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 공원석 전 합천중학교장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모든 만물은 모두 소리를 내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는 못해도 소리는 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눈은 뒤를 보지 못하지만 귀는 뒤에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눈은 바라보는 방향만 알 수 있지만 귀는 사방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소리는 그 사회의 실정을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곳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서 원망이 묻어난다면 이는 정치가 매우 잘못되었음의 증거로 보았고, 반대로 목소리에 편안함과 즐거움이 깃들어 있으면 정치가 조화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의례히 청진기로 사람의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서 병을 진단합니다. 눈은 사람의 병든 속을 갈라서 눈으로 보고서야만이 판단하지만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면, 겉에서도 그 속이 어떠한 병을 앓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는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빛은 겉모습만 드러내지만 소리는 속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내는 대표적 소리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려면 사람의 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려 말을 경청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남의 말을 듣고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말로 드러나 있지 않는 말의 행간에 스며있는 의미와 의도, 욕망까지 낱낱이 헤아릴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치우친 말로는 그가 숨긴 것을 알아내고, 과도한 말로는 탐닉하고 있는 바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말로는 그가 일탈하고 있는 바를 알아내고, 감추려는 말로는 그가 궁색해 하는 바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맹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소리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스며들어와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 자기를 움직이는 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말을 살펴 파악하지 못하면 자기 내면의 뜻에 따라 말을 한 것 같지만 결국은 남의 목소리에 놀아난 셈이 되고 맙니다. 자기가 낸 소리의 근원이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책임감 없이 끊임없이 남을 탓하기만 합니다. 나를 움직이게 한 소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남의 소리에 도취되어서 던진 속말로 ‘개소리’이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내가 내뱉은 말이 개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바르게 들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남의 말을 바르게 들을 수 있는 힘을 가져야 여기에 자기생각을 보태서 동의하는 말이나 반대되는 내용의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언제나 자기주도적인 말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