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노을빛 해거름 – 소민호 동화작가
“올해는 오려나?”
노을빛이 짙은 해거름이면 할머니는 제비집 앞을 떠나지 못한다.
“쯧쯧쯧, 이제 그만 기다릴 때도 됐구먼!”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할머니, 저렇게 작은 곳에 제비가 정말 살았어요?”, “그럼. 새끼까지 키웠는걸.” 제비 이야기를 할 때면 할머니 얼굴이 밝아진다. “제비가 그렇게 좋아요?”, “내가 본 새들 중에 제일 멋진 새여, 네 아빠처럼!” 나는 제비를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봤다. 그리고 아빠처럼 멋지다는 말도 이해가 안 된다.
2년 전,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인 해거름이었다. 아빠가 초라한 모습으로 내 손을 잡고 이 집에 들어섰다. “얘야, 가람이 데리고 우리 함께 살자.”, “여기서 뭘 해먹고 살아요?”, “농사지으면 객지에서 혼자 사는 것 보다 낫지 않겠냐.” 할머니는 아빠 손을 꼭 잡았다. “가람아, 할머니 말씀 잘 듣고 학교 잘 다녀.” 아빠는 결국 할머니 손을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할머니, 제비가 왜 좋아요?”, “네 아빠가 좋아하는 바람에….”
아빠는 어렸을 때 새끼에게 벌레를 잡아 주기도 하고, 늦가을엔 집 청소까지 해줄 만큼 제비를 좋아했다고 한다.
자랑처럼 말하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흠흠, 사람을 왜 그렇게 빤히 봐.”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렸다. “제비가 떠난 어느 초겨울이었지. 할아버지가 지저분하다고 제비집을 뜯어버리는 바람에 네 아빠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겨우 달래긴 했지만 마루에 올라서면 제비집 있던 곳부터 쳐다보곤 했단다.”
할머니는 다행히도 이듬해 봄 제비들이 돌아와서 집을 새로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제비를 좋아하게 됐어요?”, “아니여. 네 아빠가 떠난 뒤여.” 할머니는 아빠가 집을 떠난 뒤부터 제비가 좋아지더라고 했다. “집이 없으면 제비가 돌아와서 얼마나 서운해 하겠냐.”, “그러면 저 제비집이 아빠 어렸을 때 지은 거예요?”, “그럼. 오래된 집이지.”
할머니 눈가엔 노을빛과 함께 추억이 촉촉하게 묻어났다. “농약을 적게 쳐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벌레들이 많아졌구먼.” 할아버지는 먹이가 많아져서 제비들이 꼭 올 거라고 했다. “영감, 들었어요? 윗동네는 퇴직하고 귀촌인가 무슨 촌인가를 한 사람이 많데요.”
“늙어서 촌에 들어오면 뭐해. 젊은 일손이 들어와야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젊은 일손은 아빠일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며칠 전 오랜만에 아빠랑 통화를 한 뒤 제비집을 더 자주 쳐다본다. “올 때가 되면 오겠지!”
할아버지가 잊고 살자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집이 작고 낡았으면 고치고 늘리면 되지. 그리고 먹고 살 게 왜 없어. 몸만 바지런하면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혼자서 구시렁거리지 말고 대놓고 말해요.”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말했다. “속상해서 영영 집에 안 오면 어쩌려고요.” 할머니는 빨개진 눈을 흘기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할아버지 혼자 집에 있었다. “할아버지, 제비는 왜 사람이 사는 집에 집을 지어요?”
“뱀과 뻐꾸기 같은 천적을 피해서 사람들 가까이 산다는구나.” “이제 빈 제비집을 그만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 하지마라. 네 할머니한테는 제비집 지키는 게 낙이고 희망이여!”
할아버지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누구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제비집 밑에 받쳐놓은 똥받침을 막대기로 슬쩍 들어올렸다. 판자로 된 똥받침은 힘없이 들썩거렸다.
“아서라. 네 할머니 보면 벼락 떨어진다.”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내가 들고 있는 막대기를 빼앗았다. 그때 마침 할머니가 사립문을 들어섰다.
