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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2) – 박경호

3.“진보와 빈곤”의 국내 소개 과정
“진보와 빈곤”의 국내 소개 과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소개되는 사람이 대천덕 성공회 신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 책을 번역한 김윤상 교수이다. 대천덕 신부는 헨리 조지의 토지사상을 실천하려고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하여 빈부의 격차가 없는 평등사회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경제정의를 실천하고자 설립한 시민단체인 “성경적 토지 경제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 설립에 기여했다.
김윤상 교수는 진보와 빈곤의 축약본을 1991년에 번역하면서 헨리 조지사상의 대중화에 첫 삽을 들었다. 축약본을 번역한 인연으로 “성토모”에 강연자로서 초대되기도 하였다. 1992년 헨리 조지의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졌다. 이 시간 동안 헨리 조지 사상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여러 단체를 방문하였다. 이때 조지 헨리의 토지사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귀국 후 대구지역 학자들이 중심이 된 “진보와 빈곤” 독서회에 참여하면서 “진보와 빈곤” 완역을 진행시켰다. 1996년에 지금 우리가 구입하는 “진보와 빈곤”의 완역본을 번역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서 헨리 조지를 공부하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헨리의 사상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김윤상 교수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지 싶다.
김윤상 교수는 제가 경북대학교 박사과정을 다닐 때 은사이기도하다. 학기 강의가 끝나면 비싸지 않는 식당에서 종강 파티 겸,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본인이 학생들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밥을 사야한다”고 말씀하사면서 꼭 당신이 밥값을 지불했다. 제자들이 연구실을 방문할 때 반드시 빈손으로 오기를 바랬고, 그리고 그것을 엄격하게 실천했다.

4. “진보와 빈곤”의 정책반영과 헌법보장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의 가열을 막는 수단으로 토지공개념을 검토하면서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이 대중들의 주목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면 마치 개인 토지를 몰수해서 국유화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가 모든 토지를 소유하는 공산주의식 토지 국유화와는 전혀 다르다. 헨리조지가 주창한 것처럼 사유재산으로서 토지는 인정하되, 토지로부터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적절히 세금으로 환수해 빈부격차를 줄임으로서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려는 목적이다. 참고로 헨리 조지는 우파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옹호한 사람이다.
토지공개념은 대중들의 반감을 고려해 개발이익환수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이익환수제는 사실상 토지공개념을 정책에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소유주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가 개인사유지에 대해서 다양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폭넓게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토지의 용도를 구분해 제한함은 물론 그 사용 목적을 국가가 정할 뿐만 아니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밀도등도 건폐율로 정부가 규제한다.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 개발제한구역을 정해 그린벨트로 묶어두어, 개인이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재건축단지의 초과이익 환수제 역시 불로소득을 환수하고자하는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정책이다. 부동산시장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며칠 전에 발표한 다주택자들의 세금에 대한 압박도 토지를 공공의 이익에 맞게 사용하자는 토지공개념의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려는 최종목표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빈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며, 생산성에서 토지보다는 노동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에도 토지공개념을 분명히 담고 있다. 헌법 제23조 2항을 보면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또 헌법 제122조에서도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이미 토지공개념이 헌법에도 충분히 반영돼 있는 것이다. (…)

5. 진보와 빈곤 ( Progress and Poverty)의 주요 내용
우리 모두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
물질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왜 다수 개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더 힘들고 빈곤해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책의 핵심내용이다.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이런 아이러니(irony)한 모순이 땅을 소유한 지주가 지대를 독식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노동 없이 생긴 수입인 지대(땅을 빌려주고 생긴 수입)를 불로소득이라고 보았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방해하는 지대수입(임대수입)은 세금으로 환수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는 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사용하도록 선물한 자연물인 땅을 특정한 사람들이 독점하는 것은 신의섭리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았다. 인간의 노력으로 탄생한 인공물은 사유화해도 되지만, 공기처럼 인간들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자연물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므로 공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중심지에 땅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생산에 직접 기여한 노동자 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챙겨간다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가? 한 줌의 노동 없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공평과 평등에 반한다고 헨리조지는 보았다. 노동의 몫으로 정당하게 돌아가야 할 수익을 지대(땅을 빌려준 댓가)가 중간에 가로채서 가져가기 때문에 노동에 돌아가야 할 이익이 줄어들어 사회적인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한 사람이 노동을 통해서 생산할 수 있는 가치가 한정되어 있으면 지대로 지불하는 댓가가 크면 클수록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야 할 이익은 줄어든다. 그러나 반대로 지대를 불로소득으로 간주하고 환수하면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야 할 이익이 지대로 환수되는 금액만큼 커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좀 더 확대하면 한명의 지주를 위해서 수많은 소작인들이 희생되는 것은 사회적인 불행이라고 보았다.
지대에 지불하는 몫이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는 몫보다 크면 클수록 극도의 사치와 극도의 빈곤이 공존하는 불건전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헨리 조지는 역설했다.
불로소득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부자가 존경받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구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부의 축적과정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납득되고 수긍될 때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된다. 지대로 가로채가는 불로소득에 대한 적절한 환수조치가 이행되지 않으면, 물질문명이 성장하면 할수록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며, 진보와 빈곤의 굴레는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닐 것이다.

