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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 평화로 가는 길 (4) – 세계평화공원을 꿈꾸는 합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많은 이가 죽거나 다쳐 희생됐다. 원자폭탄 투하로 즉사한 이들의 원통한 사연을 시작으로 ‘살아 있는 내내 건강파괴’를 겪는다는 직접 피해자, 그 후손들까지 원자폭탄 탓에 고통 받고 있으나 여전히 명쾌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없다. 전쟁을 끝낸다는 명분으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과 전쟁을 벌인 죄는 모르쇠로 하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일본, 힘이 없어 국민을 사지로 내몰고 살피지 못한 정부가 각각의 책임을 회피한 세월이 75년이다. 이에 본지는 더 이상 이런 아픔을 겪지 말자는 뜻에서 한국과 일본 중심으로 원폭 피해 진상을 살피고 더 나아가 ‘비핵평화’를 염원하는 특집 기사를 총 4회 연재로 마련했다. _취재팀(임임분, 박인욱, 최지송 기자)

지금까지 일본 현지에서 원자폭탄 피해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해온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보았다. 이러한 활동가들을 움직이게 한 힘의 원천이, 피폭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지켜온 히로시마평화공원의 존재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이러한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성찰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참으로 뜻깊은 장소이며 아픔의 유적으로 보존되어 왔다. 2016년5월27일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해 미국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방문해 헌화를 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한 일이 있었고, 매년 많은 세계인들이 찾아 추모하는 장소로 이름난 곳이다.
원폭피해자 74만 명 중 10만 명이 한국인이며, 일제시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끌려가거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넘어간 피해자가 대다수이다. 그중 합천인들이 유독 많았다는 것이 합천의 아픈 역사이다. 고국도 아닌 타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핵무기로 인한 피해를 당했으나 일본, 미국, 고국에서조차도 보상이나 치료조차 요구하지 못한 한 많은 세월. 그 역사를 기억하고 후대에 남기기 위한 기념시설로 <세계평화공원>을 합천에 조성하려고 한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곳으로 현재 관내에는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원폭자료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2세환우회, 합천평화의집 등 관련된 기관과 단체가 산재해 있다.
지금까지 합천에서는 이 아픈 역사를 숨겨오기만 했었다. 근래까지 피폭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사항이었다. 당당하게 내어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제 떳떳하게 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시대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합천이란 공간에 비핵평화를 위한 세계평화공원이 꼭 서야만 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크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현재 박물관으로 바뀌었는데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생체실험실·고문실·가스실·처형대·화장터와 함께 희생자들의 머리카락과 낡은 신발, 옷가지가 담긴 거대한 유리관 등을 살펴보고, 나치의 잔학상을 기록한 영화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이외 미국 9·11테러가 발생했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원자폭탄 피해 유적지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약 200만 명의 양민이 학살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등을 꼽을 수 있다.
합천평화공원은 피폭자들의 아픔을 상기하고, 비핵평화의 길을 염원하고 이루기 위한 다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즉 추모와 평화에 대한 다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기본방향을 정해본다. 그런 기본적 관점에서 합천에 세워질 세계평화공원의 건립방향, 추진 유의사항 등을 짚어볼까 한다. 먼저 국내의 추모시설, 기념관 등을 살펴볼까 한다.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은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산하 역사박물관으로, 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한다. 독립운동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수집·보존·관리 및 전시하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종합적 학술전시관이다.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15일에 개관했다.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이에 국민운동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정부에서는 소요 부지인 400만㎡(121만여 평)을 매입하여 제공하였다. 전시관은 모두 7개이며 총 9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 보존되고 있다. 기념관 외에도 캠핑장, 자료실, 등산로 등도 있다.
이곳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고, 대표적 기념관이나, 합천평화공원과 연계해서는 모든 부분을 참고하기는 어렵다. 다만,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독립기념관 건립 과정이다. 먼저 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각성을 통한 국민운동으로 추진이 진행된 점이다. 평화공원 역시 준비위원회를 통해 지역의 여러 계층과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민들의 대 참여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게 될 때 성공적인 건립이 가능하리라 본다.

전쟁기념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戰爭紀念館)은 전쟁에 관한 사적과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호국 자료의 수집·보존·전시, 전쟁의 교훈과 호국정신 배양, 선열들의 호국 위훈 추모를 목적으로 1990년 9월 착공해 1993년 12월 완공하고, 1994년 6월10일 개관한 기념관이다. 연건평 2만5천 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이며, 호국추모실·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대형장비실 등 6개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이곳에 특이한 공간 하나는 ‘예식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뮤지엄웨딩홀>인데, 2층 높이의 고품격 예식홀이다. 소나무 숲과 연못으로 둘러싸인 200석의 예식홀. 2천여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연회장. 2천여대 수용이 가능한 주차장이 있다. 교통도 편리해서 시민들에게 인기이다. 이렇게 합천평화공원에도 지역민의 생활과 함께 할 수 있는 예식장, 장례식장, 봉안당 등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보인다. 또한 어린이박물관이 있어 어린이눈높이에 맞는 전시를 할 수 있는 체험시설과 영상실, 어린이 창작코너, 야외놀이터 등이 있다. 아이들 공간이 있게 되면 타지에서 주말 가족들의 견학코스로 올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부대시설은 세계평화공원의 방향성에 부합해야 하기에 검토가 필요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西大門刑務所歷史館)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특수박물관이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이다. 해방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공간이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서대문구에서 성역화 사업을 거쳐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했다. (국가사전 제324호).
서대문형무소 시설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많다. 즉 옥사나, 간수사무소, 사형장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추모공간 등도 함께 한다.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한 한국인들이 폭탄과 전쟁의 상처에 놀라고 질려 급히 일본을 떠나고자 하면서 어렵게 귀국선을 구해 고국을 향하는 그 과정에서 정말 모진 고생을 했고, 적정 승선인수를 넘어 가득한 배가 풍랑을 맞으면서도 괴로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런 아픈 과거를 모형을 통해서라도 복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해 본다. 이외에도 한국피폭인들이 겪었던 체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조성과 추모공간이 평화공원에 꼭 함께 들어서야 할 것을 제안한다.

