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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29)| 대암산(大岩山)과 소금장수

부모님을 위해 대암산에서 제사를 지내다
지금은 무곡리(茂谷里)와 장지리(裝池里)가 대양면(大陽面)에 속한 마을이지만, 1914년까지만 해도 우리가 대목리(大目里)로 알고 있는 대목면에 속했던 마을이다. 대양면은 그런 대목면과 양산면(陽山面) 그리고 초계현에 속했던 백암(伯岩) 마을이 떨어져 합쳐진 고을이고, 대양(大陽)이란 새 지명도 대목의 ‘대(大)’와 양산의 ‘양(陽)’을 한 자씩 따서 이름 붙인 것이다.
무곡 마을과 장지 마을은 대목면에 속했다. 장지 마을은 이전에는 장자(裝子) 마을이라 했는데, 일제 시대 때 큰 저수지가 생기면서 장지(裝池)로 개칭되었다. 장자(裝子)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큰 부자가 살았던 마을이다.
옛날 장자 마을에는 소금장수를 하면서 부모님을 지극히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한다. 소금장수는 부모님이 돌아가자 삼년상을 정성껏 모신 후 대암산 넘어 초계고을로 이사를 갔다. 이사 후에도 부모님의 기일(忌日)이 되면 혹한에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제사를 모셨다.
그날도 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잠을 자는데 꿈에 조상님의 영혼이 나타나 이르기를 ‘제사 날이 되면 너희 집을 찾아 대암산을 넘어 초계고을로 가야 한다. 그런데 대암산이 높고 험준하여 이 고개를 넘을 쯤 날이 밝아 제사 밥을 먹지 못해 매번 헛걸음만 하고 돌아간다.’고 하소연 했다.
꿈에서 깨어난 소금장수는 조상님께 제사 밥을 먹일 고민을 하다 대암산 마루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로 기일이 되면 대암산 마루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소금장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장사가 잘 되어 초계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암산이 초계면과 대양면을 경계 짓는 산이지만 합천군민이라면 새해가 되면 대암산에 올라 제(祭)를 지내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기 소원한다. 아마 그런 소원의 기원(起源)과 영감을 준 것이 바로 소금장수의 효(孝)와 부(富)의 본보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황준연 시민기자

지역의 전설, 오래된 인물(위인, 명사), 오래된 단체 등을 찾아 우리 지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취재에 나선다.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