6. “진보와 빈곤”에 등장하는 광활한 평원의 비유
인구증가가 부의 분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설명하면서 헨리 조지는 “동일한 조건을 가진 광활한 평원”을 가지고 설명했다.
숲이나 물이나 토지의 비옥도등 모든 환경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넓은 평원에 최초의 이주민이 정착을 한다. 토양은 처녀지로서 풍요롭고 사냥감도 풍부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이 사람은 본인의 노동력 이상의 부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원시적인 수준의 생활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구가 이주해 이웃이 되고 또 다른 가구가 계속해서 이주해 오면서 첫 이주자의 주변에 작은 마을이 형성된다. 이제 노동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몇 배의 효율성을 가진다. 자급자족으로 해결해야만 했던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분업의 모습으로 생겨난다. 구두수선공, 정육업자, 목수, 대장장이, 의사도 생겨나고 그리고 교회와 학교도 세워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맨 처음 이주한 사람은 자신의
토지에서 재배되는 밀이나 감자나 옥수수의 생산성은 예전만 못하지만 본인이 누리는 물자는 옛날보다 훨씬 풍부하다. 다른 이주자의 존재 즉 인구의 증가가 토지에 투입되는 노동의 생산성을 높였고 이러한 생산성의 향상으로 인해 자신의 토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동일한 질의 다른 지역의 토지보다 우수한 토지가 되어 있었다.
이 토지는 농업생산성은 처음보다 못하지만 그보다 높은 종류의 다른 생산성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토지의 용도는 사람이 모이면서 농업생산, 공업생산 그리고 상업생산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토지생산성은 극대화된다. 이를 두고 헨리 조지는 토지에 잠재된 능력이 발현된다고 했다. 처음 이 넓은 평원에 온 이주자는 일을 하지 않고 잠만 잔다고 해도, 처음 이주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이 토지는 최초의 이주자가 정착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동일한 토지이다. 이 사람이 누리는 혜택은 인구증가가 기존에 사용하던 토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지대가 제일 높은 토지는 자연적 비옥도가 높은 토지가 아니라, 인구증가로 인해 생긴 효용이 특히 높은 중심지토지이다. 인구증가는 토지이용의 한계를 농업생산에서 공업생산 상업생산으로 이동시켰고, 이 단계를 거치면서 토지에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발현시키면서 지대를 상승시킨다. 그 결과 총생산에서 자본과 노동에 돌아가는 댓가는 감소된다. (…)

7. 토지의 사유화가 개인의 삶을 힘들게 하는 하나의 사례
우리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서울 종로구 서촌동 궁중족발집 사건을 기억한다. 궁중족발집 사장 김씨는 10년째 그 자리에서 족발집을 운영했다. 그러나 2016년에 강남 건물부자 이씨가 그 건물을 인수하면서 갈등의 시발점이 되었다. 건물주 이씨가 보증금 3천만원을 1억원으로, 월세 297만원을 1,200만원으로 4배를 올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건물주와 임차인사이에 다툼이 생기면서 폭행이 오갔고, 이 사건은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족발집주인은 부당한 임대료 요구에 불복했고, 건물주 이씨는 명도소송을 걸어 승소한 후 12차례 강제 집행 끝에 2018년 6월에 사건이 단락된 경우다. 이 사건은 하나의 예지만 특히 자영업비율이 유독 높은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비슷한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지대수입을 적절하게 세금으로 환수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면 애당초 그런 투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를 낸 용산참사도 재개발로 인한 불로소득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마치면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경계하면서 자발적 빈곤을 원하는 극히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원인들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삶과는 반대로 빈곤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빈부의 차이가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운이 없어서 생긴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가진 자의 우선권 때문에, 힘 있는 사람의 반칙 때문에, 생긴다면 정부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막아야 한다.
생산성이 토지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으로 생겨난다고 사회가 합의하고 정부가 그에 합치한 정책을 운용한다면 반부의 격차로 인해 생기는 고통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생산성이 지대가 아닌 노동에서 나온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 훨씬 우리 사회는 건전하고 역동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