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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서원(紫雲書院)과 화석정 (花石亭) – 권해조 논설위원

며칠 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율곡(栗谷)선생의 성지 자운서원(紫雲書院서)과 임진강강변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을 다녀왔다. 먼저 자운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5-1에 위치하며, 경기도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운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 학자인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광해군 7년(1615년) 지방 유림들에 의해 건립 되었다. 그 후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70년대 국가 지원금과 유림들의 기금조성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경내에는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 강당, 서재와 그와 모친 신사임당(申師任堂)의 112점의 유품을 전시한 율곡기념관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는 경기도 교육청이 새로 건립한 율곡교육연수원이 있고, 동쪽에는 율곡선생과 신사임당 묘소 등 13개의 가족묘가 있어 이곳은 율곡서생의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원 내삼문 밖 우측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77호로 지정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당대 명필 곡운(谷雲) 김수증(金壽曾)이 쓴 자운서원 묘정비(廟庭碑)가, 경내 좌측 산기슭에는 향토유적 제 6호인 율곡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神道碑)와 경기도 기념물 제15호인 율곡선생의 묘가 평범한 묘제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다음은 화석정이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 3리 산100-1에 위치하며, 경기도 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운서원에서 약 8km 떨어진 임진강 강변에 위치한 곳으로 예부터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화석정은 원래 개성 장단을 향했으며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이 굽이 흐르고 날이 맑은 때는 서울 삼각산과 개성 오관산(五冠山)이 보인다고 한다. 이 화석정은 1443년(세종25년) 율곡의 5대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웠으며, 1478년(성종9년) 몽암(夢庵) 이숙감(李淑瑊)이 화석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율곡선생이 어린 시절 학문을 읽히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곳을 중수하여 제자들과 여생을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특히 중국 사신 황홍헌(黃洪憲)도 이곳을 찾아와서 시를 읊고 즐기다 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 갈 때 한 밤중에 이 정자를 불태워 환하게 밝혀 임진강을 건넜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이 화석정은 1673년(현종14년)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자 1966년 파주유림들의 성금과 1973년 정부의 ‘율곡.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 일환으로 중건하고 단청을 하였다.
현재 화석정 정자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화석정(花石亭)이란 편액이 걸려있고, 정자 내부에는 상량문 등 여러 개 현판이 걸려있다. 정자 우측 옆에는 수령 570년이 넘은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고, 정자 좌측 마당에는 2001년 파주 군수가 세운 율곡선생이 8세 때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 ‘화석정시(花石亭詩)’ 팔세부시(八歲賦詩)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시는 가을 풍경을 한가롭게 표현한 시로서 율곡선생의 유년시절 글재주를 엿 볼 수 있다.

화석정 시 (花石亭 詩)

  • 李 珥 (李栗谷) –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하니
    :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이라
    : 시인의 시상(詩想)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이요
    : 멀리 보이는 물줄기는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이라
    :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게 물들었네.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하고
    : 산은 외로운 둥근달을 토해내고(산위로 달이 떠오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이라
    :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하고
    :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 고 ?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이라
    : 울고 가는 소리가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율곡 이이(李珥)는 조선조 중기 유명한 유학자로 명종과 선조때 문신(文臣)이며,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이다.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이다.
율곡선생은 외가인 강릉에서 출생하여,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했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나 8세에 “화석정”시를 썼으며,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생원시에 장원한 이래 아홉 번의 과거에 장원급제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었다, 그는 현실적 문제를 중시하는 실천적인 학풍으로 정치, 경제, 경제, 교육, 국방 등에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여 경세가(經世家)로 큰 업적을 남겼다. 사창(社倉)설치, 대동법(大同法) 실시, 십만양병설 주장 등 사회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선견(先見)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 소학집주개론(小學集注改本) 등이 있다.
근래 파주시는 율곡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공덕을 추앙하고 파주시민의 애향심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매년 가을에 율곡선생의 추향제례(秋享祭禮)를 비롯하여 향토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두문불출 하다가 모처럼 지인들과 함께 옛 성인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