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칼을 찬 선비 남명선생의 외침을 되새기며

이현출
전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

지난 4월 17일 일요일 합천 삼가 용암서원에서 남명선생 추모 춘향례가 있었다. 간밤에 내린 비와 바람으로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림들이 참석하여 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우리 합천 정신의 기저에 흐르는 남명사상과 정신을 어떻게 현대화할 것이며, 연로하신 유림들의 계승세대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 필자는 유교적 법도에 따라 분정관을 정하고, 집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한가지 생각, 남명선생 가르침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이해할 것인가에 빠져들었다.
남명선생의 학문은 담론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유학이었으며, 이러한 학문의 경향은 내암 정인홍 선생을 비롯한 합천의 선비들에게 계승되어 왔다. 그렇다면 남명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한 바탕 태풍이 휘몰아친 4.13 총선을 치른 오늘날의 한국정치에 주는 남명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필자의 눈앞에 남명선생이 명종조에 단성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으며 올린 단성현감사직소(丹城縣監辭職疏, 이하 단성소)와 오늘의 정치현상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삼가 용암서원 앞에는 남명선생 흉상과 단성소비가 제막되어 있다. 단성소는 단성현감에 제수되어 이를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이지만, 단순한 사직상소문이 아니라 당대의 국가적 현실과 정치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국정비판 상소문이 돼버리고 말았다. 남명은 “오장육부가 썩어 뭉크러져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직의 벼슬아치들은 자기들의 당파를 심어 권세를 독차지하려 들기를, 마치 온 연못 속을 용이 독차지하고 있듯이 합니다.”라고 비판하며 인사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그는 왜구가 침입하여 전라도 일대가 함락된 을묘사변을 두고도 인사가 제대로 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한다. “평소 조정에서 뇌물을 받고 사람을 쓰기 때문에 재물은 쌓이지만 민심은 흩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장수 가운데 자격을 갖춘 자가 없고 성에는 수성할 군졸이 없으므로 왜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온 것입니다.”라며 폐부를 찌른다.
눈을 오늘의 정치상황으로 돌려보자. 조선조에는 왕이 인사를 하던 것을 이제는 정당이 공천을 하고 유권자가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선거는 인물충원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4.13 총선에서 국민들은 집권여당의 막장 공천드라마에 준엄한 심판의 칼날을 내들었다. 칼을 찬 선비 남명이 단성소에서 외치는 그 함성으로 말이다. 국가의 장래보다 오직 당파와 계파의 앞날만 생각하는 소인배적 공천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은 현대판 단성소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명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거행한다면 나라는 고루 잘 다스려질 것이고 백성들은 화합하게 될 것이며 나라의 위기도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된다고 간곡히 호소하며 소를 마무리 짓는다. 이같은 강단있는 선비정신이 남명정신이고, 우리 합천의 정신이다. 이처럼 남명은 조선의 다른 지식인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비판과 철저한 절제를 강조한 인물이다. 이런 조식선생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과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이다. 각각 결단과 깨우침을 상징한다고 한다. 남명은 마음을 곧게하는 상징으로 성성자라는 방울을, 행동을 올바르게 하는 상징으로 경의검을 사용한 것이다. 성성자의 소리로 늘 깨어있기를 바랐고, 사심이 생기면 베어버리고자 하는 뜻에서 경의검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이 판치는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스스로 내면과 외면을 통제하는 성성자와 경의검을 채워주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지난 70년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현재의 번영을 후손들에게 안정적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문제는 국가의 중심에서 난국을 헤쳐 나가고 최고위 의사결정을 해야할 정치권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파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대의와 국가, 백성을 위해서 시시비비를 가린 남명정신, 선비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남명과 같은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설사 나라가 그릇된 길을 가더라도 곧바로 잡을 수 있었다. 정치가 선비정신을 잃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를 따질 때 나라가 어떻게 될지는 선비정신이 사라진 조선말 망국의 길을 걸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