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느티나무 – 이호석 논설위원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역사가 깊은 농촌 마을 주변에는 가끔 모양새 예쁜 느티나무 한두 그루씩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버텨 서 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과 오랜 세월 애환을 함께하면서 그 흔적이 깊게 배여 있어 마을을 더욱더 고풍스럽고 운치 있게 한다.
이곳의 느티나무는 더위가 기성을 부리는 여름날이면 두꺼운 잎 무리로 아름답게 장식하면서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한다. 온 마을 주민이 그 아래 모여 참외 수박을 쪼개 먹으며 땀을 식히는 피서지이자 휴식처가 된다. 그늘 한편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신선놀음을 하고, 농사일에 찌든 농부들은 잠시 꿀맛 같은 낮잠으로 피로를 풀기도 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자식 손자들 얘기며, 인생사 온갖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감을 나눈다.
우리 마을 앞 도로변에도 40년생쯤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가 이곳에 자리한 것은 1982년 4월이다.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지나가는 뭇 차량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명당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모양새가 별로라 호감을 주지 못한다. 나무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자체가 잘못 생겨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환경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나무를 ‘비운의 느티나무’라고 부른다.
이 나무가 이곳에 자리한 사연은 이러하다.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기치 아래 제창한 새마을운동이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면서 가난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보릿고개의 배고픔에 찌들었던 전 국토에 풍요의 새싹을 움트게 했다. 농촌에서는 지게로만 다니던 꼬불꼬불한 마을 안길과 들길을 리어카 경운기가 다니는 길로 만들었고 또 가을이면 지붕 위에 널린 빨간 고추가 한없이 평화로움을 주는, 전설 속의 흥부네 집처럼 정겨운 초가들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농촌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어 갈 때인 1979년, 전국의 모범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취락구조 개선사업이 전개되었다. 취락구조 개선사업은 슬레이트 지붕과 리어카 길로 바뀐 마을 안길을 다시 기와집과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바꾸는 등 마을 전체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는 큰 사업이었다. 그때 합천군에서는 묘산면 심묘리와 우리 마을 신소양이 선정되었고, 이곳에서는 마을이 생긴 이래 최대 규모의 역사(役事)가 벌어졌다. 우리 마을은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받아 마을 옆 농지에 새로운 취락지를 조성하였고, 마을 안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로 만들어졌으며, 이 길 주위를 비롯하여 마을 곳곳에 당시로써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 20여 채가 들어섰다.
전국에서 시행한 이 사업은 2~3년이 걸려 마무리되었고, 1982년에 이 사업을 시행한 전국 마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 하사 목’이라는 이름으로 느티나무 몇 그루씩이 배정되었다. 우리 마을에는 모두 다섯 그루가 배정되어 새로 만들어진 취락지 도로변 공간 곳곳에 네 그루를 심었고, 남은 한 그루가 바로 마을 앞에 있는 이 느티나무다. 이 나무가 심어지고 수년 후 마을 앞 도로변에 전주가 새로 세워지면서 머리 위로 굵다란 전선이 지나갔다. 몇 년 뒤 나무가 자라 머리가 전선에 닿자 그때부터 그 부위가 자주 잘리게 되면서 여느 느티나무들처럼 예쁜 몸매로 가꾸지도 못하고 기형으로 살고 있다. 그동안 마을 안에 있는 네 그루 느티나무는 차츰 자라면서 인근 가옥에 피해를 주게 되어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잘려 버렸고, 지금은 마을 앞 이 느티나무만 그때의 역사를 간직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하면서, 여름철이면 제 나름대로 힘껏 잎을 피워 마을 주민들에게 작은 쉼터를 제공한다.
내가 이 나무를 ‘비운의 느티나무’라고 부르는 데는 꼭 이런 이유만은 아니다. 이 나무 앞, 작은 옥석에는 당시 하사한 대통령의 이름과 심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그분은 재임 시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 국가 경제를 크게 부흥시키면서 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퇴임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권 근원에 대한 시시비비와 재임 중 공과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가 크게 존재하면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고, 1982년 우리 마을로 이주한 이 느티나무는 미지의 땅, 제2의 고향에서 그 어른의 명성을 등에 업고 뭇 사람의 사랑을 받아 가며, 여느 느티나무보다 더 당당하고 예쁘게 살고 싶었던 그 꿈을 잃은 채 기형의 몸으로 사람들의 눈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