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를 읽고 – 김상문 수진철강㈜ 대표이사

아산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은 한국의 신화적 인물이며 세계경제의 거인으로 우뚝 서신 분이다 우리는 단지 현대그룹재벌의 회장쯤으로 알고 있을뿐 그 분의 성공신화에 대하여 속속들이 잘 모른다.
나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한국경제를 세계속으로 진입시키고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체육, 외교 등 전 분야에 걸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거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1915년 한일합방후에 강원도 통천에서 농사짓는 가정의 6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다가 19세에 가출하여 부두노동자, 엿공장 종업원, 쌀집종업원으로 일하다 쌀집을 인수해서 주인이 된 일 그 이후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을 만들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스스로 자수성가한 대기업 회장이 정치에 참여했을 때도 일반적으로 재벌이 권력에까지 욕심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기도 했는데 권력의 부당한 압력 등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그의 일대기가 불가능에의 도전, 그것을 가능으로 뒤집은 기록의 점철이었듯이 오로지 좌절과 영락을 막고 국가경영을 맡아 정도경영과 기업을 키우면서 터득한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국가를 더욱 발전시켜 보고자 하는 애국충정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정주영 회장이 실제로 당선이 되어 국가를 이끌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지금쯤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마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조금더 발전되고 세계속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 정경유착이나 정권의 특혜를 받지 않고 순수한 기업가정신으로 경영하였으나 때로는 정권의 필요에 의한 속죄양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변혁이 있을 때마다 인민재판식으로 수난을 당했던 것이 대기업이었고 큰 기업일수록 후유증도 더 심했던 것이다. 그는 우리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던 근로자의 의욕과 기업인의 열의, 국민의 희망을 모아 정치를 개혁해서 선진한국, 통일한국을 완성해보고 싶었던 간절한 꿈을 이루어 보고싶은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6.25로 철저히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다시시작해야 하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토목 건설을 통하여 기초를 닦았으며 해외진출과 자동차, 조선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자본금인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여야 한다”는 깊은 철학과 신념, ‘하면 된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거침없이 나아가신 분이다. 때로는 돈으로 본 손실보다도 실패를 통하여 얻은 경험과 무형의 교훈을 더큰 자산으로 생각하는 폭넓은 식견의 소유자였다. 자동차 사업도 중간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세계최고의 업체와 제휴를 맺어 기술을 전수받고 한번 시도한 사업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집념의 소유자였기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가는 길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의지와 집념, 애국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성공하는 동력이 된 부분도 많았다.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국가재건에 나선 박대통령의 철학과 정주영 회장이 가난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생각이 일치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돈을 빌리기 위해 거북선이 그려진 오백원짜리 동전을 꺼내어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라고 설명하고, 롱바돔 회장을 설득하여 차관을 도입한 일화는 요즘도 세인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궁하면 통하는 법이었다. 5공화국하에서 자격이 없는 이들의 손에 권력이 쥐어져 경제계가 고통을 겪게 되었던 암울했던 시절도 있었다. 박대통령이 올림픽 유치를 발표하여 그 어려운 유치운동을 돕기 위하여 88올림픽 유치 민간추진위원장으로 발탁되어 그당시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나고야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특유의 뚝심으로 승리를 이끈 주역이 되었고 이어서 대한 체육회장도 맡게 되었다.
그는 인간적이고 권위주의를 멀리하며 현장사람들과 격의없이 대화하는 소탈한 휴머니스트였다. 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잘 누리고 사느냐 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였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80년대에 난 울산의 현대계열사에 영업하러 다녔다. 고려제강에서 생산되는 와이어로프를 팔러 다녔다. 그리고 거제 삼성중공업의 조선소에도 다녔다. 두 재벌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주이신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이 최말단 사원들에게까지도 철저하게 스며들어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현대는 어려움이 있을 때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며 ‘하면 된다’는 철학이다. 생각을 유연하게 하고 창의적으로 대처하면 해결할 방법이 생긴다는 것이다. 삼성은 계획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현대는 생각하면서 달린다고 하면 삼성은 생각하고 나서 달린다고 하면 비교가 될 것 같다.