5.18민주화운동기념관


광주광역시에서는 광주시 전역에 △전남대학교 정문 △광주역 광장 △구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일대 △금남로 △옛 전남도청 △광주YMCA △상무관 △전일빌딩 등 29곳을 사적지를 지정해두었다. 이런 시도는 광주시 전체를 역사화 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중에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살펴본다. 5.18민주화운동은 2011년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는데, 광주시는 2015년5월, 세계기록유산 소장기관으로 5.18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영구보존하고 5.18역사적 의미를 세계에 공유하기 위해 설립했다. 5.18의 발발과 진압을 비롯한 원천자료에서부터 문서, 음향, 구술, 학술, 문화적 재현물, 정부기관과 군사법기관의 자료,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 기자들의 사진과 취재수첩, 피해자들의 병원진료 기록 등 4천2백여 권, 86만페이지, 사진 필름 3천7백여 컷에 달하는 등재 기록물이 수장고에 영구 보존되어 있다.
건물은 총7층이며, 1층은 항쟁,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공간이다. 2층은 기록, 민주화운동 기록에 초점을 맞춘 공간이다. 3층은 유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4층은 자료실로 민주.인권.평화.여성 등과 관련된 서적이 있다. 7층은 다목적 강당 및 세미나실로 사용된다.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강당과 40여명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 이 있다. 출판기념회, 인문학 강좌 등 시민들 위한 용도로 유료대관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우리도 지금이라도 자료를 모으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제주4.3평화공원


제주 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인권기념공원이다.
제주도라는 수평적인 공간에 더해 넓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처음 관문인 문주(희생자를 상징하는 3만개의 제주석을 넣은 철망 구조물)라는 대문을 상징하는 관문을 지나면 바로 맞은 편에 위령탑과 그 너머 각명비(4.3희생자의 성명.성별 등이 기록된 비)가 늘어서 있다. 가장 안쪽에는 위패봉안실이 있다. 이곳은 억울한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념의 공간으로 4.3희생자로 공식 인정된 1만4천여 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다크투어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제주4.3공원은 합천평화공원에서 참조해야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평화공원과 기념관이 어우러져 추모와 기록물이 함께 있는 것,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탁 트인 밝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현재 원폭복지회관 뒤편 협곡에 위치한 위령각을 좀더 편안하고 희망적이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겨야 한다고 본다.

평화와 휴식의 공간이 돼야 할 세계평화공원


이상으로 국내 여러 참고할만한 시설 들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전시형태와 기획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기념하고자 하는 정신과 그 방향이 틀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평화공원 역시 전격적으로 모방하기 보다는 합천평화공원의 특수한 기획정신과 방향을 살려 특색있게 만드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이에 몇 가지 고려해야 점들을 짚어본다.
첫째로 과정과 절차를 밟아서 추진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추진위원회의 발족이다. 독립기념관 설립에서 보았듯이 단합된 힘으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합천군민 뿐 아니라 인근 지역이나 단체, 종교, 교육단체 등도 함께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평화를 기치로 내세울 때 어느 기관-단체이든지 찬동하지 않을 곳이 없을 것이다. 또한 스스럼없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기치와 기획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추진위원회와 함께 군의회, 합천군 전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일단은 평화공원 추진위회 설립과 함께 설립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계몽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성격을 띤다.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며 새로운 희망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진지하고 엄숙한 추모의 공간이 이뤄지되, 암울하거나 다가서기 어려운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산듯하고 밝은 공간으로 조성하고, 공원 조경과 부대시설 등 주민들이 접근하기 용이한 공간이 돼야 한다. 그래서 찾기 어려운 곳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스며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창조해야 한다.
셋째, 위치선정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접근하기 좋은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토지수용이 가능하고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부지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논의들을 살펴보면 1)원폭복지회관 및 자료관 근처 부지 2)황강부지 3)그외 관내 적절한 너른 부지 등이다. 1)의 경우는 이미 있는 원폭복지회관이나 자료관 등을 확장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만약 근처에 수용 가능한 땅이 있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2)의 경우는 합천의 자랑 강변공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해공원의 서쪽 강변을 좀 더 개발하여 확충할 수 있다면, 제2의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지금의 멋진 일해공원에 더하여 한층 거듭나는 수변공간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추모공간이 이제 기피시설이나 꺼려하는 곳이 아닌, 국민들의 곁으로 다가와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일상 속 추모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해외에도 추모와 일상이 공존하는 독일의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 쇼팽, 오스카와일드, 짐 모리슨 등 유명인이 안장된 파리의 아름다운 도심 공원인 ‘페르라셰즈 묘지공원’같은 공간이 있듯이, 생각과 관점을 바꿔야 한다. 수려한 합천, 시원하게 흐르는 황강 물결을 바라보며 영령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세계평화공원을 꿈꿔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