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운잡기| 어버이날의 단상 – 권해조 논설위원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 날이다. 어버이날에 손자 손녀들의 이름으로 보낸 노란양란 화분을 받았고, 아들 딸 가족들과 저녁모임을 가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버이날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10년경 미국에서 한 여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작되어, 1914년 28대 윌슨 대통령 때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고, 1955년 8월 둘째 주 일요일로 국회를 통과하여 정식기념일이 되었다. 그 후 1972년 닉슨 대통령 때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날을 정했다가, 다시 1973년 어버이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1973년 3월 30일 각종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 령6615호)에서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버이날 아침 어느 지인으로부터 장문(長文)의 카톡을 받았다. 「어버이날을 맞으면서: 누가 우리들에게 ‘꼰대 세대’라고 하는가?」 지금의 70-80 세대들은 ‘젊은 시절’에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의 ‘캥거루 세대’들을 키워 왔다.
그들은 (1) <호롱불> 세대였다. 전깃불이 없이 호롱불을 켜놓고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2) <뒷간>세대였다. 실내 화장실이 없어 추운 엄동설한에도 마당 한구석에 있는 뒷간에 나가 볼일을 보았다. (3) <우물>세대였다. 상하수도가 없어 대부분 동네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러 항아리에 담아놓고 사용하였다. (4) <가마솥>시대였다.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부엌 한구석에서 목욕을 했다.
(5) <손빨래>세대였다. 세탁기가 없어 추운겨울에도 개울이나 우물가에서 빨래를 했다. (6) <보행, 자전거>세대였다. 자가용은 물론 전철이나,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수단이 없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7) <고무신>시대였다. 구두는 물론 운동화도 없어 한겨울에도 짚신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8) <까까중>세대였다. 이발소에 갈 돈이 없어 까까중머리를 하고 다녔다. (9) <보자기>세대였다.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차고 다녔다. (10) <고무줄>세대였다. 장남감이나 놀이기구가 없어 여자애는 고무줄로 줄넘기를 하고, 사내애는 새총을 만들어 새잡기를 하면서 놀아야만 했다.
(11) <강냉이> 세대였다.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죽이나 강냉이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12) <주경야독>의 세대였다. 대부분이 낮에는 가사일(농사일 돕기, 풀베기, 땔감나무하기, 소먹이기, 동생돌보기 등)을 돕고 밤에 학교숙제를 했다. (13) <주판>세대였다. 전자계산기나 컴퓨터가 없어 주판을 굴리면서 셈을 했고, 급수를 따야 은행이나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 (14) <일제고사>세대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을 치루고 등수를 매겨 평가를 하였다. (15) <입학시험>세대였다. 100%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본고사 입학시험’을 차러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16) <공돌이 공순이>세대였다. 집이 가난하여 진학을 못해 남의 집에 ‘식모살이’나 구로공단 ‘공돌이 공순이’ 또는 ‘버스차장’을 하면서 땀 흘려 일하고 야간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17) <삯 월세>세대였다. 대부분 신혼살림집을 구할 돈이 없어 ‘사글세 단칸방’에서 시작하여 ‘전세’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18) <월남전>세대였다. 나라가 빈곤하여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돈을 벌어 와야만 했다. (19) <광부. 간호사>세대였다. 고졸 이상자들도 5:1의 경쟁을 뚫고 독일에 가서 석탄광부와 시체 닦는 일로 돈을 벌어야 만 했었다. (20) <중동 노동자> 세대였다. 이역만리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에 가서 가족과 자식을 위해 땀을 흘리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한 것 밖에는 없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젊은이들이 우리를 <꼰대>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꼰대’이다.
우리 중에는 지금도 재활용 폐품을 줍고, 자식과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도 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일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난하고 엄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서 열심히 캥거루 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샌드위치세대’들일 뿐이다. 그들이 바로 70-80세대 우리들이 아닌가? 눈물겨운 지난날들이 지금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어렵게 일구어낸 이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 들이다. 그들은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난하고 엄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와 열심히 <캥거루 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샌드위치 세대>일 뿐이다. 그러면서 (1) 아버지의 눈물 (2) 우리 어머니 (3)그리운 어머니 등 3편의 시낭송과 노래를 보내왔다. 이 내용은 대부분 시골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 60-80세대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올해 어버이날은 지금까지 부끄러움 없이 살아온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꼰대로서 자부심을 갖고 지인이 보내준 카톡을 음미하면서 행복하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