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곧 행복이다 – 변명규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
세인을 감동시키고 간 한 편의 소설 같은 주인공. 그는 사고무친에 공부라고는 근방에도 가지 못했고, 결혼도 못해 가정이 없는 독신이었다. 그런 그가 54살의 나이로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중화요리집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며 한 달에 70만 원 받는 것이 전부였다. 재산이 없어 쪽방에서 혼자 잠만 잤다. 그의 삶은 언제나 차디찬 겨울이었다. 봄의 따뜻함, 여름의 싱그러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그에게는 사치였고,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다.
그의 이름 김 우수. 2015년 9월 23일 중화요리를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하여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당시 이 명박 대통령과 김 윤옥 여사가 조문을 갔다. 나경원 등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것일까? 그는 그렇게 살면서도 매월 5만 원-10만 원을 어린이 재단을 통하여 소년 소녀 가장을 도왔다. 2006년부터 계속되었다. 보험도 4천만 원짜리 들었는데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도록 한 것이다.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 최불암이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하였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애도하는 편지가 쌓였다.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하여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 살아가겠습니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영정 앞에서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도록 합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고인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죽은 후 어린이 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다.
댓글은 이런 것들이었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차디찬 겨울이었지만 웅크리고 앉아 있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의 장작불을 배달했다. 자신이 사고무친의 천애고아(天涯孤兒) 이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했던 것이다. 그는 곧 그 인생의 겨울에 남몰래 씨앗을 심었놓았다. 그 씨앗은 주인이 가고 없는 세상에서 싹을 틔워 봄을 보았고, 여름을 즐겼고, 가을을 거닐었다. 슬프게 떠나버린 그의 삶에 비하면 우리들은 너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 행복을 모르고 불평을 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 나쁜 씨앗을 심고 탁한 물을 뿌려서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들이 있어 안타깝다. 그런 사람들에게 겨울에 씨았을 뿌리는 이러한 사례를 가슴에 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칸나 할아버지
배려는 그 자신에게 행복을 선물한다. 1990년대 중반 영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
“현재 영국에서 살고있는 사람 중에 장래에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장 많은 학생이 되고 싶어 한 사람은 예상 밖에 ‘칸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켐브리지시의 늙은 청소부였다고 한다. 그는 청소부 가운데서도 굴뚝 청소부요, 처자식도 없이 혼자 살며, 신발까지 꿰매 신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청소를 하지 않을 때 시간적 여유가 많아 유일한 취미로 칸나를 길렀다. 자기가 세 얻어 사는 집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어 시장을 찾아가 길가 화단과 공원에 칸나를 심게 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고 허가를 얻어 칸나를 심기 시작했다. 말똥, 쇠똥 등 각종 거름을 준비하고 칸나 씨를 준비하는 등 여가 시간을 고스란히 투입했다. 시가지와 공원은 나날이 바뀌어 갔다. 그는 여러 가지 거름의 배합으로 꽃의 빛깔을 변화시키기도 했는데 예상했던 빛깔이 나오면 너무 좋아 혼자 벽을 치며 울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칸나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꽃을 팔아서 번 수입으로 양로원과 고아원에 찾아가 도와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평생 혼자 살았고, 먹고, 자고, 입는 것 모두 돈을 아끼기 위해 새것을 사용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편안한 생활을 원치 않았고, 하는 일도 어렵고, 힘들고,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을 위해 꽃의 거리와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자기는 힘들게 살았지만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기에 항상 행복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재산도 명예도 사치품일 뿐이었다. 아니 그런 것들이 어떤 개인의 소유에 그치고 만다면 한낱 걸레 조각만큼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가장 적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절약한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베풀었다. 그는 배려와 베푸는 자체가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행복을 스스로 찾았으며 그 행복 속에 묻혀 살았던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과 실천이 곧 행복의 씨앗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행복을 멀리서 그리고 큰 것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가까운 곳, 작은 것에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찾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