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30)| 무학대사(無學大師)출생지에 관한 두 가지 설(說)
사람들은 무학을 닮고 싶어 했다
무학대사(無學大師)에 관한 여러 가지 설(說)들 중 가장 많이 회자(膾炙)되는 것이 그의 출생지에 관한 것이다. 무학대사의 성(姓) 씨에 관해서도 염, 성, 박 씨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시생, 사겸, 자초라는 주장도 있다. 그의 부모와 무학에 대해서도 삼기(지금의 합천군 대병면) 고현 사람이라 하는가 하면, 고려 때 양경위 익제의 서자(庶子)라는 설과 증보국승록대부병조판서 치인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문 씨 집안 노비의 첩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무학대사 출생지를 놓고 지자체 간 갈등이 심한 곳이 대표적으로 충청도 서산과 합천군 대병면 출생설이다. 서산설은 고려 말 왜구들의 노략질로 무학대사의 부친 인일(仁一)과 모친 채씨(蔡氏) 부인이 삼기현(지금 대병면)에서 잡혀 가던 중 선상(船上)에서 배를 차지하고 도망가 도착한 곳이 서산 간월도이다. 무학의 부친 인일이 서산 관아에서 관전을 빌러 쓰다 이를 갚지를 못해 대신 채씨 부인이 관가로 끌려가다가 서산면 인지면 애정리에 이르러 산기를 느껴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무학이라 한다. 채씨 부인이 우물 옆 쑥대밭에 아기를 쑥으로 덮어 두고 관가에 갔다 돌아오니 학들이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한다. 그래서 그 아기의 이름을 춤추는 학이라는 뜻으로 무학(舞鶴)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학대사의 무학은 춤추는 학이 아니라 배움이 없는 경지를 칭송한 무학(無學)이란 뜻이고, 사후에 얻은 법명이라고 한다.
합천군 대병설은 무학대사가 삼기현 탑들(지금의 대병면 상천)에서 출생했다는 설이다. 무학의 부친 박인일과 모친 고성 채씨 부인 사이의 아들로 모친이 해가 품안을 비추는 꿈을 꾸고 무학을 잉태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왕사(무학대사)의 출생지인 삼기현을 군으로 승격 시켜 부친인 박인일에게 문하사랑의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왕과 무학과의 관계를 봤을 때 가장 신빙성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무학대사의 성씨나 출생지가 분분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가 최소한 무학대사의 출생신분이 당시의 지배세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무학대사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이 그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학대사의 출생지를 논하면 논할수록 삼기현과 부친 박인일, 모친 채씨 부인 등 어느 한 곳과는 연결된다는 점에서 합천군 대병면 탑들 출생설이 더욱 신빙성을 짙게 한다. 무학대사의 출생지와 소년기 흔적에 관한 얘기들이 가장 많은 곳도 대병면이며, 아직도 무학탄, 무학굴, 무학바위, 무학샘, 무학감나무 등의 얘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황준연 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