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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운잡기| 역사마을 하회(河回)와 양동(良洞) – 권해조 논설위원

작년 가을에 경상북도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다녀왔다. 두 마을은 14-15세기에 조성된 대표적인 한국의 역사적 씨족마을이며, 2010년 7월31일 브라질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두 마을은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양반문화가 꽃핀 영남지역에 서로 9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고 두 마을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마을 입지인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하천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유교 예법에 맞는 가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마을은 경북 봉화읍 유곡(酉谷: 닭실), 안동 내압마을과 함께 영남의 4대 길지(吉地)로 꼽히고 있다.
먼저 하회(河回)마을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다. 하회마을이란 이름은 마을 주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돌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마을의 동쪽에는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주산(主山)인 화산(花山:335m)이 있고, 마을 중심부에는 수령(樹齡)이 600여년인 느티나무가 있다. 하회마을은 고려시대 말에 허씨(許氏), 안씨(安氏), 그리고 류씨(柳氏) 성의 세 씨족이 살았다. 16세기 말에 류씨 가문은 유학자인 겸암 (謙唵) 류운룡(柳雲龍)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류성용(柳成龍) 형제를 배출했다. 17세기 말에는 허씨와 안씨 일가가 마을을 떠나면서 류씨 단독의 씨족 마을이 되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마을 중심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으며,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집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회마을에는 ‘하회탈’로 유명하고, 서민들의 놀이였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하회마을 동쪽 4km지점에는 병산성원(屛山書院)이 있고, 우리나라 전통 생활문화와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비교적 잘 보존 되어있다.
다음은 양동(良洞)마을이다. 이 마을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다. 경주시 북쪽 설창산(163m)에 둘러싸여 500여 년의 세월을 지나온 고색창연한 기와집들 54호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초가집 100여 호로 이루어져 있다. 양동마을은 여강 이씨(驪江李氏)와 경주 손씨(慶州孫氏)의 혼인으로 양가가 함께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로 성장했다. 조선초기에는 남자가 처가를 따라가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연유로 양동마을은 ‘외손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조선 중종때 성리학자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등 명공과 석학 등을 배출했다. 이 마을에서는 경주손씨 종택인 서백당(書百堂)과 여강이씨 종택인 무첨당(無忝堂)을 중심으로 낮은 토담 길을 거닐면서 역사의 향기를 맛볼 수 있다. 영화 ‘취화선’과 ‘내 마음의 풍금’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양동마을에서 4km에 떨어진 곳에는 손중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동강서원(東江書院)이 있고, 8km 되는 곳에는 이언적의 덕행을 기리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이 있다.
이렇듯 하회, 양동 두 마을에는 씨족마을의 대표적인 요소인 종가와 양반들이 살았던 크고 튼튼한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유교 서원과 서당 등이 남아 있다. 두 마을 모두가 풍광이 뛰어나며, 정자와 휴식처에서 보이는 마을 주변의 산과 나무, 강의 경치는 17-18세기 시인들이 시를 읊었을 만큼 아름답다. 두 마을의 전통가옥들과 마을의 입지 및 배치가 이루는 조화는 조선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으며, 한국인의 고향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마을이다.
하회마을은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에 이어, 작년 5월 14일에 둘째아들 앤드루 왕자도 방문하였으며, 양동마을은 1992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방문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오래간만에 두 역사마을을 찾아 잊혀져가는 우리전통문화와 한국의 정취를 맘껏 느끼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