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고향산하 동창회에 붙이는 기원

변명규
계남초 제16대 총동창회장

유수와 같은 세월이란 말이 실감나는 세대가 되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세월의 속도도 빨라진다고한다. 세월의 속도가 연령별로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만들어 낸 시간의 속성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제1의 시간, 제2의 시간이 그것이다. 제1의 시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즉 시계와 같이 정확히 1초, 1분, 1시간, 하루는 24시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의 길이는 같은데 그 받아들이는 느낌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1시간 60분이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엄청나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반면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거나, 마음을 울리는 강의를 듣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는 같은 60분이 금방 다 지나가버린다. 이것을 제2의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이 제2의 시간이 더 중요한 것이다.
세월의 속도는 과학문명의 발달도 가속도를 붙여주고 있다. 내가 어릴 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교통수단들이 많이 생겨났고,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변해왔으며 계속 변하고 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배, 심지어 지구를 떠나 우주 속으로 달리는 위성도 생겨났다. 지금은 전국이 하루생활권에 들어갔다. 내가 어릴 때 들은 말에 의하면 내 고향 합천에서 한 달을 걸어야 경성(서울)에 갈 수 있다고 했었는데 이제 당일 서울 가서 볼일 보고 돌아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한나절이라는 시간으로 단축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 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과학이란 존재가 물질적으로 엄청난 변화, 그것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편리하고 풍요롭도록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노인들은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살아가는데 얼마가 지나면 또 다른 변화에 부딪치며 정신을 잃고 살아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살기 좋은 세상이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힘든 일도 많은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고 한다. 추호의 반박도 있을 수 없는 진리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누구나 세월을 붙잡을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영화 ‘인타임’을 보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자신의 손목 위에 기록되어있는데 흐르는 시간만큼 죽음의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생활을 시간으로 충당한다. 예를 들면 커피 한 잔을 사 먹는데 1분, 등산복을 한 벌 사는데 7시간, 멋진 집을 사면 5년 등으로 삶의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사치와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 그만큼 생명은 짧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엄청 많은 시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사서 저축해 둘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곧 재산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실제로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 자본주의 모순점을 비판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순간순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그 순간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보람 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시간은 자신에게 살아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고, 곧 시간을 잡아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곳을 찾아 자신의 체취와 발자취를 되새기며 멋진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는 옛 추억들이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며 나를 젊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추억들은 좋은 것도, 힘든 것들도 있겠지만 추억이라는 그 자체는 모두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서 희망에 부풀었던 젊음의 시간을 되돌려 주는 것이므로 이것 또한 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러한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장소가 고향이고, 모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는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가족들이고, 보고도 금새 또 보고 싶은 죽마고우들이며, 6년간 한 교정에서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았던 학우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고향의 추억이고, 모교의 추억들이 것이다. 따라서 그 곳에 가면 첫째와 둘째의 시간 잡아 두는 존재가 모두 나를 반겨주고 있지 않는가? ‘고향’ 말만 들어도 설레는 이름이건만, 이를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마음일까? 그리고 이 고향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지금의 어린이들은 가족 간의 정과 사랑, 인생의 큰 재산이라는 우정, 스승에 대한 예의, 자연의 위대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 우리 사회가 날로 건조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 모두 고향, 모교, 친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동창회에 열심히 참여하여 잃어버린 마음의 양식을 찾아 뚜벅 뚜벅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