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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닮은꼴 – 소민호 동화작가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늘 그랬듯이 너른 돌밭을 절뚝거리며 걸어온 소년은 내 위에 앉았습니다. 내 몸을 스치고 흐르는 강물이 요란한 소리를 냈습니다. “아, 시원하다.” 소년은 신을 벗고 강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런 소년이 나는 참 고마웠습니다. 크고 작은 돌멩이들과 큰 바위들이 많아도 내게 친구가 되어줄 돌은 없었으니까요. 아니 친구는커녕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나는 소년을 보면서 옛날을 떠올렸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나는 처음 하늘을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면서 나를 덥고 있던 흙이 파였던 겁니다. “아,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나는 긴 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길게 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디디고 있는 땅이 스르르 가라앉았습니다. 따라서 내 몸도 공중에 뜨는가 싶더니 언덕 아래로 굴렀습니다. 한참을 구른 뒤 멈춘 곳은 물이 바위틈을 굽이쳐 흐르는 개울이었습니다. 개울은 높은 산에서 흐르는 물길이었던 겁니다.
며칠째 장맛비가 끊임없이 내렸습니다. 개울물도 점점 불어나서 둑을 넘어 논과 밭까지 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버티고 있던 작은 돌멩이들은 가랑잎처럼 떠내려갔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개울물이 무서웠습니다. 물은 점점 많아지고 폭포처럼 흘러내렸습니다. 큰 물살은 돌멩이들의 비명까지도 집어삼켰습니다.
“앗, 어지러워!” 나도 그만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굴렀습니다. 작은 돌멩이들을 타넘고, 큰 바위에 부딪치며 물살 따라 자꾸만 굴렀습니다. 나중에는 무거운 내 몸무게가 빠른 물살에 힘을 보태 더욱 힘차게 굴렸습니다.
얼마나 굴렀을까요. 드디어 내 몸이 멈췄습니다. 온몸이 아리고 욱신거렸습니다. 몸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나는 한참 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내가 멈춘 곳은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이었습니다. 물속에는 반질반질한 돌멩이들이 많았습니다. 물밖에도 예쁜 돌들이 쫙 깔렸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자 물이 줄어들고 잠겼던 돌밭도 드러났습니다. “저 바위는 어디서 굴러온 거야?”, “이번 큰 비에 떠내려 왔겠지 뭐.”, “모양이 왜 저래?”, “흉해서 못 보겠어!” 돌멩이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내가 봐도 나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반질반질 윤이 나는 돌들이었으니까요. 큰 몸에 옴팍옴팍 파인 홈과 툭툭 불거진 혹, 여기저기 난 상처는 내가 봐도 흉했습니다.
“쯧쯧쯧, 안 됐다.”, “어쩌면 저렇게 생겼어!”
“불쌍해!” 그렇게 반갑지 않은 관심을 받으면서 오랜 세월을 지냈습니다.
큰 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 힘차게 내려갈 때는 비록 못난 몸이지만 깨지고 상처 난 곳을 씻었습니다. 누른 흙탕물에는 깎고 닦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한쪽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몸도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걸을 때면 넘어질 듯 뒤뚱거렸습니다. 울퉁불퉁하고 옴팍옴팍 파인 나와 많이 닮았습니다.
“이런 곳을 자주 걷다가 보면 평평한 길은 더욱 수월하게 걸을 수 있을게다.” 할아버지는 힘들어하는 소년을 보고 어디서든지 혼자라는 생각을 하라고 했습니다. 힘든 일을 이겨내고 아픔을 참으면 겉과 속이 단단해진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정상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말대로 소년은 돌밭 걷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보름달이 몇 번이나 지나갔습니다. 갈맷빛 이파리들이 얇아지며 울긋불긋 물들 무렵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걷던 소년은 흐르는 강물도 바라보고, 우뚝 솟은 산도 구경할 만큼 여유로워졌습니다.
‘어, 소년이 나를 보잖아.’ 소년의 눈길이 나를 향하자 가슴이 막 뛰었습니다. 소년이 가까이 다가오자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아, 참 멋지다. 거울처럼 반짝거리기까지 하네!” 소년은 오랫동안 물에 씻겨 윤이 나는 내 몸을 만지고 또 만졌습니다.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몸도 가벼워져서 금세라도 강물에 떠내려갈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거울 같구나. 거기 앉아 봐라.” 할아버지가 소년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소년은 옴팍한 내 몸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앉았습니다. “허허, 이 돌이 네가 앉기에 알맞은 크기구나.”, “할아버지, 이 돌도 많이 아팠겠어요.”, “아픔을 잘 견뎌냈으니 이런 멋진 모습을 갖지 않았겠느냐!” 할아버지도 쪼그려 앉아 내 몸을 쓰다듬었습니다. “앉아 있으니까 편안해요!”
웃음을 머금은 소년은 오랫동안 내 몸에 앉아 놀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 체온을 나누며 해를 거듭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소년은 내 위에 앉아 숨고르기를 하며 땀을 식혔습니다. “이제 걸음걸이가 많이 수월해졌구나.”, “아직도 힘든 걸요.”,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걷다가 보면 좋아질 게다.”
