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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꼭짓점 – 소민호 동화작가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연세가 많기도 했지만 몸이 아파서 오랫동안 누워 지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눈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빠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가슴에 맺힌 것들을 모두 토해내듯 울었습니다.
“왜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걸까?” 나는 전래동화 가운데 ‘젊어지는 샘물’을 읽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샘물은 없다 하더라도 과학이 이만큼 발달했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약은 나와야 할 것 아니야.”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립니다.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도 슬픈 일입니다.
나는 사람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얼마동안 우리 집은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가 계셨던 방문을 열면서 눈물을 흘렸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물건들을 보고 그리워했습니다.
“아빠, 사람이 죽지 않고 살면 참 좋겠어요. 그러면 모두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요.”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또 그렇게 되면 삶이라는 말도, 생명이라는 말도 사라지겠지.”
아빠는 참 이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렇게 슬퍼하셨던 아빠가 영원히 산다는 말이 썩 반갑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텔레비전에 장수 마을이 소개 되면 거기서 살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영원히 산다는 것에 무덤덤합니다.
“누리야, 이 책 한번 읽어 봐.” 아빠가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제목이 ‘트리갭의 샘물’이고 지은이는 ‘나탈리 배비트’였습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는 점점 책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트리캡의 샘물에 나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숨소리도 들렸습니다. 트리캡숲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내, 내가 왜 여기 있지?” 낯선 무덤 앞에 내가 서 있었습니다. 주위에 무덤이 많은 걸 보니 공동묘지 같았습니다. “너는 누군데 여기서 서성거리느냐?”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하, 할머니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이 녀석아, 내가 먼저 물었지 않느냐?” 얼굴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눈을 흘겼습니다. “아참, 저, 저는 누리라고 합니다.” “녀석 하고는……, 이 공동묘지에는 왜 왔어?”, “저도 모르겠어요. 여기 오기 전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오호라, ‘트리캡의 샘물’을 읽었구나!” 할머니는 합죽한 입을 벌리고 웃었습니다.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바로 그 책에 나오는 위니란다. 열 살 때 샘물의 비밀을 알고 마음이 참 많 이도 흔들렸지!” 위니 할머니는 자신의 무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터크 아저씨 가족은 아직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거야.” 할머니는 트리캡숲에서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지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정말로 살아 있을까요?” “내가 죽을 때까지도 백 살이 넘은 터크 아저씨는 젊은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위니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옛날 일들을 슬슬 풀어놓았습니다.
열 살 된 위니는 가족들과 함께 트리캡숲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위니 아버지가 숲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터크라는 아저씨네 가족도 이웃에 살았습니다. 위니는 숲을 뛰어다니다가 샘물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오, 마침 목이 말랐는데 잘 됐다!” 위니가 샘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였습니다. “안 돼!” 터크 아저씨 아들 재시가 샘물을 못 마시게 했습니다. “왜, 못 마시게 해? 이 샘물은 우리 거란 말이야.” 위니는 입을 삐죽이며 눈을 흘겼습니다. “마시면 안 돼. 이 샘물을 마시면 넌 불행해진다 말이야!” 재시는 진지한 눈빛으로 위니를 바라보고 샘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터크 아저씨 가족은 숲 속으로 소풍을 갔다가 목이 말라 샘물을 마셨습니다. 시원하고 갈증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샘물을 마신 뒤부터 터크 아저씨 가족은 상처가 나도 금세 나았습니다. 감기도 걸리지 않고 몸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
“아하, 우리 가족은 생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났구나. 영원한 삶을 얻은 거라고!” 터크 아저씨 가족은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사는 것에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살아도 끝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니, 하루하루 사는 게 재미도 없고 지루했습니다.
“아무리 굶어도 우린 죽지 않아. 그러니까 일도 할 필요가 없어.” 늘 빈둥거리던 제시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젊은이들이 나를 보고 또래처럼 여기고 말도 함부로 해서 속상해!”
할머니가 되고도 남을 만큼 나이가 많은 터크 아저씨 아내도 투덜거렸습니다. 터크 아저씨 가족은 무의미한 삶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에이, 차라리 내 손으로 내 생명의 끈을 끊어버릴 거야!”
터크 아저씨가 하루는 죽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헛일이었습니다. 몸에 아무리 큰 상처가 나도 금세 아물어버리고, 몸을 아무리 혹독하게 다루고 심한 일을 해도 금세 피로가 풀렸습니다. 그래도 위니는 샘물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면 좋은 거잖아!’ 샘물을 마시고 싶은 위니의 마음이 한 번씩 그렇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발소리를 죽이고 터크 아저씨 집 앞을 지나갔습니다. 트리캡숲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터크 아저씨는 인기척을 듣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깊은 밤에 웬 사람들이요?” 터크 아저씨가 사람들 앞을 막아섰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얻으려고 샘물을 마시러 온 사람들이요. 저리 비키시오!” 숲을 찾은 사람들은 터크 아저씨를 밀치고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샘물은 없소. 모두 돌아가시오!” “흥, 혼자 잘 살고, 부자가 되겠다고……? 에잇!” 샘물을 팔아 부자가 되려고 단단히 벼르고 찾아온 사람들은 무기를 꺼내 휘둘렀습니다. 주먹도 휘둘렀습니다. “악, 이러면 안 돼요. 모두 그만 두세요!” 터크 아저씨 팔과 가슴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흘러 옷을 적셨습니다.
“어, 저, 저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금세 피가 멎고 상처가 흉터도 없이 아물었습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은 놀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려고 트리캡숲을 찾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터크 아저씨 가족은 몸으로 막았습니다.
위니는 가까이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맞다. 죽음이라는 게 꼭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야.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 은 삶의 꼭짓점이기도 해.” 위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샘물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네가 여기 온 걸 보니까,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게로구나.” 위니 할머니가 눈을 뜨고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예,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가족들은 모두 슬퍼했어요.” “그래서 죽지 않는 약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냐?” 위니 할머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말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게 없으면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얘야, 영원한 삶은 이 세상에 없단다. 다만 ‘삶이란 자연의 질서대로 변하고 죽는 것이고, 삶이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라는 터크 아저씨 가족들의 말처럼, 네가 사는 나날을 보람 있고 즐겁게 지내고 그 뒤 의 삶은 다음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는 거란다.” 위니 할머니는 내 등을 토닥여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죽음 때문에 못 다한 일들은 없었어요?” “왜 없었겠니. 하지만 그런 것을 핑계로 더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 일 거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을 앞세워 삶의 끈을 붙들고 매달리는 건 다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몫까지 차지하려는 욕심이라고 봐!”
“그 때 할머니가 그 샘물을 마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는 할머니 말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생각해볼 뭔가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음, 만약에 그 때 내가 샘물을 마셨더라면 하루하루를 애써 살아온 나의 흔적 따위는 없을 거야. 그리고 일생동안 뻗어나가던 몸과 생각의 선이 마주치는 내 삶의 꼭짓점을 보지 못했을 거야!” 위니 할머니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며, 터크 아저씨가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피곤하구나. 이제 너도 가 봐!” 위니 할머니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나는 위니 할머니가 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얘가 조는 거야? 책을 보고 절을 하는 거야?” 엄마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습니다. “엄마, 왜 불렀어요?” “과일 먹어라.” 나는 아빠와 마주 앉아서 과일을 먹었습니다. “아빠, 이 과일도 우리가 생명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되겠죠?”, “허허,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 보다 건강을 위한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아빠는 건강하게 살아야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 있게 사느냐가 소중하다는 말씀이죠?” “책 한 권으로 누리가 많이 달라졌구나.”
아빠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약은 안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