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庚子年)은 저물어 가고 – 문경자 수필가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 해돋이를 보고 세상사람들이 원하는 소망을 차곡차곡 쟁여 넣고 보니 해는 배가 불렀다. 잠도 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크고 무거운 몸이 중심을 잃고 뒤뚱뒤뚱 이리저리 기울어지고 흔들렸다. 욕심 많은 사람들을 원망했지만 나 역시 욕심이 많은가 보다. 어쩌자고 그 많은 사연들을 다 들어주겠다고 했을까!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제일 좋아할 사람은 경자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소원을 먼저 들어주고 싶었다. 모월 모시에 양천구에 사는 문씨가 이렇게 빌었다. 올해는 경자년이니까 이름도 좀 날리고 내 글을 읽고 단 한 명이라도 빙그레 웃거나 감동을 받아 울거나 하는 것이 작은 소원이라 했다. 가족들과 행복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올 한 해도 무탈하기를 빌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간절하게 비는 모습이 진실성이 있어 감동을 받았다. 그 옆 동네 사는 차순이는 이렇게 빌었다. 올해는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좋은 차도 타고 세계여행도 가고, 악어백도 하나 사고, 내가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며 그저 잘 되어서 남 앞에게 떵떵거리며 살수 있게 해주세요 했다. 머리도 푹 숙이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팔이 길었으면 얼굴을 한번 세게 쓰다듬어 ‘아야’ 하게 만들 텐데 하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려다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빌고 비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다.
경자년 새해 해돋이를 보고 빌어서 좋은 일이 있었던 사람, 또한 조금 나쁜 일이 있었던 사람, 어중간하게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새해를 보고 어제나 오늘이나 똑 같다고 여기는 사람 천차만별이다. 돈 한푼 안들이고 횡재를 바라는 사람들 모습이 그저 웃음을 짓게 했다. 새해 경자년에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경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온 세상사람들이 내이름을 한번씩만 불러도 몇 천번이다. 하물며 백화점, 이마트, 상가, 식당 등 경자년 새해 세일을 한다고 크게 붙어 있었다. 지인들이 경자년이름이 들어간 광고가 보이면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심지어 영등포 이마트에서 경자 이름 가진 분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갔는데 이미 다 끝났다고 하였다. 경자이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나니 선물은 못 받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봄노래가 들리는듯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봄이 오면 더 신나는 일이 많을 거야. 그때는 꽃구경도 하고, 각종 문학행사와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내가 살아온 어느 해보다 최고의 해라고 자랑도 하고 싶었다. 텔레비전에서 남자 아나운서가 경자년 새해는 하고 뉴스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어떤 남자가 내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하루는 고향 선배를 만난 자리였다. “경자한테 나쁜 의미는 아니고 경자년을 맞이해서 건강하게 잘 지내라. 너거 아부지가 이름도 잘 지어주었다” 며 웃었다. 어쨌던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모임의 건배사도 경자와 경자년을 위하여 하고 인사를 받기에 바쁜 새해 1월이었다. 인기연예인도 부럽지 않은 나날이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너무 들뜬 기분을 시샘이나 하는 듯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 않은 고약한 손님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발생하였다. 온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스크를 사야했다. 가까운 약국에서 아침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본인 확인을 하고 돈을 주고 마스크 3개를 샀다. 그때부터 마스크는 세상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챙기는 일이 1순위였다. 생명을 지켜주는 마스크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내이름은 해가 지는 순간처럼 어둠속에 묻혀 흔적도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나쁜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경자년은 재앙을 몰고 온다는 말들이 퍼졌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경자라는 내이름을 갈아 치우고 싶었다. 정말 사람마음이 간사하기 이를 때 없다.
오랜만에 약속한 모임에 가기 위해 화장을 하고 옷을 입었다. 귀걸이도 했다. 쌍꺼풀 진 눈이 오늘 따라 예뻐 보였다. 눈썹을 예쁘게 그린 다음 마스카라하고, 볼터치도 하고 립스틱을 발랐다. 마스크를 쓴다고 소홀히 하면 피부가 망가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죽을 때까지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명언을 생각한다. 장롱속에서 꽃무늬 블라우스 리본을 메고, 빨강색 코트를 입었다. 거울에 비춰보니 내가 봐도 예쁘다. 마지막에 마스크를 오른쪽 귀에 먼저 걸고 가운데로 와서 입과 코를 막고 완벽하게 콧잔등을 누르고 왼쪽귀에 걸었다. 그러고 보니 양쪽귀는 마스크 걸이 용으로 활약이 대단하다. 거울을 보았다. 이게 아닌데! 이런 모습도 아닌데 내가 봐도 내가 아닌 듯하다. 그래서 환하게 웃어 보았다. 눈가에 주름만 졌다.
한번은 외출을 하고 집 앞에 왔는데 지나가던 청년이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더니 작은 아들이었다. “엄마는 아들도 몰라보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라고 하며 웃었다. 가족도 몰라보게 하는 경자년의 마스크는 대단한 위력을 과시했다. 부모, 형제, 이웃, 친구, 동창, 가족 간에도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 모든 일상이 한 순간에 박살이 났다. 사람들은 오늘도 언제 멈출지 모르는 코로나19와 지친 싸움을 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자고 일어나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외출할 때 전철을 탄 사람들 속에 혹시라도 그런 환자가 내 옆에 앉아있지 않았는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갈 때 다른 사람이 기침을 하면 병균이 옮아온 것은 아닌지 걱정은 떠날 날이 없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해는 갑자기 변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소하게 보였다. 입을 막고 있어 제대로 숨도 쉬지못하고 오죽이나 답답할까! 코로나가 하루 빨리 없어지기를 빌었다. 경자년은 계절이 남기고간 편지들만 덩그러니 마스크에 입이 갇히 듯 보물창고에 갇혔다. 해가 서산너머로 사라지면서 잔혹하다 라는 말을 툭 내뱉았다. 경자년을 좋아했던 문경자! 2020년 끝자락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