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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괴테도 회계사였다 – 정병수 재경 합천문인회 회원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스키 부대’에 속해 작전을 수행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며 자랑하는 이가 있었다. 베트남을 잘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은 그런가 하고 믿는다. 열대 지방인 베트남에 눈이 올 리 없건만 그런 거짓말을 하는 자는 남을 현혹시킬 만큼 화술도 좋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바다가 없는 나라에 해군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일까?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볼리비아(Bolivia)를 가는 경우가 있다. 볼리비아란 나라는 바다와는 상관없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및 브라질의 5개국을 국경으로 한 내륙국가이다. 다만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 지대인 안데스 산맥 중부의 산간 분지에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수면(水面) 고도는 3,812m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티티카카‘란 담수호가 있다. 이 호수 주위에는 고대 잉카(Inca) 문명의 유적이 많다. 그 호수에는 약 170여 척의 초계정과 잠수함을 갖춘 4천5백여 명의 장병으로 조직된 해군본부가 있으며, 이 중 6백여 명은 남미 최강의 해병대원이다. 칠레와의 4년 여간 전쟁에서 져 1883년부터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그런데 약 150년이 지난 오늘날도 옛날의 바닷길을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호수 위에 해군을 유지하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공자(孔子; BC551~BC479)하면 우리는 근엄한 학자상을 떠 올린다. 회계 또는 경리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미지로 알고 있다. 공자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에 지금의 산동성 곡부인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노부(老父)는 세 살 때 돌아갔고, 어머니마저 17세 때 세상을 떴다. 형제라 해도 이복형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불구였다.
공자는 15세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예(禮)를 배웠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하여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다. 20세가 되어 처음으로 관직에 나갔으나, 맡은 벼슬이라곤 위리(委吏)라는 직책으로 오늘날 창고 출납을 하는 하급 경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장부 정리(회계)를 함에 있어서 공자는 언제나 꼼꼼하고도 빈틈이 없었다. 오늘 날로 보면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복식부기(複式簿記)를 취급한 것은 아니지만 출납을 했다니까 단식부기(單式簿記)를 한 셈이다. 나는 단식부기만 잘 해도 공인회계사(公認會計士)라곤 할 순 없어도 엄연한 회계사(會計士)라고 부른다. 얼마 후 가축을 사육하는 승전(乘田)이라는 직책을 맡아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누구보다도 소와 양을 잘 길러냈다고 한다. (孔子嘗爲委吏矣,曰 ‘會計當而已矣’。嘗爲乘田矣,曰 ‘牛羊茁壯,長而已矣’).
비록 이끌어 주는 스승이나 도와주는 후원자도 없었지만 어떤 일이든 정성을 다하면 자신도 성장하고 세상도 변화시킨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아무리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궁금한 점을 묻고 또 물었다. “남들이 한 번으로 가능할 때 나는 백 번을 노력하여 자신을 단련시켰다.”고 공자는 술회하고 있다. 영원한 스승인 공자도 2,500년 전의 창고출납 기록과 오늘날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는 회계 기록을 비교하면 그 처리속도에 놀라겠지만, 차대변(좌변과 우변)으로 아귀가 맞는 복식부기를 당시에 왜 개발하지 못했는지 회한으로 밤잠을 설칠지도 모르겠다. 복식부기가 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얼굴을 보인 것은 1594년 베니스의 ‘루까 파치올리’라는 수사(修士)에 의한 것이니 겨우 4백년이 되었을 뿐이다.
80년이 넘는 긴 생애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이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쓴 독일의 거인, 괴테 (1749~1832)는 어떤가?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과학자이자, 자연 연구가이기도 하였으며 뛰어난 복식부기 옹호론자였다.
괴테의 첫 직업은 문학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1775년, 26살의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이후 제2의 고향이 된 바이마르로 향한다. 인구 6천 명의 작은 공국의 새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은 괴테를 재정·회계 책임자로 맡겼다. 이 일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유명한 말이 “복식부기는 인간의 지혜가 발명한 위대한 산물 중의 하나”이다. 그는 10년간 재정 및 회계를 하면서 공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행정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러나 바이마르 생활 10년 만에 도망치듯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시작된 3년여의 여행 동안 괴테는 이탈리아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고 고전주의적 문학관을 확립한 것이다.
회계는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산소가 중요한데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듯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것 자체가 회계(會計)인데도 말이다. 가계부가 그렇고, 아파트관리비명세서가 바로 회계이다. 돈이 있는 곳에 회계가 따른다. 공자의 학문도 괴테의 문학도 회계와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