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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마력(魔力) – 이호석 논설위원

글 읽기와 쓰기에는 마력(魔力)이 있다. 누구나 좋은 글을 읽으면 감동하게 되고, 한 번쯤은 이런 글을 써보고 싶어 한다. 나도 이 마력에 끌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지금도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다.
글쓰기는 뇌를 활발하게 하고 정신을 집중하게 한다. 특히 생산 일선에서 물러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건강관리와 함께하면 이보다 좋은 명약이 없을 것 같다. 노령의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또 글쓰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아무 부담없이 취미생활이나 건전한 여가선용거리로도 좋다.
청소년 시절 한 번쯤은 문학소녀, 소년이 되어 서툰 글씨로 시나 산문을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시인이나 작가를 꿈꾸어 보는 사람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바쁜 사회생활에 쫓기다 보면 자연히 글쓰기와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 글쓰기에 대한 작은 미련과 좋은 글을 써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 대다수는 자기의 체험이나 자연과 일상에서 보고 듣는 일 등을 소재로 하는 수필형식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러한 생각으로 공직을 퇴직하고 몇 년 후 65세의 늦은 나이에 글(수필)쓰기와 인연을 맺었다. 내 인생을 반추하며 토막 얘기들을 들춰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자전적 수필 쓰기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역에서 이런 공부를 할 곳이 없었다. 2011년 3월 절친한 친구 한 사람과 ‘대구수필문예대학’에 등록하고 그해 7월까지 20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두 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오후 다섯 시 버스를 타고 대구로 나가 서부정류장 부근에서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지하철을 타고 공부하는 곳으로 간다.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서둘러 갈 때의 역순으로 서부정류장에 도착하면 합천 행 밤 열 시 마지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오르면 종일 바쁘게 일 한 버스와 운전기사, 손님들 모두가 지쳐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친구와 나는 그날 공부한 얘기를 하면서 마냥 즐겁기만 했다. 시내를 벗어나 달리는 버스는 왕방울 같은 두 눈으로 불빛을 쏘며 칠흑 같은 밤길을 잘도 달렸다. 커브 길을 돌 때마다 레이저쇼를 하듯 불빛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흔들린다. 매주 다니는 길이지만 짙은 어둠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산속을 지나고 교량도 건너고 들판 지나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며 달린다.
차창 밖을 내다본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고, 시커먼 산들의 형체가 큰 짐승들처럼 스멀스멀 비켜간다. 모두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 같았다. 합천에 도착하면 11시가 조금 넘었고 집에 들어와 씻고 서성이다 보면 자정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당시 나는 대한노인회합천군지회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같이 다니는 친구는 농사일을 했다. 나는 이 친구의 열정에 너무나 감복했다. 아무리 바쁜 농사철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일꾼들과 모내기를 하다가도 중단하고 다녔다. 친구와 나는 교육 기간 내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아 수료식에서 특별히 소개되어 문우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삼 년 전부터 매년 합천군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교실에서 수필 쓰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그래도 항상 새로운 내용을 듣는 것 같고 순간이나마 공감하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즐겁게 다니고 있다.
강의는 경남대학교 백남오 교수님이 하신다. 이분은 우리나라 현대 수필의 거장으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필〈겨울밤 세석에서〉가 실린 분이시다. 백 교수님이 합천에서 강의하게 된 것은 합천과 태생적 인연 덕분이다. 이분이 태어나 청년기까지 산 곳은 이웃 의령군 부림면 권혜리이다. 이곳은 당초 합천군 적중면 산하의 마을이었는데, 1983년 행정구역 조정 시 의령군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소싯적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한 합천을 잊지 못해 한동안 본적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이 바탕이 되어 창원에서 합천까지 매주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신다. 그 결과 올해 합천 글쓰기 교실에서 〈문학세계〉에 시인이, 〈에세이스트〉에서 수필가로 두 사람이 등단하였고, 지금도 상당수의 문우들이 등단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 공부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선뜻 참여하지 않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는 글쓰기를 이유 없이 두려워하며 소질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평소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과신하여 글쓰기 공부가 필요치 않다는 자만심 때문인 것 같다. 두 가지 이유가 모두 타당한 것 같지만 글쓰기 공부에 참여해 보면 둘 다 잘못된 생각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글쓰기 기초 이론부터 가르치는 강의를 들으면서 얼마간의 수련기를 지나면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 글쓰기 공부에 참여하고 있는 문우 중에는 처음에는 소질이 없다며 참여를 완강히 거절하다가 친구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참여한 사람이 지금은 글쓰기 강의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지역에서 《합천의 향기》라는 향토색 짙은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이 책에 투고한 분들은 재향 합천군민과 재외 향우들 중 문인, 정치인, 기업인, 교육자, 군 장성 출신 등 각계각층의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나는 편집을 맡아 이분들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것을 느낀 게 있다. 훌륭한 경륜과 높은 학식을 가진 분의 글로 내용도 아주 좋았지만, 전체가 조금 산만하게 쓰여 있어 아쉬움을 가진 적이 있다. 이런 분은 글쓰기 기초를 너무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 공부에 소질이 없다면 완강히 참여를 거부하던 사람이 교육을 받으면서 글쓰기 삼매경에 빠진 경우나, 학식 높은 훌륭한 분의 글이 산만하게 쓰인 것 등은 글쓰기 기초 교육이 쉬우면서도 글 쓰는 사람이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임을 말해 준다. 누구라도 글쓰기 공부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곧 그 마력에 빠져들게 되고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지역에서 이런 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다행이다. 타 시군에 앞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합천군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열정적인 강의를 해 주시는 백남오 교수님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