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예술의 르네상스, 그 주역을 만나다 (2) – 인두화가 하진균
“인생 후반전을 향해”
인두화가 하진균을 아는 사람들은 먼저 ‘합천읍장’으로 안다. 그는 2014년 6월, 4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여가시간을 메울 소일거리를 찾던 중 공직생활에서 취미로 해오던 난, 분재 등에 이어 서각과 문인화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뒤이어 비슷한 유형의 ‘인두화’까지 시작하게 되었다. 퇴직 후 인생 후반전, 백수생활에 연착륙하기 위한 즐길 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한다.
그의 퇴직 후 6년간의 예술 활동들을 살펴보면 한국작가대전 초대작가, 울산 전국서예문인화 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3회, 남도서예문인화대전 최우수상, 재천미술대상전 우수상, 팔만대장경전국예술대전 집행위원 등이 있으며, 현재는 합천문화원의 문화학교 인두화반에서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Q. 인두화의 좋은 점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인두화는 영어로 태운다는 의미의 버닝(burning)이라고 한다. 전기인두 즉 달구어진 버닝펜으로 나무를 태워서 그림이나 글씨를 완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작과 동시에 바로 진정한 행복의 경지라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 왕조시대부터 서각이나 인두화가 존재해왔으나, 시(詩), 서(書), 화(畵)는 양반계급의 필수 교양과목이어서 서예나 문인화로 계승 발전할 수 있었지만, 서각과 인두화 등은 기능인으로서 중인계급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에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Q. 인두화를 하시는데 가족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흡족해하며 열렬히 응원해 주고 있다. 나에게 맞는 ‘즐길 거리’ 중 하나인 인두화에 심취할 수 있어 좋을 뿐만 아니라 황강변 정양에 집을 지어면서 별도 공간을 마련했는데, 그 공간을 내가 태어난 쌍백면 고향마을인 향묵(香墨)을 내 아호(雅號)로 삼아 ‘향묵공방’이라 이름 지었다. 노후의 사랑방처럼 동호인 뿐 아니라 지인 그리고 정양레포츠공원의 내방객들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
Q. 인두화의 현 위치와 미래는?
-현대적 의미의 인두화는 2010년대 초반에 일본 버닝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시초이기 때문에 아직 지역에 보급이 덜되어, 전시회나 공모전 등이 활성화 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삼가면 박우근 전 군의회의장님과 강호의 고수를 찾아 나섰는데, 인간문화제급으로 오래 전부터 과거 인두화 명맥을 유지해오던 분들을 수소문해서 전국 각지 작업 현장을 찾아 배우고, 시연하면서 기능을 익히고 기법을 쌓아, 2018년에는 한국공예문화진흥협회에서 시행하는 실용인두화공예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특히, 인두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합천지역에 인두화를 소개해 볼 요량으로 지난 2018년 11월 30일 「합천인두화회」를 창립하였고, 2019년 대야문화재 때는 제1회 회원전을 개최한 바 있다. 또한 영상테마파크 내 목재문화체험관 개관과 인두화체험학습 운영을 위한 작업장과 기자재 준비 등을 이미 완료했으나 현재 코로나 국면으로 정지된 상태이다. 동호인 저변확대를 위한 강의 프로그램은 문화원에서 시행하는 문화학교 인두화반이 2년째 운영되고 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미국의 사회학자 말콤 글래드 웰이 ‘1만 시간의 법칙’에서 말했듯이, 대부분 일반적인 인간의 기능은 1만 시간 정도 정진하면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다는데, 1만 시간을 환산하니 하루 3시간씩 10년 정도의 세월이라고 한다. 따라서 나도 퇴직하고 예술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쯤 되는 나이 70쯤에 ‘고희기념개인전’을 소망한다면 큰 꿈일는지?
앞으로 나의 호칭도 지나간 공직시절의 직함보다는 하진균 작가나 강사로 불려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란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