 예안 현감을 사직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많은 한학자를 길러낸 곳이다. ‘중수기(重修記)’에 있는 숭정연호(崇禎年號)로 미루어 인조(仁祖) 재위시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탔고, 그뒤 후손들이 주이를 기리기 위해 다시 지었다.
일반적으로 정자는 협소한 계곡 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호연정은 먼 곳을 조망 할 수있는 누각처럼 경관을 넓게 볼 수 있는 곳에 지었다. 합천호수가 만들어지기 전 만해도 강물이 찰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소금배가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까지 왔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잘 상상이 안되는 모습이지만 이곳 문림리에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아련하다.
건물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팔작지붕을 가졌지만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매우 독특한 형태다, 각 부분의 자재사용도 일반건물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인공적 절재나 질서를 무시한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했다. 주인의 자연관과 호연지기를 기른다하여 지어진 호연정이란 정자이름이 절묘하게 어울어져 있다. 이는 창덕궁 후원의 왕의 정자들보다 뒤쳐짐 없이 독특한 특징과 가치를 지녔다고 봄이 맞단생각이든다. 호연정은 재실과 비각 등이 여러 건물들과 담장을 공유하며 건물군중에서 가장 공적이며 개방적인 성격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정자의 대청은 팔을 들어 환영하듯 위로 굽어져있으며 양끝은 공포의 하단에서 시작하여 중앙부는 도리와 만나고 있다.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서 만들어진 공포는 화려한 조각이 되어 있으며 공포끼리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가 독특하게 구성되어 눈길을 끈다. 하나의 기둥이 아름드리 칡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대청에 오르면 지붕 하부의 부재구성은 더욱 놀랍다. 마치 용이 날아든 것처럼 괴목이 대들보를 넘고 있으며 전기로 톱질하고 대패질하는 현대에도 절대 구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부자재가 자연그대로의 선을 가지고 있다.
10월에 찾아 시제를 준비하기에 바쁜 와중에도 취재에 응해 준 주종식 님은 “호연정을 지은 목수는 매우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나무를 만졌을 것”이라며 얼큰한 목소리로 “지독한 괴짜 아니면 천재였을 목수를 발탁한 이가 우리 할아버지 아니었겠냐”며 호탕하게 웃는다. 다만 아쉽고 안타까운 일은 자연 그대로의 보를 사용하게 하고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형태로 머리 위를 지나가게 한 지붕 하부의 부구성재는 남아있으나 용머리와 현판 등을 도둑맞아 지금은 재현된 것 밖에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호연정의 자랑이 또 있다면 가리키는 곳은 은행나무다.
주이가 직접 심었다는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 중 가장 높이 쏟는 나무는 녹죽(綠竹)을 품고 있다. 노란 물이 든 은행잎과 초록의 대는 이상하게도 잘 어울려 보여 한참을 봐도 신기하다. 조선사대부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귀향하여 지내며 정자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정자를 짓고 학문을 연마하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었을 것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전병주 시민기자

지역의 전설, 오래된 인물(위인, 명사), 오래된 단체 등을 찾아 우리 지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취재에 나선다.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