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이대로가 좋은가? – 이호석 논설위원
필자는 나 자신이 아무리 보수가 아니라고 해도 나이로 보나, 평소 나의 사고(思考)를 관심 있게 봐온 사람은 무조건 보수로 분류할 것이다. 구태여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기도 싫다. 그러한 사고를 가졌지만 무슨 일이든 잘못 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남이야 어떻게 보든 스스로는 진보적 보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 전 치른 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서 3년 전, 현 정권이 들어설 때 그 당의 대표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자기들이 “20년을 집권해야 한다. 보수를 궤멸시켜야 한다.” 는 말을 들을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의 오만함에 섬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리멸렬하는 오늘날의 보수를 보면서 ‘역시 그 사람이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 인 것 같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선거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그 사람의 예언대로 돼가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몹시 언짢은 심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기적이면서도 모래알 같은 보수들의 행위로 얻어진 결과라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면 보수성향의 사람이 그렇게 적지도 않은 것 같고, 이 정권의 실책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이렇게 크게 참패한 것은 보수들이 여러 당으로, 또 무소속으로 산지사방 흩어진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보며, 그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
첫째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이념을 대변해줄 정당을 키우고 사랑할 줄 모른다. 지향하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이념의 결집체라 할 수 있는 튼튼한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정당이 건전하게 발전할 때 그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정당을 만들지 못한다면 전국에 보수 이념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모래알처럼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마다 당을 혁신해야 한다. 대폭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지만, 막상 당에서 그러한 변화를 시도하면 국회의원들은 모두 자기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적 행태를 보여,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물갈이로 분열과 갈등만 키워왔다.
그리고 자기가 물갈이 대상이 되면 예사로 자기가 몸담고 있던 당을 뛰쳐나가 헐뜯고 비난하며 누워서 침 뱉기를 한다. 뛰쳐나갈 명분이 궁할 때는 선당후사니, 백의종군이니 하며 억지로 붙어 있기도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아예 그런 말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 당내 기득권 세력의 이러한 이기적 저항은 결국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인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당이 노쇠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당에 똑똑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지만 모두 이기적인 자가당착에 빠져 진짜 대통령감의 큰 인물로 만들지 못한다. 이번 선거에서 그렇게 참패를 당하고도 아직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겸손과 양보와 화합이란 것을 모른다. 지금도 각자의 목소리만 높이면서 당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절대 큰 인물로 만들어질 수가 없다. 큰 인물은 많은 사람이 믿고 따라줄 때 저절로 만들어진다. 정치 일선에 있는 사람이나 전국에서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만 깊이 생각해도 이렇게 처참하게 궤멸되어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당의 울타리 안에서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입신출세하여 영화(?)를 누린 사람들이 순간의 양보도 하지 못하고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소속된 당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투철한 이념으로 무장된 사람도 아니고, 개념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목적은 오직 자기의 입신출세에만 있다고 봐야 한다. 뚜렷한 이념을 가진 정당인이라면 일시적 서운함이 있더라도 그야말로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우선 양보하고 단합하여 당의 세력을 키워놓고 당 안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는 너무 자유분방함이 몸에 배여 그런지 모르지만, 자기의 주장만 고집하면서 같은 이념의 정당이나 훌륭한 당 대표 등을 예사로 폄하하고 비난한다. 주위에 있는 압승한 여당 지지자들을 보면 중앙당이나 당 대표가 여간 잘못해도 이해하고 양보하고 따라준다. 당이나 당 간부들의 잘못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러한 마음이 결집하여 이번 선거에서 그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의 주관도 없이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보수 이념을 가진 사람들도 자기의 주장을 좀 자제하면서 힘을 모았으면 이번 같은 참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보수가 살아남으려면 시골의 범인(凡人)들부터 최고위 정치일선에 있는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소아적인 자기의 이기적 생각을 버리고 우선 힘 있는 정당이 만들어 지도록 협조하고 노력해야 하며, 대표 인물 만들기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힘 있는 정당이 있어야 보수를 바로 대변해 줄 수 있고, 또 보수의 이념을 지켜 줄 수도 있다.
필자의 이 주장은 결코 어느 지역이나 어떠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번 선거 때 전국에서 너무나 아깝게 떨어진 곳이 많았고, 보수 성향의 정당이 크게 참패한 것을 보면서 아쉽고 서운해서 해 보는 푸념으로 봐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