결과적으로 현대는 속도가 빠르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삼성은 속도가 느린 반면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는 금강산 개발을 통하여 남북경제협력의 물꼬를 터고자 노력했고 경제협력이 발전하면 정치적인 문제와 통일문제를 논의할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고르바초프를 만나서 시베리아 개발을 한국기업이 주축이 되어 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하였고 곧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여 한-소 수교가 이루어지고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계기가 되었다. 소련과의 국교를 통해 목재와 천연가스, 기름, 석탄에서부터 바다의 생선까지 무한한 자원의 보고를 선점함으로써 향후 우리에게 없는 자원을 항구적으로 확보한 원대한 꿈과 긍정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한-소 경제협력발전은 양국의 경제결합을 가져올 것이며 이는 남북한 평화통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고 통일된 한국은 아시아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시베리아 개발에 대한 염원이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민간주도형 경제를 원했었다. 정부는 정부가 해야할 일을 하고 기업은 기업이 해야할 일을 하면서 서로 조화롭게 발전하면 그것이 바로 민간 주도의 경제다 정부는 큰 기준과 윤곽만을 제시하고 그 다음은 기업들이 세계시장의 변화에 맞추어 자율적인 판단으로 움직이게 하면 되는 것이다.
A는 이것을 하고 B는 저것을 하라는 결정까지 정부가 하는 정부주도형 경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공익과 사유재산제도를 기반으로한 자유기업주의의 조화가 오늘날 우리나라 자유기업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큰 과제라고 봤다. 공익추구만을 강요하면 기업의 창의와 능률이 저하될 우려가 있고 공공성이 소홀해지면 개인의 이익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사회통합에 균열이 생겨 종국에는 최대다수의 불이익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양자간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창의와 능률을 발휘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업이나 개인은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서 기업이나 근로자, 소비자가 다함께 정부를 신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통제된 경직성 위에서의 안정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율과 유연성과 시장원리에 의한 안정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민간주도체제의 전개를 통해서 유럽형 민주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 가면 그동안의 지루한 침체에서 빠져나와 빠른 시일안에 괄목성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정주영 회장께서 현대그룹직원에게 물려주신 유산은 오늘날 현대정신으로 두고두고 현대가 세계속에서 발전해가는 원동력이요, 엔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시 말해서 성실과 신용, 의지와 집념, 하면 된다는 적극적, 긍정적 사고, 애국애족정신, 뜨거운 열정, 시대의 앞날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인간을 위한다는 휴머니즘과 평등사상 등등 몸소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주신 사례가 모두 현대정신으로 수많은 현대가족의 기업정신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정주영 회장께서 기업가의 정신으로 귀감이 되었지만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며 한국의 미래를 발전시키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자산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대한민국 제일의 부자가 아니라 한국경제사회에서, 세계경제사회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며 이것은 평생토록 정직과 성실, 신뢰, 그리고 근면의 DNA를 실천해오신 결과물인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행복의 조건으로 4가지를 강조하셨다.
첫째 건강을 잘 관리해야하고, 둘째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관용, 셋째는 보다 더 나은 향상심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며 공부하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굳센 의지와 신념으로 다가오는 시련을 잘 극복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한평생을 살아오신 일대기는 한편의 드라마인 동시에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선각자의 삶이며 우리 한국의 경제사는 물론이고 역사에서 영원히 빛날 별로 기억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정주영 회장은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는 여러가지 DNA를 많이 갖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오신 신화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타고난 건강, 정직, 근검절약, 신뢰, 뜨거운열정, 창의력, 긍정마인드, 불도져같은 추진력, 인간평등의 소탈한 휴머니즘 등등 우리가 배우고 따르고 싶은 것을 모두 갖춘 거인임에 틀림없다. 한국역사에 빛나는 위인들 중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경제를 일으킨 역사적 거목으로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