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올챙이 시절의 첫 여행

정병수
쌍백초 총동창회장

봄이다. 어느새 하얀 목련, 노오란 개나리, 빠알간 진달래가 한꺼번에 경쟁하듯 피어있다. 그 중의 으뜸은 도심에도 산에도 온통 핀 벚꽃이다. 벚꽃을 핑계로 초등학교동창생 3명이 등산을 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공통분모인 초등학교 시절로 달려간다. 도시락보다 ‘옥수수 빵 급식’이 부러웠고, 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던 일, 진달래꽃을 많이 따 먹는 바람에 배가 아팠다는 등 시시콜콜한 옛 추억이 끝이 없다. 벚꽃도 보지만 추억 꽃도 상상하는 꼴이다. 어느 해인지 몰라도 흉년이 들어 보리 죽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했던 때를 떠올리고는 잠시 숙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장(市場) 이야기가 나왔다.
“윤호야, 네가 고향의 삼가 장에 처음으로 가본 날을 기억하니?”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마는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니었나 싶다.”
“혹시 장에 처음 갔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생각나?”
“기억하고 말고. 시장에 갔더니만 사람이 하도 많아 겁이 났지. 그래서 고아 안 되려고 엄마 뒤를 쫄쫄 따라다녔지. 그리고 그 때 내가 우리 초등학교의 축구 선수였잖아. 그래서 검은 운동화 한 켤레를 샀는데 그 기분이 짱이었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보니 진짜 좋았던 모양이네, 사실 나도 비슷한 추억이야.”
당시 우리가 살던 고향의 면 소재지에는 장이 없었다. 그래서 시오리 떨어진 인근 삼가면 소재지에서 5일마다 열리는 장이 삼가 장이었다. 장날이 되면 평일에는 한산하던 길이 아침부터 장에 가는 사람들로 줄을 잇는다. 옷차림부터 들판에 일 나갈 때와는 사뭇 깔끔하고 화려하다. 남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땔감이나 쌀 등을 지게에 지고 간다. 좀 여유가 있는 집안은 리어카를 가지고 쌀포대, 돼지새끼, 강아지, 닭 등을 싣고 간다. 여자들도 고추, 참깨, 달걀 등을 머리에 이고 잰걸음을 한다. 신기한 것은 머리위 물건이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지 않다는 점이다. 더 신기한 것은 부부가 함께 나란히 걷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몇 미터 떨어져 가는 것이 예의로 알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도 장에 갈 계획이 있으면 새벽부터 부산해진다. 어머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집 안 우물가에서 비녀를 풀고 놋쇠 대야 물에 긴 머리를 풀어 머리부터 감는다. 참빗으로 머리를 고르면서 연신 ‘시원하다’고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화장이래야 면경(面鏡)을 보며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면 끝이다. 그리곤 서둘러 아침상을 차려 내 놓고는, 정작 당신은 부엌에서 먹는 둥 마는 둥 하신다. 그리곤 한복으로 갈아입고, 하얀 새 고무신도 신는다. 초등학교 취학 전이던 나는 마냥 따라가고 싶어진다.
“어무이, 오늘 어디 가는 데?”
“가기는 어디 가노. 내일 모래 제사도 있고 하여 장보러 가제.”
“어무이, 내도 같이 가면 안 되나? 장이 어떤 긴지 참말로 궁금하다 아이가.”
“거기가 어딘데 따라 갈라고 하노. 맛있는 것 사 올 테니 소나 잘 멕이고 있거레이. 알았제?”
울며 애걸해보지만 끝내 거절을 당한다. 시무룩해진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장에서 오실 어머님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드디어 장 보따리를 이고 오시는 어머님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가 치마 자락을 잡는다. 어머님은 문어, 돼지고기 등 제물 외에 내가 신을 나일론 양말과 사탕 등도 펼쳐 놓는다. 사탕 하나면 싱글벙글 만족이다. 더 무엇이 필요하랴. 부모님이 장에 안 간 아이 몇 명이 대문 주변에 서성이다, 사탕 하나를 받으면 줄행랑이다. 얼마나 자랑할지 뻔하다.
아마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의 추석 때일 것이다. 그 때도 장에 가시는 엄마에게 울며불며 떼를 써 처음으로 5일장에 가게 되었다. 시오리 밖에 안 떨어진 세상인데도 어린 눈으로는 신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신작로에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도 신기하고, 콘크리트 다리도 엄청난 건축물로 다가왔다. 추석대목을 맞이한 5일장은 별 천지였다. 가게마다 가득하게 진열된 물건들이며, 북적이는 인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골라! 골라!” 하며 혼을 빼듯 유인하는 현란한 몸짓도 재미있었다.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따라 다녔다. 추석빔으로 검정 제복 한 벌을 사 주실 때는 기분이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옆 가게의 장난감 고무 물총도 하나 사 주었으면 했지만, 종이딱지를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시장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허기가 질 무렵 먹은 늦은 점심의 장국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 장에 오니까 좋나?”
“응”
“국밥은 맛있나?”
“응”
“배고프지? 천천히 많이 묵으라.”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때 내 등을 두드리던 어머님의 손길과 눈빛이 선하다. 그 때 시오리 밖의 5일장 나들이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개구리도 못된 올챙이의 첫 번째 여행이 된 셈이다. 5일장에 맞추어 고향에 내려가 그 때 그 추억이 어린 삼가 장에 꼭 한번 들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