“영감, 지금 뭐하는 거요?”, “아, 아무 것도 아니요. 그냥….” 눈을 부릅뜨고 다가오는 할머니를 본 할아버지는 말을 더듬으며 막대기를 마당 구석으로 휙 던져버렸다.
“지금 제비집 밑에서 뭘 했느냐고요?”
할머니가 다가서며 소리쳤다. “가람아, 네가 말 좀해라.” 할아버지는 뒷걸음질을 치며 나를 돌아보았다. “애한테 미루지 말고 당신이 말해 봐요. 뭐했어요?”, “나, 아무 짓도 안 했어요.”
할아버지는 그만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으로 제비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요.” 입술이 하얘진 할머니가 돌아서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도 제비집 가까이에는 가지 마라.”
창백한 할머니 얼굴에 마귀할멈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예.” 내가 뒤로 한 발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 바탕 소동이 있은 뒤로는 제비집만 봐도 오금이 저린다. “올 봄에도 매화는 피는데…휴우!” 할머니가 돌담 옆에 키 작은 매화나무를 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허, 세월 참 빠르다. 벌써 매화가 폈구먼.” 할아버지가 할머니 말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도 안 오려나?”
“쯧쯧쯧, 그렇게 보고 싶으면 전화해서 한 번 다녀가라고 해요.” 할아버지는 마을회관에 간다고 하며 나가버렸다.
“바쁘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기를 꺼내 한참동안 만지작거렸다. 그때였다. “어, 어르신이….” 이장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영감이 왜?” 생각에 잠겨있던 할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마을회관 앞에서 넘어졌어요!” 할머니는 이장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립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뒤 마을회관 앞에는 119 구급차 불빛이 반짝였다. “영감, 어때요?”
할머니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들것에 누워있는 할아버지 다리를 만졌다. “음, 발을 헛디뎌서 그런 거니까 괜찮을 거요.”, “괜찮은데 왜 누워 있어요?”
할머니가 울면서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어, 나여. 아버지가 많이 다치셨다. 어쩌면 좋으냐?” 할머니는 아빠한테 전화해서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매정한 놈!” 전화를 끊은 할머니는 투덜대며 할아버지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나는 그때부터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밥통에 밥 있다. 잘 챙겨먹고….”
나는 할머니 전화를 끊고 집을 둘러보았다. 빈 제비집마냥 썰렁했다. “저 제비집이 문제야.” 나는 막대기를 들고 마루로 다가갔다. 그때 하얘진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으이그, 무서워!”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막대기를 휙 던져버렸다. “집이 왜 이렇게 넓은 거야.” 마당이 운동장만큼 넓어보였다. 방 두 칸도 교실만큼 컸다.
“쳇, 이집이 왜 좁아.” 나도 할머니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가 구급차를 타고 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토요일 일요일은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할머니는 내가 먹을 반찬 때문에 집에 두 번 다녀갔다.
“오늘 할아버지 퇴원하는 날이지!”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을 향해 뛰었다. “어, 벌써 퇴원하셨어요?”, “일찍 집에 오고 싶어서 서둘렀단다.” 다리에 흰 붕대를 감은 할아버지가 마루에 앉아있었다.
그때였다. 까만 새 한 쌍이 푸르르 날아들어 제비집 똥받침에 앉았다. “할머니, 저…제, 제비 아니에요?”
“응, 맞구먼. 제비여 제비!”, “어허, 당신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제비가 드디어 왔구먼!”, “참 멋지다. 가람아, 네가 봐도 멋지지 않냐?” 할머니는 한참동안 제비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볼 때면 아빠가 밉다. 오늘은 더 밉다.
“저녁 먹을 때가 다 됐는데 어디 가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나는 할머니 말을 뒤로 하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넓은 들을 보면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어, 누구…?” 나는 걸음을 멈췄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초라한 차림의 남자가 노을빛을 안고 마을로 들어섰다. 갑자기 몸이 굳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낯설지 않았다. 잽싸게 돌아선 나는 집을 향해 달렸다. “할머니, 할머니!” 나는 목이 터져라 할머니를 부르며 달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눈이 시리도록 달렸다.
노을빛 해거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