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곧 행복이다 (5) – “도둑의 지게를 밀어준 혜월(慧月) 노스님” – 변명규
달빛이 희미한 그런 밤/ 노스님은 진작부터/ 곳간 문 열리는 소리/ 쌀 퍼 담는 소리/ 부스럭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비쩍 마른 한 사내가/ 아마 허기진 탓일 것입니다./ 쌀 한 부대를 가지고 비비적댈 뿐/ 지게 발을 땅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발소리도 없이/ 가만히 뒤로 돌아간 노스님은 쌀 지게를 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는 사내에게/ 빨리 가라는 손짓만 하였습니다.
(제목 : 겨울밤. 글쓴이 : 효림스님)
위의 시는 70년대 효림스님이 전남 나주에 있는 ‘다보사’라는 절에서 수행할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시로 읊은 것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1862년에 태어나 1937년에 열반한 혜월스님입니다. 12살에 출가하여 불교에 정진, 경허스님의 제자가 되어 당대 최고의 승으로 인정받았다. 선종을 대표하는 종정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노스님께서 절의 뒷간을 짓기 위해 7년 동안 모은 돈을 도둑이 가져가려고 할 때 안 된다고 가로막았다. 이쯤 되면 서로가 난감한 것이다. 도둑도 궁지에 몰리면 강도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스님이 제안을 했다. “만일 빌려 달라면 빌려줄 수는 있지.” 어찌할 바를 모르든 차에 도둑은 승낙하고 가져갔다. 그런데 실제로 몇 년 후에 그 도둑은 자신과 그때의 사정을 밝히고 용서를 빌면서 돈을 가져와 갚았다고 한다.
혜월 스님이 부산 금정산 선암사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한 신도가 제법 많은 돈을 내놓으면서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49재를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혜월 스님의 상좌는 이 뭉칫돈을 혜월 스님에게 맡겨놓고 하루 전날 대중들을 데리고 시장을 보기 위해 시내로 내려가면서 혜월 스님께 말씀드렸다. “스님, 내일 아침 공양 드시고, 그 돈 가지고 시장으로 오십시오. 장은 제가 먼저 봐놓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약속한대로 돈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한참 시장을 향해 길을 가다가 보니, 양쪽다리가 잘린 불쌍한 걸인이 길거리에 앉은 채 구걸을 하고 있었다.
혜월 스님은 그 걸인을 본 순간, 주머니에 있던 돈을 통째로 꺼내 그 걸인에게 다 주어버렸다. 49재 재사 지낼 물건을 흥정해서 챙겨둔 채 스님이 돈 가지고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좌가 반갑게 맞이하며 손을 내밀었다.
“값을 치르게 돈을 주시지요.” “재수는 필요 없다. 도로 물려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님?” “내 오는 길에 49재 이미 잘 지내고 왔다. 물건을 돌려주고 그만 돌아가자.” 혜월 스님의 은사 경허선사가 천장암에서 49재 음식을 제사지내기도 전에 동네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제사 잘 마쳤다고 한 일이 있거니와, 그 스승에 그 제자답게 혜월 또한 그러하였다.
49재는 간단히 말해 고인의 명복을 빌고 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수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 지내본들 누가 와서 먹고 갈 것인가? 돌아가신 조상일까? 아니면 조상을 좋은 곳으로 보낼 저승의 판관을 맡은 귀신일까? 그런데 과연 돌아가신 분의 귀신이 있다면 그도 음식을 차려 놓은 것보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는 않을까?
혜월 스님은 개간선사로 불릴 만큼 논을 만들고 밭 일구는 일을 좋아했다. 양산 내원사에 계실 때, 스님은 느닷없이 어느 사람의 꼬임대로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싼 값에 팔았다. 그리고 그 논 판돈으로 산으로 올라가서 계곡에 다랑이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잡목을 베어내고,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둑을 쌓아 천수답을 개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품삯을 받고 천수답 개간 작업에 나선 일꾼들이 일하기 싫어지자 꾀를 내어 혜월 스님께 “법문 한자리 해주이소”졸라댔다. 스님이 이 청을 물리치지 않고 법문을 해주시면 그럭저럭 또 하루해가 저물었다. 이렇게 쉬며 놀며 개간 작업을 하다 보니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 판 돈이 품삯으로 다 들어갔는데도 산골짜기 천수답은 겨우 세마지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스님은 논 세마지기 개간한 것을 매우 흡족히 여기시고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 새 논을 내려다보시며 즐거워하셨다. 옆에서 보다 못해 제자가 “스님,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 팔아서, 산비탈에 자갈논 만들었으니 이건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닌데 그게 뭐 그리 좋다고 즐거워 하십니까요?” “이놈아,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지, 논 판 돈은 조선 사람들이 품삯으로 받아 그 동안 잘 먹고 잘살았지, 산비탈에 없던 논 세마지기가 새로 생겼으니, 이거야말로 이윤을 보아도 크게 본건데 그게 어찌 손해라고 그러느냐?” “아니, 스님. 그게 손해가 아니라 이득을 보셨단 말씀이십니까요?” “인석아, 너는 어찌 중이 되어가지고도 계산법이 그 모양이냐? 나는 이득을 보아도 아주 크게 보았느니라.”
천하의 도인, 혜월 선사의 그 엄청난 큰 눈에 어찌 나의 것, 남의 것을 가름하는 소유권 등기의 개념이 가당키나 했을 것인가. 깨달은 눈으로 보면 천하가 다 내 것이요, 천하가 다 남의 것이거늘, 여기에 감히 어찌 다섯 마지기, 세 마지기의 크고 작음이 자리할 것인가. 속물의 계산법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라.
너와 나만이 아닌 우리라는 개념으로 보고, 한 사람이나 어떠한 가정만을 보지 않고 사회, 국가라는 개념으로 보면 계산이 달라지는 것이 확실하다. 옥답 다섯 마지기가 어디로 가고 없어진 것이 아니고 마을의 농부들이 소유했고, 그들은 스님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 수확을 많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없었던 세 마지기가 생겼으니 누구 소유를 떠나서 국가적으로 큰 이득임에 틀림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혜월스님만큼은 넓고 깊은 배려는 못할망정 살아가면서 작은 배려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