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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서원에서 서원을 배우다 – 정병수 공인회계사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는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곡부출신으로 유교의 시조(始祖)이자 정치가요 사상가이시며 교육자였다. 오늘날 산동성 태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후 약 200년 후에 맹자(孟子,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가 태어나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맹자의 고향도 공자의 고향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맹자하면 떠오르는 것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이다. 어머니가 맹자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것인데, 최종적으로 서당이 있는 곳으로 집을 옮기니, 그제서야 맹자는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 옆에 사는 사람 모두가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닌데도, 교육은 환경의 영향이 큼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내가 결혼 후 13번째로 이사하여 거주하는 곳이 용인시 상현동이다. 아파트 지근거리에 심곡서원(深谷書院)이 있다. 심곡서원은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년)와 그의 제자 양팽손을 모시는 곳이다. 서원 옆에 살다보니 아침 조깅이나 산책 때 자연스레 가 보기도 하고, 간혹 우리 아파트 근처에 친구라도 오게되면 그곳으로 유도하다보니 어느 새 심곡서원과 친밀해졌다.
2015년에는 경기도 문화재에서 국가문화재로 격상되었고, ‘깊은 골’이라는 뜻의 심곡(深谷)이 주는 이름도 편안하게 들린다. 물론 계곡과는 거리가 있는 아파트 속의조용한 서원이다. 서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너저분했는데, 최근 국가문화재에 걸맞게 건물도 신축하고 보수도 해서인지 제법 문화재다운 냄새가 풍겨난다. 거기에다 수령 50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서원 전체를 감싸고, 2~3백년은 됨직한 동생 느티나무도 서원 뒤를 여러 그루가 받쳐주고 있어 자못 고색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간이 날 때 책 한 권 들고 느티나무 밑이나, 장방형의 연못가에 앉아 독서를 한다면 운치도 맛볼 수 있다.
지난 봄이었나 보다. 날씨가 좋아 방문을 열고 발길 닿는데가 심곡서원이었다. 무료여서인지 주차장엔 승용차가 제법 주차되어 있었으나 인적은 보이지 않고 숲속으로부터 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외삼문(外三門)을 거치면 강당이라는 현판이 보이고, 그 강당 안에는 또 다른 여러 현판이 눈에 뛴다. 필체에 힘이 보인다. 안내해 주는 전문가가 있다면 한 두가지 물어보고 싶은데, 예약하지 않았기에 곤란하다는 말이 못내 아쉽다며 기웃거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인적이 들여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가 초등학교 3학년인 듯한 여아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얘기하며 사당 안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조용한 서원에 낭낭한 여아의 소리가 퍼진다. “할머니, 아까부터 서원, 서원 하는데, 서원은 뭣이고 서당은 뭐예요?” 어린 아이의 발음이 또박또박하여 듣지 않으려해도 들여온다.
“그건 말이야. 같은 뜻이야. 공부하는 집이라는 뜻이지. 너도 텔레비전에서 봤지? 영화를 보면 훈장 앞에서 댕기머리한 소년들이 하늘 천(天), 따 지(地) ……하며 천자문을 배우던 옛날 학교야.” “그런데 여기가 상현동인데 왜 심곡서원이라고 불러요?” “너를 ’경희’라고 부르는 것은 네 할아버지가 정하였듯이, 이 서원을 지을 때 고을 사또같은 높은 분들이 정했을거야!”
할머니는 손녀의 질문에 당황스러운지 대충 얼무버리고 만다. 찜찜한 표정이다. 나를 보자, 사진을 부탁한다. 나는 인물 배경을 달리하며 몇 장 찍었다고 하니, 손녀는 사진을 보고 싶다며 핸드폰을 열어본다.
“할머니! 사진 잘 나왔어요! 할머니 웃는 모습도 좋고요!”
“신사 양반! 고맙습니다. 경희야 너도 인사 드려라.”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이고, 뭘요?”
나는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갈 곳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서원을 찾은 그 자체가 퍽이나 인상 깊게 보였다.
”저는 이 근방에 살기에 종종 이 곳에 옵니다만, 할머니는 이 근방에 안 사시나 봐요?“
”예, 딸네 집에 왔다가 서원이 있다기에 왔습니다. 사실 서원이 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설명을 조금 해도 될까요?“
”좋지요. 경희야 저 선생님이 이 곳에 대하여 설명해준다니 잘 들어봐.“
그렇게 해서 나는 서원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서원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조선시대 때 학교를 보면 서당(書堂)은 오늘 날 사립 초등학교에 해당되고, 그리고 겉 모습은 서원과 비슷하지만 오늘날 공립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교(鄕校)가 각 고을에 있다. 그러면 여기 심곡서원 같은 서원은 사립대학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조선 시대의 국립대학은 서울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成均館)이랍니다. 당시 서원에서 배우는 주된 공부 내용은 중국 송나라 주희가 공자의 유학에다 범위를 넓힌 성리학(性理學)이라고 해요. 특히 이이, 이퇴계 같은 훌륭한 분이 성리학을 중국보다 더 심오하게 발전시켰다고 해요. 아쉬운 점은 그 연구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또 주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랍니다. 경희 학생에겐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 자!
그러면 이번에는 서원의 건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서원은 건물이 아무렇게 배치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정형화된 틀이 있지요. 심곡서원의 건물 배치도 조선시대 모든 서원과 비슷해요. 먼저 앞의 큰 건물은 보통 명륜당이라고 부르는데, 이 서원은 특이하게 ‘강당’이라고 되어있네요. 강당의 기능은 교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강당 앞 왼쪽과 오른쪽에는 언제나 쌍둥이 건물이 있는데, 이곳을 동재, 서재라 해요. 최대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이지요. 한편 강당 건물 뒤를 보면 처음 들어올 때의 입구처럼 좁은 문이 서 있는데 이 문의 통로가 3곳이고 안쪽에 있다 하여 내삼문(內三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처음 들어올 때의 문은 외삼문(外三門)이라고 하지요. 문 안 쪽에는 이 서원과 가장 인연이 크고 성리학적으로 큰 인물을 모시고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당입니다. 그래서 통상 문을 잠가두지요.
참! 서원을 사립대학이라 했는데, 임금으로부터 공인을 받느냐 못 받느냐입니다. 왕(王)으로부터 공인을 받으면 서원의 이름을 현판으로 하사받는데 우리는 그런 서원을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고 해요. 사액서원이 되면 부수적으로 전답과 하인은 물론이고,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주기적으로 받습니다. 인쇄술이 발전되지 않았던 옛 시절을 고려하면 책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권리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하사받은 책을 오늘날 도서관에 비교되는 별도의 장서각에 보관해 두었다가 학생 각자가 필사(筆寫)하여 공부했답니다.
심곡서원은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지요. 최근 이곳 사당과 교실인 강당을 보수할 때에 상량문(上樑文)과 강당기(講堂記), 그리고 숙종대왕 어제(御製)가 발견되어 심곡서원의 역사와 내력을 더 잘 알 수가 있게 되었다네요. 서원 앞쪽 응봉산에 ‘조광조 묘 및 신도비’가 있어 심곡서원은 물론이고 조광조를 재평가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시간이 되면 건너편 조광조 묘소도 둘러보시면 좋을 듯합니다만…..강력히 추천합니다.”
어느새 시간이 되어 일어서려고 하는데,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드문 꿩 한 마리가 서원 뒤 숲속에서 푸득득하며 건너편 정암 수목공원으로 힘차게 날고 있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