내가 보기에도 소년은 처음보다 잘 걸었습니다. 그런 소년이 중학생이 되면서 혼자 다녔습니다.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소년의 눈에 슬픔이 고여 있었습니다. “이제 못 보게 됐어. 멀리 떠나거든.” 소년이 내게 앉아 나를 만졌습니다. 내 몸에 기대기도 하고, 두 손으로 내 몸을 감싸보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내 몸을 휘감았습니다.
오랫동안 돌밭에 있으면서 외로움이 어떻다는 걸 잘 알기에 나는 더 두려웠습니다.
“잘 있어!” 소년은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나도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눈빛이 참 맑았습니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눈빛이었습니다. 그렇게 소년과의 만남은 헤어짐을 품고 있었나 봅니다.
다음 날부터 나는 혼자였습니다. 돌멩이들이 그렇게 많아도 외로웠습니다. 날이 밝으면 안 오는 줄 알면서도 소년이 걸어오던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지랑이 사이로 소년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렸습니다. 여름날은 땡볕 속에서 소년이 땀 흘리며 나타날 것 같았습니다.
낙엽 위에 눈이 쌓이고, 쌓인 눈이 녹아도 소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기다렸습니다. 꼭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은 소년과 함께했던 추억이 내 곁에 있을 테니까요. 아련한 추억을 씻어내려는 듯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실개천처럼 졸졸 흐르던 강물은 몸집을 불려 용트림을 하며 흘렀습니다.
내 몸을 훑으며 흐르는 그 강물은 모래와 자갈도 품고 있었습니다. 온몸이 아리고 하늘이 노래질 만큼 아팠습니다. 그러기를 해마다 거듭하며 세월이 한참 지났습니다.
저 멀리 강둑에는 그때 없던 버드나무들이 숲을 이루었습니다. 내 몸도 더욱 매끈해졌습니다. 옴팍옴팍하고 울퉁불퉁한 몸은 그대로지만, 물과 모래와 바람이 닦아 놓은 돌갗은 더욱 반짝였습니다. 그래도 소년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저는 소년, 숨을 몰아쉬며 내 위에 앉아 땀을 닦던 소년이 자꾸만 보고 싶었습니다.
햇살 좋은 날이면 따뜻한 소년의 손길이 그리웠습니다. 그 날도 소년이 보고 싶어 강둑을 넘어다보았습니다. 혹시 절뚝거리며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저돌 맞지?”, “희한스럽게 생긴 돌은 이것밖에 없잖아.” 장정 두 사람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은 지게를 지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길쭉한 쇠막대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허허, 돌이 참 희한하게 생겼네!”, “그러니 정원에 놓으려는 거겠지.”
두 사람은 내 주위를 팠습니다. 받쳐주는 작은 돌멩이들이 파헤쳐지자 금세 내 몸이 흔들렸습니다.
‘안 돼요. 나는 여기 있어야 해요. 여기서 그 소년을 기다려야 한다고요!’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텼습니다. 언제 올지, 아니 영영 안 올지도 모르는 소년이지만 나는 여기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여기를 떠나면 소년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보기보다 그리 무겁지 않구먼.”, “이렇게 움푹움푹 파였으니 그만큼 가벼운 거겠지.”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나를 번쩍 들어 지게 위에 올렸습니다. 오래 전에 큰물에 떠내려 온 뒤 처음 움직이는 몸이라 많이 어지러웠습니다.
나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만남의 희망도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곳이 두려웠습니다. 돌밭에서 관심거리가 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곳에도 어떤 눈길이 기다릴지 모르니까요. 내가 지게에서 내려진 곳은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여기 놓으라고 하셨어.”, “이 돌이 좋은 돌인 모양이야.”, “그러니까 마당 가운데 자리를 잡아주셨지.” 나를 내려놓은 곳은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마당 복판이었습니다. 집도 새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강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폭신한 잔디 위에 자리를 잡으니까 참 편안했습니다. “수고들 하셨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머리가 하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습니다. 그 뒤를 따라 가족인 듯한 사람들도 함께 나왔습니다. 천천히 다가온 노인은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허허,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구먼!” 노인은 내 몸을 살피고 쓰다듬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던 돌이……?”, “맞다. 어떠냐? 너희들이 봐도 나와 많이 닮았지 않느냐?”
노인은 활짝 웃으며 내 위에 앉았습니다. ‘아, 이 느낌이야!’ 오래 전에 느꼈던 그 따뜻함이 온몸을 파고들었습니다. 내 몸은 금세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맞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눈빛이다!’ 분명히 눈에 익은 얼굴입니다. 눈매가 그랬고, 입 꼬리에 걸린 웃음이 그랬습니다.
나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돌입니다. 돌이 어떻게 채신없게 뛰고 구르고 춤을 추겠습니까. 그냥 돌로서 속으로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는 소년의 모습을 노인의 얼굴에 살짝 포개며 마당을 꾹 눌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