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빠진 남자가 되고 보니 – 정병수 재경합천향우회 부회장
2주 전부터 설사와 복통으로 불편했지만, ‘더위 탓’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상비약인 정로환을 몇 알 먹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속이 편해진다. ‘그러면 그렇지, 큰 일이야 있겠어? 그런데 밥맛이 옛날 같지 않네.’라며 혼자 중얼거렸던 것을 아내가 들은 모양이다.
“여보, 그러지 말고 큰 병원에 가 봐요! 이번에는 위, 장 내시경 검사는 물론 췌장 초음파 검사도 해 보시죠. 당신! 언제까지 청춘이 아니예요.”
“청춘은 아니지만 5년 전에도 또 3년 전에도 종합 검진을 했고, 그 때 의사 선생님은 위(胃)용종 3개 제거한 것 외에는 당뇨·혈압·고지혈 등이 모두 정상이라고 분명히 말했어.”
사실 언제부터인가 큰 병원에 가면 절차도 번거롭고 이런저런 검사도 하게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것 같아, 절차도 간단하고 친절한 동네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혈압도 정상이고, 특별한 것 없습니다. 이제, 쉴 나이입니다. 가능한 웃으며 사세요. 약은 3일치를 처방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병원을 다닌지 2주가 되는데도 몸이 좋아지지 않으니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든다. ‘혹시 암인가? 그건 말도 안 돼!’
결국 아내의 등쌀에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코로나 때문인지 병원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국경을 통과하듯이 삼엄하다. 소화기 내과 명의로부터 장 정결제 등을 처방받아 2주 후에 진료하기로 하고 나왔다. 그런데 3일 후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참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급기야 밤 11시에 응급실로 갔다. 입구 간호사가 열을 체크하더니, 38도 5부란다. 이 상태론 응급실을 들어갈 수가 없다며, ‘코로나 19’가 음성이란 의사의 확인서가 있어야 된다고 단호하다. 119로 연락하니 서울삼성병원에 가 보라는 것이다. 비는 주적주적 내리고, 배는 살살 아픈데도 코로나 병균 성질상 밀폐된 공간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야했다, 검사를 마치니 새벽 4시다.
“결과가 나올려면 5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집에 가 기다리시죠. 결과는 문자로 통보해드리겠습니다.”
집에 도착했으나, 피곤은 한데 긴장 탓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 8시가 되자, “축하합니다. 음성입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핸드폰에 나타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음성’이라고 하니 기분이 업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입원하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갔다. 입원실을 배정받자마자, 예상대로 X레이촬영, CT촬영 등 일련의 검사가 계속된다. 어느 듯 저녁 8시가 되었다. 내일 검사할 위와 장 내시경를 위해 장 정결제를 마실 시간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라며 마시지 지 말라고 한다. 9시가 되어도 10시가 되어도 대답은 한결같다. 그 때서야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 싶은데, 보호자를 찾는 것이 아닌가?
“환자님,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외과의사입니다. 담낭(쓸개)염이 매우 심각하여 보호자가 오시는대로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내과로 입원했다가 졸지에 외과 환자가 된 것이다. 아내가 도착하자, 수술을 위한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새벽 1시가 넘었다. 침대에서 ‘숨을 크게 들어 마시세요.’ 라고 한 말은 기억난다. 그리고 잠시 이 세상과 이별한 것이다. 물론 천당도 지옥도 보지 못했다. 마취에서 깨어나니, 아내의 눈시울이 벌건 것을 느겼다.
“복강경(腹腔鏡)수술로 염증이 심한 쓸개를 제거한 사람이 저입니다. 천만다행입니다. 늦었으면 큰 고생할 뻔 했습니다” 주치의사의 얘기였다.
내가 수술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 철환이는 자뭇 진지하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카톡에 올렸다.
“우리는 주위에서 채신머리없이 나대는 사람을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쓸개 없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 대학 친구 중에서도 더러 있다. 농담이라며 던진 한 마디가 당사자에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나를 배려한 속 깊은 글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쓸개없는 그룹“에 내 이름을 올렸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담담히 받아들릴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이번 수술로 인해 흔히 듣는 ‘명예도 돈도 좋지만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스스로 위안한다면 ‘일병(一病)은 장수하나 무병(無病)은 단명하다.’ 고 하는 말이다.
“친척들이여! 그리고 친구들이여! 쓸개 수술에 걱정해 줘 고맙소. 하지만 슬퍼할 것은 아닐세. 쓸개없는 것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고통스럽다는 담석(膽石)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야! 덤으로 인생관도 재정립할 수도 있는 계기도 되니, 오히려 일석이조(一石二鳥)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