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正體) – 문계성 수필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임용된 대법원 판사가, 일제 징용자의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 배상 청구소송을 인용했다. 일본은 1965년도 한일협정의 약정을 이유로 이 판결을 반박하고, 불소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청와대 민정 수석이 죽창가를 읊으며 반일 선동에 나섰다. 이 선동으로 나라가 온통 반일정서로 넘쳐흘렀다. 그러자 청와대는 이 정서를 이용하여 일본과의 지소미아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파기선언은 군사동맹국인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가까스로 취소되었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법원 판사의 뜬금없는 판결과 민정수석의 반일선동, 그리고 놀라운 지소미아 협정 파기 선언 간에,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연결고리가 있음을 느꼈다. 지소미아는 미국과 한국의 군사동맹,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군사동맹, 이 삼각동맹을 잇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 동맹은 북한의 핵개발 성공과 더불어 우리의 방위동맹에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왜 지소미아를 파기하려 했을까? 그런데 지소미아 파기선언의 폐기 후 정부의 반일선동은 갑자기 잦아들었다. 이러한 과정은 반일선동과 지소미아 협정 파기와의 연결에 대한 의심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위 반일선동으로 우리가 얻은 것이 있었는가? 무엇인가? 과연, 정부가 앞장선 반일 선동은 지소미아 파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을까?
민정수석이었던 조국은 사노맹(사회주의노동자연맹)의 이론가였다. 그는 국민들 앞에서 “포기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가치”를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열렬한 레닌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폭력을 수단으로 한 공산국가 건설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조국이 말하는 사회주의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사노맹의 강령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발전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가 인정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회주의는 사실상 그 실패가 역사에 기록된 이념이다. 이 민정수석과 그 가족은 입시비리 등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가 입으로 열심히 추구한 사회주의 가치와는 너무도 괴리가 있다. 이 민정수석은 ‘타락한 퇴폐적 자본주의’의 추악함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역설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자신이 이미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든, “타락한 자본주의의 늪에 빠진 이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그가 한 말들의 순결성을 그대로 믿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괴리된 이상은 말장난이나 어린아이의 불장난과 같다. 성숙한 어른들은 먼저 현실과 자기를 쳐다본다. 그의 혁명적 이상주의는 사랑 받을지 모르나, 그 이상주의가 추악한 현실적인 욕망을 감춘 것이었다면 당연히 손가락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은 이 민정수석에 대한 애틋함을 국민들 앞에서 감추지 못한다. 그의 이상적 사회주의 이념을 사랑하는 것일까?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부정선거개입을 조사하자, 청와대는 새로운 장관을 임명했다. 이 신임 장관은 임명이 되자 말자, 현 검찰총장의 수족들인 검사장들에 대한 전보처리를 감행했다. 검찰총장의 청와대 부정선거 개입에 대한 수사의지를 막겠다는 것이 이 인사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 신임장관은 현 여당의 당대표를 지낸 이력이 있다. 중국공산당대회의 한국의 당대표로 참석했고, 돌아와서는 토지공개념을 역설했다.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상징적 사상이다. 비록 공산주의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가 주관하는 세계정당대회라 할지라도 참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참석은 중국공산당에 대하여 매우 친밀하고 우호적인 몸짓이다. 나아가 토지공개념 주장은 사상적 일치성을 말해준다.
자유시장경제로 먹고 살고, 누대의 가난에서 벗어난 국가에서, 이미 폐기된 사회주의 사상의 자식인 토지공개념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우리의 국권을, 우리가 왜놈이라고 비웃던 일본에게 빼앗긴 조선을 가르친 학문은 성리학이었다. 조선은, 이 사상의 제조국인 중국조차도 버린 이 학문을 머리에 이고, 문을 닫아걸고 그 속에서 숨 쉬고 살았다. 조선의 우주는 성리학이었고, 선비라는 자들은 성리학을 만든 중국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그 결과는 얼마나 비참했는가?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 종주국인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도 버렸다. 그래서 맑시즘은 버려졌다. 그런데도 그 망령은 일부 국가나 개인에게 아직 살아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기성을 부린다. 마치 조선의 성리학처럼.
사회주의 종주국이 실패를 자인한 사상을 우리 머리에 이고 산다는 것은, 마치 성리학을 머리에 이고 살다 남의 종이 된 우리의 선조가 걸은 길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성리학이나 사회주의 사상 전부가, 인간의 진보를 선도하지 못한 실패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강남 집값이 매우 가파르게 오른다고 야단이다. 나는 강남 집값에 세상이 왜 야단인지 알 수 없다. 강남 집값이 오르건 말건 그냥 두면 제자리 찾아간다. 돈에 굶주린 자들이나, 신분상승에 목을 매는 자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곳이다. 그들의 세상은 그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안할 짓도 말리면 더 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강남집값과 왜 그렇게 전쟁을 하려는 것일까? 대체, 실패를 계속하면서도 더 실패를 부르는 정책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 부자 되는 꼴은 절대 못 본다는 심사인가? 아니면 자신이 정의의 사도라는 사실을 계속 증명하고 싶어서인가? 집값에 대체 정의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하다하다 이제는 매매허가제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매매허가제는 국가가 개인의 주거와 개인 재산의 매매를 감독, 강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주의 체제가 추구하는 정책이다. 사람들이 국가라는 집단의 체제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받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창달하는 것이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한하려 든다면, 개인들에게 그런 국가가 왜 필요한가? 개인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이유는, 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호하는 기구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 돈으로 공무원들 월급을 준다. 강남 집값을 핑계로 국가가 개인의 주거매매활동을 제한하려는 발상은, 마치 빈대를 잡기 위하여 집에다 불을 지르는 행위와 같다. 가치를 혼동하면 주객이 바뀌는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 나온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아마 이상적 사회주의 세상에 대한 추구가 아닐까? 나는 이상적 사회주의가 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실험은 수많은 인류적 고통을 남기고 실패했다. 나는 그 실패의 원인이 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추구는 결국 전체주의로 귀결 되고, 전체주의는 개인을 말살하면서 실패한다고, 역사는 늘 그렇게 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