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곧 행복이다 (2) – 변명규
3천 원이 가져다 준 행복
그날따라 대형할인점에는 손님이 무척 많았다. 나는 제수품과 남편 등산화, 아들이 그토록 조르던 인라인스케이트를 샀다. 계산대로 갔다. 거기도 붐볐다. 지루하게 기다리는데 내 앞에 여섯 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옷은 초라했지만 총명하고 착해 보였다. 꽃병을 들고 있었다. 차례가 되자 계산대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계산원이 “6천 8백 원이다.” 아이가 “4천 원이라고 써 있었는데.” “네가 가격표를 잘 못 보았구나. 위쪽에 있는 가격표를 봐야 하는데 아래쪽을 보았구나.” “4천 원밖에 없는데…….”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불평을 쏟아냈다. 계산원이 “어떻게 할 거니?” 아이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3천 원을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아이를 아세요?” “아니요, 그냥 해 주세요.” 아이는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아이는 거스름돈 2백 원을 내밀었다. “그건 놔둬라.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가셨니?” “어머니는 지난 여름에 돌아가셨어요.”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지난번에 엄마 산소에 갔는데 엄마 산소에만 꽃병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 ” “그럼 아빠는?” “아빠는 병원에 계세요. 집에는 할머니밖에 안 계세요.” 보물처럼 꽃병을 가슴에 꼭 안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날 밤 늦은 시간까지 기도했다. 그 아이가 더이상 아픔 없이 자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그날 단돈 3천 원으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샀다.
돈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한 존재인 것 같다. 꼭 필요한 곳에는 없고 있는 곳에 몰려다니는 것 같다. 잘사는 집에는 돈 1백만 원 아니 1천만 원도 예사롭게 쓴다. 하지만 어려운 집에서는 단돈 1만 원이 아쉬워 아이들이 배를 곯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자주 접할 때 이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어린이들.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가 있어도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는 아이들. 그들은 아직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그 사랑이 절실하여 부모를 그리워하고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아이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다. 못 받은 사랑이기에 만날 수 없지만 그 사랑을 못 잊어 자나 깨나 그리워하는 것이 어린이의 사랑법이 아닐까?
엄마의 베개
엄마의 베개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셨다. 부모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물건을 하나씩 그려오기였다. 다음날 발표 시간. 첫 번째 아이. “이건 우리 엄마가 부는 플루트인데요, 엄마는 이게 가장 소중하대요.” 또 다른 아이 “저희 아버지가 손도 못 대게 하는 비싼 도자기 입니다.” 카메라를 그려온 아이, 승용차를 그려온 아이……. 이들의 그림 속에는 정말 비싸고 귀해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발표할 아이가 도화지를 펼쳐 보이자. 아이들이 깔깔대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 아이의 도화지에는 쭈글쭈글한 베개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발표했다. “이건 우리 엄마가 베고 주무시던 베개예요.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셔서 더이상 베개를 벨 수 없어요. 아빠는 이 베개만은 절대 버리지 않으셨어요.” 아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순간 반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해 졌다. 선생님은 살며시 옆으로 다가가 아이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정말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물건이구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반 아이들 모두가 아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말없이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던 아이는 그림 속 베개를 꼬옥 감싸 안았다. 엄마가 생전에 아이를 꼬옥 껴안아 주었듯이, 그렇게 꼬옥……. <옮겨 온 글>
그렇습니다. 그 어린이가 떠나간 어머니를 잊지 못하듯이 아버지 또한 아내를 잊지 못해 밤마다 옆에서 아내가 베고 자던 그 베개가 아내의 형상이 되어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베개만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아버지의 슬픈 사랑인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가장 아끼면 그것이 가장 귀한 보물인 것이다. 꼭 무슨 보석처럼 비싼 물건만이 귀한 것만은 아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에게 만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물건보다 귀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고르지 못한 일들이 참으로 많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람들 간의 차이가 심하다. 흔히들 부르짖는 빈부의 격차라는 것이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고 복지가 잘 된 나라에서도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조그마한 도움도 크게 감동을 받는다. 아니 조그마한 도움이 그들의 삶과 죽음을 갈라 놓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 이웃에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시들어가는 채소 몇 줌을 놓고 오가는 사람을 애타게 바라보는 노점상 할머니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베풀고 얼마나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봤는가?
어느 표류자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났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이 “양식이 있고, 마실 물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무엇을 욕심내겠는가?”
우리 주위에 관심을 가지면 보물이 참으로 많다. 다만 그 보물을 보물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눈과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공기가 없으면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큰 보물인가. 하지만 우리는 그 보물을 예사로 취급하고 있지 않는가? 하루에 한 가지라도 공짜이면서 값진 보물을 생각하자. 그리고 그 보물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우리를 살아가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오래오래 동행하면서 행복을 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