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크림빵 – 정병수 쌍백문인회 초대 회장
어제저녁을 늦게 먹어서인지 자고 나도 속이 더부룩하다.
“여보, 나 아침 먹지 않고 그냥 출근할래.”, “엥! 당신이 밥을 안 먹을 때도 있어요?”, “이제 환갑 진갑을 다 보내고 나니 젊었을 때하고는 다르네.”
“그럼! 당신이 무쇠가 아니야. 아침을 조금이라도 들고 가지 그래요? ”
“아니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서둘러야겠다.”
사무실 가까이 가자, 앞쪽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발생했는지 차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대로변에 불을 밝게 켠 24시 편의점이 시야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잠시 잊은 것이 생각났다.
“아이고! 아침에 약 먹는 것을 깜박했네. 그런데 약이 독해 식사를 한 뒤에야 먹으라고 했는데……어떻게 하지?”
나는 자동차 핸들을 급하게 오른쪽으로 돌린 후, 건물 한쪽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코감기 약을 먹고 있던 터라 나의 바지 주머니에는 약봉지가 바스락거린다. 편의점에서 깁밥 정도 먹으면 되겠다 싶어 김밥을 고르고 있는데, 조제하던 약사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이 약 속에는 항생제가 포함되어 빈속에 드시면 곤란합니다. 반드시 식후에 드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삼각 김밥’이 있는 진열대를 향해 가다가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그 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45년 전의 눈물의 00크림빵이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편의점을 들락거리면서도 그간 한 번도 보지 못 했는데 말이다.
“나는 ‘삼각 김밥’ 대신 ‘oo크림빵’ 과 ‘생수’를 샀다. 편의점 한쪽 귀퉁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OO크림빵을 한입 물어본다. 정확하게 45년 전의 훈련병 시절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는 1974년 10월에 군 복무 대체로 전투경찰 16기로 자원입대했다. 전투경찰 대원은 군인으로 갖춰야 할 군사훈련과 경찰을 보조할 수 있는 기본교육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 경찰 기본교육은 경찰학교에서 받지만, 군사훈련은 논산훈련소에 위탁하여 받을 때였다. 논산이 어떤 곳인가? 그 옛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벌인 황산이다. 그 곳에서 흘린 땀과 새긴 각오가 밀물과 썰물이 되어 흐른다.
-“좌로부터 번호 시작!”, -“하나” “둘” “셋”… -“서른여섯, 이상 번호 끝”, -“목소리가 이것밖에 안 되나?”, -“큰 소리로 할 때까지, 번호 다시 시작!”, -“하나” “둘” “셋”……“서른여섯, 이상 번호 끝”, -“자, 지금부터 잘 들어라. 알았나?”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뻘써 배가 고프다. “예!”라고 하지만 악에 바친 소리다. 군사훈련은 총검술, 각개전투, 사격 등 기초 군사훈련이지만 갑작스레 하는 강훈련이라 몸은 금새 땀 범벅이 된다. 행군 도중 ‘오열이 맞지 않는다’라고 ’오리걸음 걷기’라는 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야간 철조망 통과 훈련은 어땠는가? 조교의 지휘봉이 몽둥이로 둔갑하면 몽둥이를 피해 사력을 다해 겨우 철조망을 통과한다. 손등은 끌킨 자국과 피로 흥건하다. 이제 잠시 쉬겠다 싶으면 기다리던 또 다른 조교는 ‘눈에 오만 볼트의 빛을 발하라’고 소리 지른다.
훈련병의 허기를 보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PX(군내 매점)이다. 나는 군입대하는 순간부터 제대할 때까지 ‘집에서 1원도 안 갖다 쓰는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빈털터리로 입대한 것까지는 호기가 있었지만, 매일 지급되는 식사량으론 언제나 배가 고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중식(점심)이 평상 때보다 30% 가량 더 많이 분배되는 것이 아닌가? 좋으면서도 의아스럽다. 때 마침 조교의 한 마다가 ’배고픔’에 대한 그 동안의 많은 의구심을 풀어 준다.
“오늘 상급기관의 시찰이 있으니 절도있게 행동하라.”
시찰이 끝나자 식사량은 원래의 적은 량으로 환원된다. 쌀이 축나면 마지막 불이익은 훈련병에게 돌아간다. 그러던 중 훈련병에게 800원의 월급이 지급되었다. 나는 그 돈의 절반을 개당 20원짜리 00크림빵 14개와 30원하는 00콘 아이스크림 4개를 사서 한 꺼 번에 먹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량이다. 그리곤 저녁에도 나머지 400원에서 바늘과 실을 구입하는데 50원을 사용한 것을 제외한 350원치를 00크림빵과 아이스크림에 소비하였다. 결과적으로 1달치 월급 모두를 오로지 점심과 저녁의 두 끼 간식으로 다 사용해 먹어버린 것이다. 나의 미련한 행위는 결국 배탈로 이어져 그날 밤 화장실 출입을 두 번이나 하고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침 출근길에 있었던 OO크림빵이 생각났다. 45년 전 훈련병 시절의 배고픔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아내는 히죽히죽 웃는 남편이 ‘혹시 실성이라도 한 것 아냐?’ 하는 표정이다.
“당신, 오늘 사무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여태껏 한 번도 안 하던 짓을 해요?”
“일은 무슨 일? 아무것도 아니야. 사실은 오늘 아침에 밥을 안 먹고 갔잖아. 그래서 편의점에 ‘삼각 김밥’ 사 먹으려다 우연히 옛날 논산훈련소에서 먹었던 OO크림빵을 발견하여 사 먹어 봤지, 이상한 것은 그땐 분명 ‘눈물의 빵’이었는데, 그런 가슴 아픈 일도 추억이라고 웃음이 나오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건 4급 군사 비밀이야. 군사 비밀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잖아! ”당신, 나이가 들수록 이상해지네!. 남들은 나이가 들수록 비밀이 없어진다는데, 당신은 반대로 비밀이 자꾸 늘어나니 말이다.”
“그래? 그래도 본디 애국자란 최소한 군사 비밀만큼은 지켜야 나라가 건재하지 않을까? 기밀 등급이 4급이나 되는데…..”
“뭐라고? 그럼 당신이 애국자란 말이야?”
“그럼 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나는 그만 말문이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